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


정현정은 미도의 고객 리스트 중 단연 최고의 고객이었다.

결혼정보회사에 ‘올해의 개매너’라는 우스꽝스런 상이 있었다면, 단연 그녀가 반짝이는 트로피를 받고 영광의 우승자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 현정의 사진을 봤을 때, 미도는 그녀가 남자들에게 꽤 많은 인기를 얻을 거라고 확신했다. 전체적으로 귀여운 인상의 여자였다. 게다가 그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공무원 연금이라니! 남자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직업이었다.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노블레스 클럽’에 가입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 만큼 학벌도 부모 재력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던 남자들은 한결같이 당황한 목소리로 미도에게 불쾌함을 표현했다. 

“뭐, 이런 날라리 같은 여자를 봤나!” 

“소개팅에 자주색 망사 스타킹 신고 나온 거 알아요? 정말 교사 맞아요?”

미도는 고객의 불평 전화에 시달렸다. 회사 웹사이트 게시판에는 태도가 불량한 악성 고객으로 현정의 실명과 학교 이름이 등장해 회사 사람들을 당혹시켰다.    

결혼정보회사 사람들은 그런 악성 고객들에게 제각각 암호 같은 이름을 붙였는데 현정의 별명은 ‘십 분’이었다. 그녀는 십 분 안에 자신이 만났던 모든 남자들을 퇴짜 놓았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문자메시지에 보낸 하트가 너무 많아서, 귓불이 작아서, 코가 커서, 입술이 두꺼워서, 구두 색깔이 불길해서 그녀는 남자를 퇴짜 놓았다. 귓불이 작으면서 코가 크고 입술이 두꺼운 데다가 구두 색깔까지 불길한 남자가 나타난 것도 기적이었지만, 모든 걸 기억하고 똑같은 불평을 늘어놓는 현정의 기억력에 미도는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그것은 정현정이 백 일 안에 성취한 결과물이자, 정미도가 몇 년 동안 구축했던 백 건이 훌쩍 넘는 커플 메이킹 성과들을 한낱 과거의 유물로 추락시킨 사건이기도 했다. 

미도가 유일하게 인정할 수 있었던 클레임은 들어온 지 오 분 만에 남자가 자신은 머릿속에 난 ‘가마’가 두 개라 결혼을 또 한 번 할 팔자라고 장담했던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 한 사람뿐이었다. 현정은 그 얘길 하다가 “그 남자가 직접 머리를 까더니, 가마 두 개를 보여주더라구요, 글쎄. 너무 웃기고 황당하지 않아요?”라고 말해 미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 일 이후, 미도는 현정이 모든 일을 고의적으로 망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미도는 그제야 현정뿐만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초의 실연 이후, 미도가 결심한 건 너무 일만 하느라 친구를 등한시하진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친구를 사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던 미도가 선택한 전략은 자신의 고객을 최고의 친구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일일이 고객들의 이름과 취미를 기억했다. 크리스마스나 새해엔 손쉬운 집단 문자 대신 일일이 전화를 하거나 손으로 안부를 묻는 카드를 보냈다. 진심을 담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 절실할 때 확실한 효과를 나타내기 마련이다. 미도의 친구들은 그러므로 나이와 성별, 직업을 초월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좋은 성과와 인센티브로 돌아왔다.  


이 년 전, 정현정을 노블레스 클럽에 가입시킨 건 그녀의 어머니였다.

미도는 회사 신원확인팀의 막강한 정보력을 이용해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던 현정의 어머니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이유로 이들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가히 무궁무진했다. 가령 아파트가 좋은지 빌라가 좋은지 오피스텔이 좋은지 같은 개인적인 주택 구입 성향과 어떤 회사의 어떤 차종을 좋아하는지 같은 사소한 것들도 쉽게 밝혀낼 수 있었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방법으로 보석을 선택한 여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온몸에 달고 있었던 그녀의 모친은 부동산 디벨로퍼(개발업자)였다. 무엇보다 미도의 눈에 확실히 띄는 대목이 하나 존재했다. 

그녀가 번 가장 큰 재산은 인상적이게도 고시원과 도시형 생활주택을 통해 나왔다. 교통이 좋고 상권이 발달한 역세권에는 종종 그녀의 이름이 등장했다. 그녀가 직접 개발한 전국 고시원과 원룸의 숫자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데, 미도가 머물고 있던 ‘승리 고시원’의 건물주가 실은 현정의 엄마라는 사실 역시 현정과 미도의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인맥을 중요시하는 정미도에게 그것은 아주 확실한 인증 마크였다. 게다가 결혼에 관련된 엄마와 딸의 갈등에 대한 논문이 있다면 미도는 꽤 훌륭한 발제자가 될 것이었다.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현정은 “안녕하세요. 커플매니저 정미도입니다”로 시작하는 미도의 전화를 딱 한 번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통화 때문에 미도의 전화번호는 현정의 휴대전화에 스팸 번호로 즉각 분류되었다. 삭제가 아니라 스팸 번호로 등록함으로써 다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폐기시켜버린 것이다. 정현정은 주관이 명확한 단호한 여자였다. 

현정이 갑자기 소개팅에 나가겠다고 전화한 건 불과 석 달 전의 일이었다. 

예상 밖이었다. 

현정의 전화에 한동안 미도는 심란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 ‘누군가’가 자신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인생의 가장 큰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그러므로 현정이 그날, 이승철의 <네버 엔딩 스토리>가 울려 퍼지는 독일식 호프집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SOS’를 쳤을 때, 미도는 그녀를 도와 환상의 커플을 만들겠다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꼭 직업윤리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성취와도 관련되어 있었다.

“전 제 전 남자친구와 다시 만나길 원해요.”

그들이 왜 헤어졌는지는 미도의 관심이 아니었다. 바람을 피웠건, 권태기 때문이었건, 남자에게 돈을 꾸고 갚지 않았건 개인 사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헤어진 남자를 어째서 다시 찾고 싶어 하는지 아는 건 중요했다. 미도는 결국 “왜 다시 만나고 싶어 하죠?”라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현정에게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야만 자신도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현정은 자신이 퇴짜 놓은 수많은 남자들 앞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뻔뻔함과 냉랭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을 쏟아놓다가 결국 눈물까지 흘렸다. 손수건이 부족할 정도였다. 실연 앞에서 그녀의 눈은 애처로울 정도로 충혈되었다. 미도는 현정에게 완벽히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상상력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사람을 속이는 것만큼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도 드물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몰래카메라가 여전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건, 그것이 보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 고객들에게 가장 먼저 심어주어야 할 것은 역설적이지만 그런 종류의 속임수였다. 

‘이 사람은 돈을 내고 만난 사람이 아니라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낸 운명이다’라는 판타지. 그것이 상황을 컨트롤하는 사람에 의해 조작됐다 해도, 그 안에는 일정 정도의 우연이 개입한다. 드라마 작가는 그것을 방송에서 보여주지만, 미도는 현실 속에서 그것을 진짜로 만들어냈다.

“현정 씨는 운이 참 좋네요.” 

“네?”

“전 타고난 기획자거든요.” 

미도가 웃으며 현정을 바라봤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은 친구를 고객으로 둔 커플 매니저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드라마 같은 일이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이승철의 목소리가 절절하던 그날, 현정과 함께 듣던 <네버 엔딩 스토리>는 그런 자신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치는 응원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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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


“그만둬. 무리야, 도저히 무리.”

미우가 말했다.

“미쳤니? 이게 어떤 기회인데. 돈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에 지휘자가 됐는데 내가 그걸 왜 포기해? 회사 돈으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걸, 신께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이야. 이런 경험은 앞으로 내 경력에도 큰 도움이 될 거고.”  

“언니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한다고 해도 그건 실연당한 사람들을 속이는 거잖아. 모든 게 결혼정보회사 이벤트라는 걸 알면 그 사람들 마음이 어떻겠어? 회사 잇속을 위해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감정을 이용하는 거야. 부도덕해! 질이 나쁘다고!” 

“줄리아드 음대 기계공학과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사 빠졌니, 너? 부도덕이란 말이 뭔 줄이나 알고 하는 거야? 그래서 네가 아직 징징대는 어린애라는 거야. 세상은 네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아.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전부 사기꾼에 악당들이야.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악당들이라고. 내가 하는 일은 최소한 그 사람들이 하는 일보단 정당해. 돈을 뺏는 것도 아니고, 감정을 착취하는 것도 아니야. 난 일시적인 장애를 돕고자 하는 거야.”

“그 사람들이 장애인이라도 된다는 거야?” 

“당연하지! 실연 때문에 엄청나게 멍청해진 사람들이라구!”

“언니!”

“그 사람들, 마음의 장애인이야. 정신적인 회로가 끊기거나 꼬였는데 사람이 멀쩡할 리 있니? 사람은 태어나서 수도 없이 많은 오답을 써. 실연은 살면서 쓰게 되는 대표적인 오답인 거야. 오답이 대수야? 오답은 그냥 고치면 되는 거야!”

“그래 봐야 속이는 거고, 언니가 하는 짓은 양아치 짓이야. 결국 다른 사람의 감정을 등쳐 먹겠다는 거잖아. 자기 합리화하지 마.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혹시 그걸 사람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제대로 된 대안도 없으면서 그런 하나 마나 한 소리나 하고 있으면 뭐가 달라져? 면접관한테 ‘이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으면 그 사람이 감동받아 널 뽑아주겠어? 회사가 무슨 납골당이냐? 뼈는 묻길 왜 묻어!” 

“치사하게! 갑자기 면접 얘길 왜 하는 건데?”

미우가 발끈한 얼굴로 미도를 바라봤다.

“면접에 스무 번 넘게 떨어졌으면 너도 느끼는 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 백날 편의점 알바 해봐라, 거기서 등록금이 나오고, 용돈이 나오는지. 넌 모르면 가만있어. 이게 단지 내 잇속만을 위한 일은 아니라는 거야. 훨씬 더 고귀한 뜻이 담겨 있으니까.” 

미도는 미우가 이해하기 힘든 얘길 하며 조용히 자신의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 옆에 있던 초록색 스탠드의 불을 켰다. 고객 리스트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미우는 침대에 누워 읽고 있던 신문을 바라보며 등을 돌렸다. 

“나 내일 최종 면접이야.”

“알아.”

“잘하라고 말 안 해줄 거야?”

“말 안 해도 잘할 거잖아.”

“언젠 스무 번이나 떨어졌다고 비꼬더니!”

“그건 네가 네 스펙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회사에만 지원했기 때문에 그래. 정신 차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실연당한 사람들 말고 바로 옆에 있는 동생을 위로해주는 건 불가능한 거냐?”

미우가 뭔가 억울한 얼굴로 미도를 바라봤다.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게 진짜 위로야. 무릎이 깨졌으면 당장 쓰리고 아프더라도 과산화수소를 퍼붓고 빨간약부터 발라주는 게 위로라고. 정말 용기 있는 사람만이 진짜 위로를 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이긴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미도도 잘 알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 그래서 난장판이 된다면, 이 모든 것의 책임은 최초의 제안자인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무엇보다 최악은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이 모든 사실을 알고 분노에 차 회사를 상대로 고소라도 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이다. 

미도는 회사 법무팀에 이런 일련의 일들을 상의했다. 보안상 그런 상황이 벌어질 일은 없겠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는 언제나 일어나는 법이므로 준비는 해둬야 했다. 위험 요소가 많고, 실패 확률이 높은 일일수록 성공했을 때 갖는 열매도 크고 달다. 어떤 위험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로는 세상의 무엇도 얻을 수 없다. 세상엔 공짜 점심 따위는 없으니까.

미도는 크게 숨을 몰아 내쉬며 ‘특별관리’라고 적혀 있는 컴퓨터의 작은 폴더를 클릭했다. 폴더를 열자 몇 명의 고객들의 이름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나타났다.  

정현정.

미도는 현정의 이름을 클릭했다. 증명사진과 함께 나이와 키, 학교와 주소 등을 기록한 구체적인 개인 정보들이 화면에 떴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 될 거야. 직감적으로 느낌이 와.”

미도가 열어놓았던 노트북의 창들을 닫으며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도서관에서 빌린 르네 마그리트의 화집을 넘겨보던 미우가 미도를 향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직감적으로 느낌이 와!”

“그치?”

“응. 이번 회사엔 진짜 합격이야!”

“아님 백수가 되겠지.”

“너무하다.”

“비올라 들고 음대 들어갔던 사람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갑자기 의대에 들어가고, 다시 적성에 안 맞는다고 천문학과에 들어가는 것만큼 나쁠 일이 또 어디 있겠니? 가장 나쁜 건 나처럼 그런 인간의 언니가 되는 일이야!”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그것은 미도에게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 미도는 짜증스런 얼굴로 미우를 바라봤다. 건조하게 튼 입술 사이로 일어난 보풀들, 지문이 잔뜩 묻은 안경을 끼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는 폼이 고등학생 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미도도 다른 사람들처럼 미우가 의대에 들어가면 앞으로 병실 잡을 걱정은 안 하고 살 줄 알았다. 비올라든 깽깽이든 하기만 하면 제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은 미우가 머리 하나는 타고나게 좋아 한 번도 일등을 놓치지 않은 지역 수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결국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화났냐? 미안.”

미우가 베개를 앞에 두고 넙죽 절을 하며 미도를 바라봤다. 앞으로 묶은 야자수 머리가 고개를 끄덕이듯 앞뒤로 달랑거렸다.  

“미안하단 말은 어쩜 밥 먹듯 저렇게 잘하는지. 넌 자존심도 없냐?”

“응. 그게 얹혀사는 사람의 예의지.”

미도는 미우를 노려보다가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고시원은 너무 작아서 싸움을 하기에도, 애정을 나누기에도 적당치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살려면 무조건 크기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분노도 작게, 기쁨도 작게, 희망도 좌절도 작게, 작게! 그것이 딱히 나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걱정 마. 나도 안 하는 내 미래를 언니가 왜 걱정해? 내가 보기엔 말이야. 언니는 발터 벤야민처럼 토성의 영향 아래에 있어서 느리게 공전해야 하는데, 밥벌이 때문에 타고난 기질을 누르고 빠르게 휘몰아치다 보니 생기는 부작용이야. 점점 신경질적이고 예민해지는 거지. 특히 얼굴 누렇게 뜨고 현기증 자주 나는 거. 오늘 너무 피곤해 보인다.”

천문학과를 나온 미우가 토성이며 화성 공전 자전 타령을 할 때마다 미도는 지구처럼 자기 몸도 10도쯤 기우뚱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던 것이다. 

“토성은 무슨. 간 때문이야!” 

미우가 웃었다. 크게 웃으면 옆방에 사는 총무가 달려올 것이 분명했으므로 이들 자매는 리모컨 볼륨 1 정도로 소리를 조금씩 죽이며 히죽거렸다.  

미도는 노트북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번 프로젝트는 미도에게 일어난 가장 기이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정말 그런 모임이 생긴다면 사람들이 나올까. 며칠 후, 대표가 ‘실연당한 사람들의 모임’ 참가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순간, 그것은 정말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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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팀장들 모두가 일제히 대표를 바라봤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디서건 늘 짙은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덕분에 표정을 읽기 힘든 사장의 얼굴에 얼핏 미소 비슷한 것이 점처럼 찍혔다 사라졌다. 그는 아까부터 팔짱을 낀 채 긴 다리를 꼬고 앉아 미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란 사람들은 원래 칭찬에 목말라 있고, 장점과 강점 같은 단어에 눈먼 존재들이라는 걸 미도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에 위치한 회사라는 게 장점이죠. 그런 분위기 때문에 타사에 비해 회사라는 딱딱한 느낌이 덜해서,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덜 준다는 강점이 있어요. 바빠서 잘 가진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회사의 지하에는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독립영화 전문 상영관도 있더군요.”

회장은 처치 곤란이라며 당장 없애고 싶어 하지만 전직 영화감독 출신인 그의 아들이 결사적으로 지키고 있다는 풍문 속의 독립영화관이었다. 미도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미도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표를 바라봤다.  

뉴욕의 NYU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관객이 거의 들지 않은 망한 영화 몇 편을 찍기도 했던 대표의 눈빛이 검정색 선글라스 속에서 반짝였다. 짙은 그림자처럼 늘 표정을 감추어주던 선글라스는 역설적으로 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대표는 무심히 몸을 틀어 자세를 바꿔 앉았다. 그가 의자를 살짝 끌어당길 때마다 팀장들의 눈도 바쁘게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미도는 잠시 테이블 옆에 있던 생수를 집어 들며 심호흡을 했다. 

“생수가 800원짜리 생수통에 담겨 있으면 그냥 800원짜리 편의점 생수가 되겠죠. 하지만 아티스트가 특별히 디자인한 ‘리미티드 에디션’이란 이름의 병에 담는다면 그 가치가 얼마로 올라갈까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 고객에게 잊지 못할 또 다른 러브스토리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이제 ‘스토리’는 우리 업계 최고의 화두가 될 거예요.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나와서 비빔밥 한 그릇에도 이야기를 담자고 목 터지게 외치는 세상이에요. 그러기 위해선 여러 팀들의 화합이 아주 중요해요. 분열되지 않고 서로 똘똘 뭉쳐서 이번 기회에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고객들을 확보하는 겁니다. 이런 기획이 아니라면 절대로 결혼정보회사 따윈 쳐다보지도 않을 도도한 고객들 말이죠. 우리에게 열광하는 만큼 우릴 경멸하고 혐오하고 심지어 경박하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미도는 조 부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기술에 접목되어야 할 것이 휴머니즘과 인문학이라고 말했을 정도예요. 매칭 계획서나 던져주고, 전화 몇 통 해대면서 우리 회사랑 제휴된 회사가 500개다 600개다 같은 광고 정도로 사람들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우리는 결혼 비즈니스에 눈물이 넘쳐나는 인간적인 이야기를 접목시키는 거예요. 이 감수성 넘치는 고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특별한 서비스를 받게 될 거고, 미래에 우리 회사의 가장 중요한 고객들이 될 겁니다. 톨스토이가 말했어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르게 불행하다.’ 전 이렇게 되돌려 말하겠습니다. 행복한 커플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커플은 제각각 다르게 불행하다! 우리의 타깃은 이미 헤어져서 불행한 커플들이에요. 제각각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제가 제안하는 프로젝트의 이름을 이렇게 붙였습니다.”

미도는 마우스를 클릭해 이 비밀스런 프로젝트 파일을 열기 시작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 이것이 이번 비밀 프로젝트의 제목입니다.”  

바로 그때였다. 

“저도 참가하고 싶네요. 가능하겠습니까?”

선글라스를 낀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고 이제 박수까지 치기 시작했다.  


*


사람들이 L 결혼정보회사의 대표이사에 대해 아는 건 그가 망한 영화감독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였다.

그러나 세상에 망한 영화감독이 한두 명 있는 것도 아니고, 경쟁이 치열한 영화계에서 입봉조차 못한 조감독 출신들이 즐비한 지금, 그가 말아먹은 영화가 중요해질 일 따윈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원 숫자만 400명이 넘는 이 거대한 회사 사람들에게는 ‘망한 영화감독 출신의 결혼정보회사 대표’라는 긴 이름만큼 부조리한 직함은 세상에 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표는 가끔씩 나타났지만 사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존댓말을 쓸 정도로 예의 발랐다. 그러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도 절대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뉴욕 양키tm 야구 모자를 쓴 채 양복을 입는 등 단번에 ‘워스트 드레서’에 등극할 괴상망측한 옷차림으로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물론 그가 누가 봐도 형편없는 야구 영화를 만들었다가 쫄딱 망해 회장의 눈 밖에 나고,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도대체 어울리지도 않는 야구 모자를 시도 때도 없이 쓴다거나, 번식욕이 유달리 강한 회장의 배다른 자식일 거란 루머는 막 입사한 신입사원들까지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미도의 이번 프로젝트는 ‘원탁의 기사’ 단 네 명만 참석해 극비리에 진행되었으므로 구체적인 내용을 아는 사원들은 없었다. 그러나 이사진들에겐 무늬만 사장이라고 생각했던 대표가 회의 중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빅뉴스였다. 그런 대표가 한 번도 벗지 않던 선글라스를 벗고 박수까지 쳤다는 믿기 힘든 소식은 삽시간에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다. 물론 회사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건 이 회의를 주재했던 사람이 정미도라는 사실이었다.   

미도가 한때 영화감독이었던 대표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일부러 이벤트로 ‘시네마테크’와 영화를 이용한 영악한 마케팅을 펼쳤다는 건, 그녀를 시기하는 쪽 사람들의 해석이었다. 가끔씩 등장하는 미도의 이해할 수 없는 레이어드 룩, 일명 ‘덕지덕지 패션’ 역시 대표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란 말도 흘러나왔다. 팀의 위치에 따라 그것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미도는 ‘마녀’와 ‘악녀’, ‘천재’로 각기 이름을 달리하며 회오리 같은 소문 속의 여자 주인공이 되었다.  

소문과 악명!

이것이야 말로 회사 생활의 꽃 중에 꽃이다. 악명은 정미도에게 회사 생활을 잘해나가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일 뿐이었다. 미도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진행해나갔다. 그녀는 즉시 시네마테크 관계자를 만났다. 다음 날 지독한 경영난으로 레스토랑을 포기하려는 유기농 레스토랑 주인을 만나 포섭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해 정기화될 경우 회사가 얻게 될, 이익과 돈으로 치환할 수 없는 권위와 명성을 문서화하기 시작했다.  

‘일사천리’는 미도가 지켜온 원칙 중 하나였다. 뜸들이다가 김새는 일은 쌔고 쌨다. 당장 돈이 없어 내일 밥을 굶을지도 모른다는 생존 감각이 그녀에게 준 것은 ‘핵심이 아닌 것은 전부 지워버린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고시원에 도착한 미도가 이 화려한 성과에 대해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단 한 사람은 며칠 동안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을 단 한마디로 정의 내렸다.  

“정미도! 이 천하의 사기꾼!”

그것이 동생 미우의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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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의 <봄>이 절정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사강은 하얀 도자기 접시 위의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한 손수건은 방금 전 다림질을 끝낸 것처럼 보드라웠고 아직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사강은 뺨 위에 손수건을 댄 채, 이 모임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동병상련의 느낌을 공유하는 위로와 격려일 리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절대로.
따뜻한 음식으로 구성된 세심한 식단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위무하기 위한 모임도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실연을 선언하는 모임이었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정말 즐거웠어요.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해요. 제 자리는 저쪽이에요.”
미도가 사강에게 인사하며 뒤돌아섰다.
사강은 미도가 걸어가는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한 남자 쪽으로 가볍게 몸을 틀더니 세 시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알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곧 주최 측으로 보이는 사람이 미도를 남자 옆에 안내했다. 사강은 미도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

 

안경을 쓴 남자와 사강은 세 번,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계속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강 역시 남자를 바라봤다. 이럴 땐 상대가 누구든 최대한 무심하게 바라보는 게 효과적이라는 걸 사강은 잘 알고 있었다.
남자는 꼬고 있던 긴 다리를 자연스레 바꾸어가며 들고 온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것이 외국계 경제신문이고, 주식과 환율 관련 섹션이라는 걸 사강은 어렵지 않게 간파했다. 소개팅 자리에서 자신이 관리하는 주식 계좌 수를 자랑하던 여의도 증권가 남자가 떠올랐다. 미국과 유럽의 시차 때문에 룸살롱에서 술을 마셔도 주식 장이 파하는 세 시부터 마시고 오후 여덟 시면 술자리를 파하고 퇴근한 후, 이른 새벽에 출근을 한다는 남자였다. 이 남자의 시간이 다른 사람과 달리 거꾸로 뒤집혀 돌아간다는 사실 때문에 사강은 한두 번 더 그를 만났었다.
남자는 무엇보다 바빠 보였다.
그는 열세 시간의 비행 동안 단 한 순간도 잠자지 않고, 서류를 들여다보며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비즈니스석 승객 같았다. 끝도 없이 커피를 마시는 게 그런 비즈니스맨들의 특징인데, 마실 때마다 기내에서 주는 커피가 세상에서 가장 맛없다는 얼굴인 것도 비슷했다. 남자의 두 눈은 열두 시간 동안 컴퓨터만 들여다본 것처럼 충혈되어 있었다. 뺨은 윤기 없이 건조했지만 그것은 실연의 흔적이라기보단 전날 야근을 하거나 숙취로 피곤한 얼굴처럼 보였다. 남자가 쓰고 있는 동그란 안경은 얼룩 없이 반짝였다. 유일하게 실연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면도하지 않은 까칠한 남자의 턱뿐이었다.   
뭐가 바빠서 실연당한 사람들이 우글대는 이런 곳에 와서까지 신문을 보고 있었던 걸까. 혹시 이런 이상한 풍경 스케치가 기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는 인터넷 신문 기자라도 되는 걸까.  
신문을 보고 있던 남자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뭔가 메모하기 시작했다.
사강은 남자에게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적개심을 느끼고 있었다. 실연당한 날 아침에도 남자들은 경제신문을 읽으며 그날의 주가 동향을 파악하고 주식 투자를 하는 걸까. 그럴 지도……. 이혼 서류가 접수된 다음 날에도, 여자는 퉁퉁 부은 눈으로 아이를 위해 아침을 만들고 도시락을 싸서 가방에 넣어주는 존재들이니까. 그렇게 이해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사강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정수의 얼굴을 보면 늘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강은 그것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관계이길 원했다. 죽도록 노력해야만 겨우 유지되는 것이 사랑일 수 있을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노래한 건 김광석이었다. 그러나 청바지와 오래된 통기타가 그토록 잘 어울렸던 서른둘의 남자는 청춘의 한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정수에게 샤넬 스카프를 생일 선물로 받던 날, 사강은 그것을 목이 아닌 오래된 가방 끈 위에 묶었다. 목에 매고 있으면 어느 날 그것이 이사도라 덩컨의 스카프처럼 자기 목을 움켜쥘 것 같았다.
미도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연당하지 않은 사람이 이곳에 올 이유는 한 가지다. 사강은 이제 남자가 실연당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심증을 굳혀가고 있었다. 이곳에 온 스물한 명 중에는 미도의 말처럼 자신이 미래의 커플이 될지도 모른단 은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강은 텅 빈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응시했다.
회칠한 하얀색 벽 위에는 커다란 거울들이 걸려 있었다. 거울은 사강이 볼 수 없는 창 너머 반대편 거리를 그림처럼 비추고 있었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고, 정류장의 빨간색 지붕이 삼분의 일쯤 잘려 그녀의 동공 위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거울 안으로 네이비색 슈트를 입은 건장한 남자가 빠르게 걸어왔다. 그리고 사강의 눈빛이 거울에 채 머무르기 전에, 남자는 그림 안으로 재빨리 빠져나갔다. 사강은 남자가 걸어갈, 그러나 거울 속에선 보이지 않는 거울 밖 잘려 나간 길들을 상상했다. 
빈 의자 너머, 거울에 담긴 거리 풍경을 사강은 멍하게 바라보았다. 
남자가 지나가고, 여자가 지나가고, 다시 남자가,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지나갔다. 손을 꼭 잡은 연인이 느릿하게 거울 속 길 위를 걷고 있었다. 남자의 어깨에 살짝 기댄 여자의 뺨이 햇빛 속에 반짝거렸다.
사강은 행복했던 그 시절의 모습으로 그곳에 앉아 있길 원했다. 그녀는 상냥한 얼굴로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윤사강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랐다. 맞은편 빈 의자에 살아 있던 과거의 정수와 죽어버린 미래의 정수가 있었다. 사강은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녀는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빈 의자를 향해 미소 지었다. 모던한 레스토랑의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장식적인 빅토리아풍의 벨벳 의자. 누구도 쉽게 기억해낼 수 없는 오래된 시대를 재현한 모조품 위에 지나간 한 세월이 앉아 있었다.
그것은 부재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공식적인 마지막 식사였다.
사강은 미역국을 수저에 가득 담았다가 내려놓았다. 그것을 입술에 대자 정수와 함께했던 기억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이제 그녀는 스스로 이 고통스런 재판의 피고이자 배심원이 되어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로의 증인이 되어 줄 것이었다. 이제부터 사람들은 맞은편의 빈 의자가 말하는 바를 묵상할 것이다. 따뜻한 국을 먹고, 밥알을 씹으며. 그것은 불행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둘로 분리되는 것을 조용히 사유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사강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국을 뜨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한 채 자꾸 코를 만지작거렸다. 그때마다 그녀의 코는 만취한 남자의 그것처럼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눈물만큼 전염성이 강한 건 없다. 누군가 울음을 참고 있었고, 깊은 침묵이 흘렀다.   
두 번째 메뉴가 나왔다.
그때, 미도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자를 끄는 날카로운 소음 때문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일제히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잠시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더니, 곧장 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미도가 의자에서 일어나 남자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이지훈 씨! 잠깐만! 잠깐만요!”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미도의 얼굴은 기이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동요한 몇몇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미도는 곧장 일어나 달리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앞뒤로 흔들리는 문을 바라보다가 한 여자가 큰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사강은 그녀에게 말없이 들고 있던 구겨진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10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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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보통의 연애> 백영옥 작가의 장편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 매주 월 - 금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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