안녕하세요.

자음과모음의 유쾌한 수다쟁이 써니 인사드립니다.

 '3월입니다! 여러분' 하고 반갑게 인사드린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의 남은 날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얼마남지 않은 것을 보며 역시 '시간은 못말려' 하고 한숨을 지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3월 중순이 되기를 무척 기다렸습니다. 왜냐구요? 꼭 가고 싶던 콘서트가 3월 중순에 있었거든요!
여느 콘서트와는 비교가 안되는 특별한 콘서트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3월 16일 목요일, 북카페 자음과모음에서는 '위로'의 대명사 이철환 작가님과 미모의 여성 듀오 밴드 '색상표'를 모시고
북콘서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름하야 <위로 콘서트>. 이름만 들어도 따뜻해지는 느낌이죠?
(행사를 진행한지 무려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 후기를 올리는 못난 저를 용서하십시오. 흑흑)

 보통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할 때는 준비 시간이 길지 않은데, 이 날은 악기 세팅부터 시작해, 자리 세팅까지 철저하게
준비하느라 보통때보다 더 분주했습니다. 그래도 그 분주한 와중에 저는 흐뭇하게 무대를 바라보며 콘서트의 전경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하아- 무척 흐뭇했습니다.

  삼삼오오 콘서트에 초대되신 분들이 오시면서 현장을 활기를 더해갔습니다. 특히 현장에서 판매한 <위로>책은 대단히 인기여서 넉넉히 도서를 준비해둔 것이 안심이 되었답니다~

 본격적인 콘서트 현장 스케치에 앞서, 이 날 공연을 진행하신 프로젝트 듀오 <색상표> 밴드를 소개해드릴게요.
밴드의 섭외 경위를 간략히 말씀드리면, <위로>책을 담당하신 편집자분께서 우연히 <색상표>의 공연을 보셨는데, 한 눈에 반하셨데요.

또한 <색상표> 공연과 이철환 작가님과 맞는 듯하여 섭외를 요청을 드렸고,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이 날 공연을 같이하게 된 것이라네요.  

 실제로 뵈면 두 분다 늘씬하고 미인이세요~ 콘서트 전에 인터뷰까지 하시던데, 조만간 홍대 여신으로 등극하시는 것은 아닐런지

 이 날 불러주신 곡들은 다수가  자작곡 이었는데요, 가사가 참 와닿는 것이 많았어요.
'이건 내겐 어룰리지 않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구나'라는 다소 솔직한 가사도 기억에 남아요~ 또한 보컬이 허스키 하면서도 중독성이 있어서, 듣는내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관객들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답니다. 다들 한 눈에 반하신듯하였죠~ 북카페에 울려 퍼지는 보컬과, 은은한 악기소리의 울림은 정말 환 to the 상 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앵콜곡으로는 장기하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서 그런지 다들 어깨를 들썩이시더라구요~♪

 이 무르익은 분위기를 타고 오늘의 메인 '이철환'작가님을 모셨는데요, 다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셨습니다. 앞서 음악으로 분위기를 UP하고, 작가님과 편집자분이 대담을 나누는 식으로 토크를 진행하였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어제 '위로 콘서트'를 생각하시며 설레셔서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는데도, 말씀은 참 잘하시더라는..

 이철환 작가님의 <위로>는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작가님께서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신 책이에요.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작가님의 '위로'가 가득한 이 책은, 작가님께서 여러가지 의도를 가지고 만드신 책이랍니다.

 특히 위로 책의 주요 키워드는 '공감'입니다. 이날 토크의 테마도 '공감'이었습니다.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며 거기에서 비롯되는 진심어린 격려가 진짜 위로라는 것에, 저는 깊게 공감했어요.
상대가 하는 위로를 의심하며, 경계한 자신을 돌아보며 혹 '나'는 누군가에게 진짜 위로를 건넬만큼 진실 된 사람이었는지 반성해보았어요.

 참, 작가님께서는 특유의 이야기 방식이 있으신데요. 일명 '질문에 대한 답을 비유로 들어서 답하기.' 단순히 질문에 대한 대답만 하시는게 아니라, 일화를 들어 말씀하시는데, 이 일화들이 정말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에요! 작가님께서는 '고수들이 하는 선문답과는 차원이 달라요'라며 칭찬에 손사래 치셨지만, 분명 청중을 위한 작가님의 배려 화법이 아닐까 싶었어요~

 예정대로라면 한 시간 반에 그치는 행사인데 이 날은 작가님의 서프라이즈 선물덕에 무려 2시간이 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어요. 
청중 모두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작가님의 서프라이즈 선물은 바로! 작가님의 즉석 공연! 무려 기타 반주도 직접하셨답니다~

 현재 작가님은 지금 기타를 배우고 계신데, 이 날 무대를 위해 담당 편집자도 모르게 열심히 준비하셨다고 해요. 작가님의 손글씨로 빼곡하게 코드가 나열되어있는 악보를 보고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셨는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작가님 최고!

 수줍게 자리에 앉으셔서 기타 줄을 몇 번 튕기시곤 'yesterday~♪'하시는데. 자연스레 '우와~'하는 탄성이 나오더라구요!녹화해서 들려드리지 못한 점 죄송스러울 정도에요! 한 곡 다 마치시자 마자 쏟아지는 앵콜 요청에 '등대지기'까지 불러주셨어요.

 작가님이 노래하시는 것은 여느 만남에서는 흔히 보실 수 없는 진귀한 구경이기에 다들 앞에 나와 촬영을 하시더라구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 황홀한 무대였습니다.

 작가님의 즉석 공연을 끝으로 인사를 마치고 사인회를 가졌는데요. 세상에, 사진 속의 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톱스타 못지 않은 인기였습니다.

 이 날 작가님은 정말 많은 분들에게 '위로'를 전하셨어요. 책의 구절로, 작가님의 따뜻한 눈 빛으로, 깜짝 공연으로,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하신 싸인으로 참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셨으리라 저는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이런 '위로' 라면 그 아무리 먼곳이라도 달려가서 받고 싶지 않으세요?   

 

 저 또한  이 포스팅을 통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분들에게 전하는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자 하였는데 어떠셨는지 모르겠네요.
요즘 카페 회원님들과 소통하려는 저 써니에게 마구마구 다가와주세요! 이 한 몸 열심히 움직여 '위로'와 '기쁨'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며, 즐거운 포스팅으로 또 인사드릴게요~ 다들 Have a Bookday~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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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의 사람들에게 오전 일곱 시는 어떤 시간일까. 
알람 소리에 깨어 비몽사몽인 시간, 아침을 먹을지, 조금 더 잔 후에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간, 흐트러진 이불과 베개 사이에 기대 첫 담배의 니코틴을 잠들어 있던 폐 속 깊숙이 삽입하는 시간, 출근 전 밤사이 흘려놓은 사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분주해지는 시간들…… 며칠 동안 사강은 ‘오전 일곱 시’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처럼 계속 오전 일곱 시에 대해 생각했다.
일곱 시 칠 분.
사강은 시계를 보았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에 모인 사람들 중 눈을 맞추거나 악수를 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아는 얼굴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생기는 안도감이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옆자리에 앉은 창백한 얼굴을 향해 어색하게 웃기도 했다.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대담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을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레스토랑 안에는 미역국을 끓이는 냄새와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달걀찜 냄새가 흥건했다. 모두 불 위에서 온기를 내뿜는 가정식 음식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음식들은 부엌에 서서 쌀을 씻고, 익숙한 감자 칼을 든 채 커다란 감자를 깎는 엄마의 뒷모습을 연상시켰다. 유리벽으로 마감된 오픈키친 안에서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여자를 보다가 사강은 고개를 돌렸다. 결국 불륜이 성공적일 수 없는 이유는 함께 부엌을 공유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시간이 부족해서는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었던 기억이 없다면, 그것이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진 않을까. 그녀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레시피’라고 적힌 메뉴판의 메뉴를 공들여 읽었다.   

 

. 따뜻한 식전주
. 햇볕에 말린 홍합과 신선한 들기름에 볶은 한우를 넣어 끓인 미역국
. 내일의 달걀찜  
. 아침 허브와 레몬을 곁들인 연어구이
. 봄날의 더덕구이
. 미니 꽃밥
. 완두콩과 밤을 넣은 돌솥밥
. 달콤한 디저트

 

메뉴판은 오븐에서 막 구워져 나온 삼십 분짜리 구연동화 같았다. ‘꽃밥’은 꽃밭처럼 들리는 이름이었고, ‘봄날의 더덕구이’은 3월에 캐낸 더덕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를 연상시켰다. 사강은 무심히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정수가 말했었다.
계절 음식을 먹는 건 그 계절의 뼈를 통째로 씹어 먹는 거라고.
그러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음식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강은 실연이 폭식이 아닌 절식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의 퍼레이드를 목격하고 있었다. 절식 중인 수녀이거나 금식 기도 중인 신부이거나 교회가 부흥하길 바라는 개척 교회의 목사이거나 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예비 수도승들처럼.
이들은 금식 기도원의 식당에 앉아 있는 환자들 같았다. 낮에 자거나, 밤에 자거나, 못자거나, 너무 많이 자서 부은 얼굴들이 눈 밑에 깔린 다크서클과 입가에 팬 주름들과 함께 자신들의 슬픈 이야기를 찬송하고 있었다.
사강은 메뉴판의 음식들을 소리 내 읽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위안을 주는 노래처럼 들릴 것이다. 그것은 뜨거운 불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음식들이었고, 비행기 일등석을 타는 사람들도 기내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었다. 메뉴판에는 망가진 식욕을 한 올 한 올 기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성공할지 미지수였다.
사강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와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강의 눈에 가장 먼저 파란색 LA 다저스 야구 모자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쓴 채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망가진 심장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내내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강은 남자가 사람들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실내의 밝은 조명이 아니었다면 사강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남자는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동자를 숨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착용한 병약한 사람일 것이다.
건너편 여자의 충혈된 눈에는 피곤함이 눈곱처럼 말라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다크서클 때문에 난투극 끝에 탈출한 사람처럼 보이는 여자도 있었다. 간신히 샤워까진 했는데 머리카락을 말릴 기운은 없었다는 듯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유난히 곱슬곱슬한 건너편 여자의 라코스테 셔츠는 어깨 부분이 아직 젖어 있었다. 사강은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혀 손가락 몇 개를 눈 위에 올려놓았다. 빛이 눈 사이로 스며들지 않도록. 그녀는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슬로나 스톡홀름처럼 한여름 백야를 가진 도시에선 어둠이 급작스레 찾아들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밀려오고, 도심에 세워진 희붐한 가로등과 함께 서서히 빠져나간다. 이런 도시에 있으면 어둠과 빛에 대한 감각은 달라진다. 태양이 너무 오래 떠 있는 도시에선 어둠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태양을 밀어낸 사람이라면 어둠을 향해 날아가는 박쥐처럼 깊은 동굴 속을 배회한다.   
이들에게 사라진 건 태양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오전의 활기였다.
아침이 되었지만 이들의 눈은 밤처럼 닫혀 있었다. 묵직한 자물쇠로 채워진 눈동자는 생기를 잃었고, 공허한 눈빛 뒤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사강은 이들의 얼굴에서 보통 사람들 같으면 충분한 수면만으로 지워졌을 악몽의 그림자를 보았다.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었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어느 날, 사강의 무릎 위에 이렇듯 뜨거운 물이 가득 든 주전자가 엎어졌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 이곳저곳이 장마 끝에 습기를 잔뜩 머금은 벽지같이 여기저기 벗겨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생각 없이 손톱을 뜯거나, 이유 없이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거나, 참가비를 5만 원이나 내고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강은 이 얼굴들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흩어져 앉아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사강은 이들을 ‘오전 일곱 시의 유령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4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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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여섯 시.
 사강은 독립단편영화제의 수상작들을 상영하는 시내의 작은 시네마테크 앞에 서 있었다. 같은 건물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전, 그녀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작은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세로가 가로
보다 훨씬 긴 간판이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

 

 사강은 간판의 작은 글씨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밤에는 백열등 밑에서 시를 쓰고 낮에는 형광등 아래에서 진료를 하는 의사가 운영하는 신경정신과 병원의 간판처럼 보였다. 누군가 무심히 이곳의 간판을 지나친다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아침병원’으로 오독할 만했다. 그녀에겐 이런 이름의 식당이 있다는 걸 상상하는 일조차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인도, 아부다비나 뮌스터의 좁고 어두운 골목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름의 식당이었다. 사강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휘황찬란하고 압도적인 도심의 간판들 사이에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라고 쓴 연두색 글자들은 너무 작아서 휘황찬란하고 거대한 글씨들에 압사당할 지경이었다.
 오전 여섯 시 십 분.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차가웠다.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테이크아웃 커피의 플라스틱 뚜껑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얼굴 위에 와 닿았다. 사강은 간판 앞에 서 있었다. 사강은 불룩해진 가방 속 물건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올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곳에 도착하게 될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러하리라.
  
                                                                    *

 

 오전 여섯 시 이십 분.
 이지훈은 결국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에 온 유일한 남자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황당한 장난일지 모른다는 생각 사이에서 그는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시내 쪽으로 운전을 하는 동안 그는 몇 번의 진입로에서 다시 한 번 유턴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망설였다. 그러나 정작 목적지에 도착하자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졌다. 그날따라 맑은 하늘과 유달리 화사했던 아침 햇살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차피’란 말은 그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이곳까지 온 것만은 분명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

 

 지훈은 자동차 안에서 간판을 바라보았다.
 인터넷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작고, 무심하고, 철저히 손님을 무시한 식당 간판이었다. 저런 간판을 달고 망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이 레스토랑이 서울에선 먹기 힘든 진주 ‘꽃밥’을 파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는 몇 번의 검색을 시도했다.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검색한 단어는 ‘꽃밥’이었는데, 꽃밥은 진주 사람들이 부르는 비빔밥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여러 빛깔의 다양한 계절 나물들과 달걀노른자를 올려놓아 밥이 아니라 꽃밭처럼 보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했다.
 봄날에 먹는 꽃밥은 어떤 맛일까.
 4월의 꽃밭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맛일까?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는 게 그로선 꽤나 유감스러웠다.  

 

 지훈이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는 아까부터 시네마테크 입구에 서 있던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시네마테크 옆에 조성된 작은 정원 앞에 서 있었다.
 어깨를 덮는 긴 생머리와 동그란 이마는 부드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으로 반쯤 가려져 있었다. 서 있는 것이 익숙한 사람처럼 곧은 어깨와 반듯한 허리가 어딘가 절도 있어 보였다. 부드러운 검정색 가죽 재킷을 입은 여자는 검정색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종아리에 꼭 맞는 검정색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는데, 주름 하나 없이 쭉 뻗은 가죽의 질감은 부츠 안의 종아리가 충분히 곧고 날씬하리란 상상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입은 옷은 누군가의 몇 달치 월급일 수도 있는 고급스러운 것들이었다. 그러나 강렬한 첫인상과 달리 여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사라질 것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존재가 희미해지는 건 실연당한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일까. 미술관의 명작 아래에 적혀 있는  ‘접근하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을 본 것처럼 지훈은 여자를 바라보기 위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가 한 손으로 긴 머리를 묶었다 풀기를 반복할 때마다 길고 아름다운 목선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남자라면 응당 이런 숙녀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낼 것이다. 기꺼이 도와주려고 달려들 것이다. 주말 명동 한복판에서 봤더라도 한 눈에 알아볼 법한 여자였고, 순식간에 다가서기 쉽지 않을 거라는 열패감을 안겨주는 기묘한 느낌까지 있었다. 여자가 매고 있는 검정색 가방은 오랫동안 사용한 것인지 가죽이 구겨지듯 주름져 늘어져 있었다.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가방이었다. 그녀는 가방을 한 손으로 움켜잡듯 쥐고 있었다.
 여자는 뭔가 결심한 사람처럼 레스토랑의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 쥐고 있던 테이크아웃 커피의 플라스틱 뚜껑을 다시 열더니 바닥에 쪼그려 앉았고, 시네마테크로 들어가는 입구에 만들어진 작은 정원을 바라봤다. 여자는 식어버린 커피를 밤새 얼어붙은 차가운 땅 위에 주의 깊게 붓고 있었다. 지훈은 무심한 얼굴로 흙 위에 커피를 붓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설마 커피나무라도 열리길 바라는 걸까.

 

 그에게도 딸기 우유를 부으면 딸기가, 오렌지 주스를 부으면 오렌지 나무가 주렁주렁 피어오를 것이라 믿었던 엉뚱하고 황당한 여섯 살 시절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외할머니에게 손바닥을 맞았다. 한 살 위인 형도 그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형은 그의 궁둥이에 물파스를 듬뿍 발라 안 그래도 부풀어 발개진 엉덩이를 불쏘시개처럼 만들어놓곤 했다. 형은 외할머니 몰래 외할아버지의 자동차 주유구에 500밀리리터짜리 우유를 퍼붓는 엽기적인 장난을 쳤다. 형이 더듬거리는 말투로 “자동차도 우유를 마셔야 키가 크고 예뻐져!”라고 소리 질렀을 때, 외할머니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이런 사건들은 훗날 예술가가 되는 사람들의 유별난 유년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화였다.
 형은 보통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상태였다. 지훈 역시 당시에는 형의 영향을 받아 거의 정상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산만했다. 형이 말 대신 소리를 지르거나 비명을 지를 때, 그 역시 고함을 치거나 손바닥이 발개질 정도로 박수를 쳤다. 그는 형이 아침마다 먹는 하얀색 알약을 같은 개수만큼 함께 먹고 싶어 했다. 두 명의 ‘덤 앤 더머’ 앞에서 육십이 훌쩍 넘은 백발의 노인이 할 수 있는 건, 엄혹한 얼굴로 매를 드는 것뿐이었다.
 애써 지우고 있었던 기억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유물이나 화석처럼 특정 장소에나 가야 열어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여자가 그의 유년기의 입구에 서서 무심한 얼굴로 재생 버튼을 누른 덕분에, 그는 열린 기억의 틈새로 불어오는 과거의 바람을 느꼈다.  
 여자가 빈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앞뒤로 흔들리는 쓰레기통을 배경으로 여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주의 깊게 관찰하던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애써 외면했던 불길함이 몰려왔다. 그는 차의 시동을 껐다. 이제야 그는 현실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훈 역시 저 이상한 이름의 레스토랑 안에 들어가야 할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지훈은 시계를 봤다.
 일곱 시 칠 분.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은 일곱 시였다. 
 그는 이곳에 오는 누구라도 잠시 머뭇대며 믿을 수 없이 작은 저 간판을 올려볼 것이란 걸 깨달았다. 누구나 가볍게 지나칠법한 저런 작은 글자를 좇아오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삶 역시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지훈은 운전대를 놓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지훈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건 망설임과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검정색 가죽부츠를 신은 저 여자는,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3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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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 2012.09.25 20:5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재밌게 잘 읽었어요~~빨리 읽히고 좋아요~~몰입도도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