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던 레스토랑 건너편에서 한 여자가 사강 쪽으로 걸어왔다. 
 “반가워요. 전 정미도예요.”
 여자가 활짝 웃자 작은 덧니가 드러났다.
 스무 살은 넘었을까. 어쩌면 어깨에 멘 저 배낭 속에 수학이나 영어 교과서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강은 미도를 바라봤다. 전체적으로 어려 보이는 얼굴과 달리 어깨가 강조된 검정색 파워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구겨지기 쉬운 얇은 린넨 소재의 블라우스는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런 초봄엔 어울리지 않았다. 발목과 복사뼈가 전부 드러난 밑단이 짧은 팬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윤사강입니다.”
 사강의 경우, 자신의 이름은 대부분 제복의 왼쪽 가슴에 매달린 명찰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스스로 이름을 얘기하며 밝게 인사하는 사람에게 “네”라고 짧게 대답할 순 없었다.
 “그쪽은 무슨 일 하세요? 우리 직업 맞추기 할래요?”
 사강은 당황스런 얼굴로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도는 모두가 우울한 ‘오전 일곱 시의 유령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눈에 띄었다. 그녀는 유일하게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고, 어디에서나 들릴 법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말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그녀만이 무표정이나 절망 이외의 표정이 엿보였다. 그녀의 상기된 얼굴과 왼쪽 뺨에 팬 보조개는 가벼운 흥분 때문인지 더 빛나 보였다. 그러나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그들과 무엇이든 얘기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선 실연 후 생길 수 있는 조울증의 기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는 지금 조증 상태인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억지로라도 미소와 활기를 무장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가.
 “백화점에서 일하지 않으세요? 자동차 판매 영업을 한다거나. 제약회사 영업 직원이거나 보험일 수도 있겠구요.”
 사강이 미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 저 학교 다닐 때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알바 한 적 있어요. 취직하려고 속성 메이크업도 배우고 그랬었는데. 그쪽은…… 비서 아니세요? 회장님 비서.”
 “제가 비서처럼 보여요?”
 “네. 적어도 저랑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진 않아요.”
 미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강은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같이 짧게 자른 미도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저런 스타일의 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나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귀 전체가 드러나는 짧은 머리 덕분에 그녀의 귀에 달린 여러 개의 피어싱과 별 모양의 금속 귀걸이가 더 크고 화려해 보였다. 그러나 사강의 눈에 들어온 건 너무 말라서 얇은 빗자루만 한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몸이었다.
 “추우세요?”
 사강이 미도에게 물었다.
 “원하면 제 재킷을 벗어드릴 수도 있어요. 전 좀 덥거든요.” 
 “안 추워요. 괜찮아요.”
 미도가 웃었다.
 “이 재킷, 안감이 두툼해서 꽤 따뜻해요. 사양하지 마세요.”
 “저, 정말 안 추워요!”
 미도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미도는 틀림없이 추워 보였다. 떨고 있진 않았지만 입술이 파랗게 질린 걸 보면 곧 추위를 느낄 것이다. 특히 맨다리에 얇은 바지를 입었으니 그 속으로 3월 아침의 찬 공기가 잔뜩 들어와 앉았을 것이다.
 사강은 오 분이나 십 분 후, ‘춥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신체적 징후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상황을 예견하고 미리 질문을 던진 건 타고난 예민함 때문이라기보단 반복된 훈련의 결과였다. 사강은 기내에서 일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에 마른기침을 하고, 오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자주 봐왔다. 사강이 미도에게 질문을 던진 건 천성적인 마음씀씀이 때문이 아니었다. 질문은 그녀의 직업병이었다.
 “아…… 이제야 알겠어요. 제 옷 때문에 그러는 거죠?”
 미도가 그제야 이해한단 얼굴로 사강을 바라보았다.
 “이 옷, 하나도 춥지 않아요. 걱정 마세요. 전혀 춥지 않으니까. 말짱해요. 보기보단 통뼈에요, 저! 그나저나 참 특이한 모임이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다는 게 놀랍지 않아요? 전 저만 나오면 어쩌나 되게 걱정했었거든요. 혼자서 밥 먹는 거, 처량 맞잖아요. 근데 여기 와보니 너무 안심이 돼요. 대성황이잖아요.”
 사람들이 많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곳은 대체로 조용했다. 게다가 빈 의자를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이는 상황에서 대성황이란 단어를 떠올린다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미도는 이곳의 분위기를 꽤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하이 톤의 목소리가 이곳과 엇박자로 계속 어긋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사실 실연당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생각하면 전 엄청 위로가 돼요. 적어도 나만 슬퍼할 일은 아닌 거잖아요? 왜 아픈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위로받고,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안심이 되잖아요? 안 그런가? 끼리끼리 동병상련이란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뭐, 여기 있는 사람들이야 나중에 다시 모두  커플이 되겠지만요. 이곳에 모인 사람들, 뜻밖에 잘생기고 예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아요?”
 미도는 잠시도 쉬지 않고 말했다.
 “저 남자, 어떤 것 같아요? 아까부터 눈에 띄던데. 여자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아요?”
 미도가 남자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는 레스토랑에 있던 신문을 들고 있었다. 사강 역시 남자를 의식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김없이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단지 우연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사강은 남자들의 그런 노골적인 시선에 꽤나 단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명찰도 제복도 없는 사적인 공간이었고,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예민해져 있었다.
 쌍꺼풀 없는 남자의 눈매는 차갑지만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 다행히 테 없는 동그란 안경은 남자의 차가운 느낌을 적절히 교정해주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성격을 유추해볼 수 있는 옅은 주름들이 보였다. 자주 웃었던 흔적으로 보이는 양쪽 입가의 옅은 세로 주름과 눈 옆에 자연스레 생긴 가로 주름들. 그러나 세 번째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사강은 고개를 단호히 돌렸다. 
 하얀색 치노 팬츠와 검정색 캐시미어 터틀넥은 그와 꽤 잘 어울렸다.
 여간해서 흰색 바지를 입지 않는 보수적인 한국 남자들에게선 쉽게 볼 수 없는 패턴이었다. 디자이너일까? 패션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옷을 좋아하고, 차려입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을 줄 아는 능력은 의외로 희귀하다.
 하지만 사강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애써 무시했다.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정확히 말해,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이곳에 온 이유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강은 가방에 든 물건을 생각했다. 처리하기 힘든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을 처리해줄 전문가를 찾아오는 건 당연했다. 그런 사람을 전문 용어로 ‘킬러’라 부른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선 사람을 죽이는 전문가만 존재하지 않는다. 물건, 추억, 시간을 죽이는 전문가도 필요해지는 법이다. 사강은 그것이 결국 상상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모임이 결성된 것도 누군가의 상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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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의 사람들에게 오전 일곱 시는 어떤 시간일까. 
알람 소리에 깨어 비몽사몽인 시간, 아침을 먹을지, 조금 더 잔 후에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간, 흐트러진 이불과 베개 사이에 기대 첫 담배의 니코틴을 잠들어 있던 폐 속 깊숙이 삽입하는 시간, 출근 전 밤사이 흘려놓은 사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분주해지는 시간들…… 며칠 동안 사강은 ‘오전 일곱 시’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처럼 계속 오전 일곱 시에 대해 생각했다.
일곱 시 칠 분.
사강은 시계를 보았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에 모인 사람들 중 눈을 맞추거나 악수를 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아는 얼굴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생기는 안도감이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옆자리에 앉은 창백한 얼굴을 향해 어색하게 웃기도 했다.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대담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을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레스토랑 안에는 미역국을 끓이는 냄새와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달걀찜 냄새가 흥건했다. 모두 불 위에서 온기를 내뿜는 가정식 음식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음식들은 부엌에 서서 쌀을 씻고, 익숙한 감자 칼을 든 채 커다란 감자를 깎는 엄마의 뒷모습을 연상시켰다. 유리벽으로 마감된 오픈키친 안에서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여자를 보다가 사강은 고개를 돌렸다. 결국 불륜이 성공적일 수 없는 이유는 함께 부엌을 공유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시간이 부족해서는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었던 기억이 없다면, 그것이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진 않을까. 그녀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레시피’라고 적힌 메뉴판의 메뉴를 공들여 읽었다.   

 

. 따뜻한 식전주
. 햇볕에 말린 홍합과 신선한 들기름에 볶은 한우를 넣어 끓인 미역국
. 내일의 달걀찜  
. 아침 허브와 레몬을 곁들인 연어구이
. 봄날의 더덕구이
. 미니 꽃밥
. 완두콩과 밤을 넣은 돌솥밥
. 달콤한 디저트

 

메뉴판은 오븐에서 막 구워져 나온 삼십 분짜리 구연동화 같았다. ‘꽃밥’은 꽃밭처럼 들리는 이름이었고, ‘봄날의 더덕구이’은 3월에 캐낸 더덕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를 연상시켰다. 사강은 무심히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정수가 말했었다.
계절 음식을 먹는 건 그 계절의 뼈를 통째로 씹어 먹는 거라고.
그러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음식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강은 실연이 폭식이 아닌 절식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의 퍼레이드를 목격하고 있었다. 절식 중인 수녀이거나 금식 기도 중인 신부이거나 교회가 부흥하길 바라는 개척 교회의 목사이거나 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예비 수도승들처럼.
이들은 금식 기도원의 식당에 앉아 있는 환자들 같았다. 낮에 자거나, 밤에 자거나, 못자거나, 너무 많이 자서 부은 얼굴들이 눈 밑에 깔린 다크서클과 입가에 팬 주름들과 함께 자신들의 슬픈 이야기를 찬송하고 있었다.
사강은 메뉴판의 음식들을 소리 내 읽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위안을 주는 노래처럼 들릴 것이다. 그것은 뜨거운 불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음식들이었고, 비행기 일등석을 타는 사람들도 기내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었다. 메뉴판에는 망가진 식욕을 한 올 한 올 기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성공할지 미지수였다.
사강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와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강의 눈에 가장 먼저 파란색 LA 다저스 야구 모자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쓴 채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망가진 심장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내내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강은 남자가 사람들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실내의 밝은 조명이 아니었다면 사강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남자는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동자를 숨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착용한 병약한 사람일 것이다.
건너편 여자의 충혈된 눈에는 피곤함이 눈곱처럼 말라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다크서클 때문에 난투극 끝에 탈출한 사람처럼 보이는 여자도 있었다. 간신히 샤워까진 했는데 머리카락을 말릴 기운은 없었다는 듯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유난히 곱슬곱슬한 건너편 여자의 라코스테 셔츠는 어깨 부분이 아직 젖어 있었다. 사강은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혀 손가락 몇 개를 눈 위에 올려놓았다. 빛이 눈 사이로 스며들지 않도록. 그녀는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슬로나 스톡홀름처럼 한여름 백야를 가진 도시에선 어둠이 급작스레 찾아들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밀려오고, 도심에 세워진 희붐한 가로등과 함께 서서히 빠져나간다. 이런 도시에 있으면 어둠과 빛에 대한 감각은 달라진다. 태양이 너무 오래 떠 있는 도시에선 어둠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태양을 밀어낸 사람이라면 어둠을 향해 날아가는 박쥐처럼 깊은 동굴 속을 배회한다.   
이들에게 사라진 건 태양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오전의 활기였다.
아침이 되었지만 이들의 눈은 밤처럼 닫혀 있었다. 묵직한 자물쇠로 채워진 눈동자는 생기를 잃었고, 공허한 눈빛 뒤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사강은 이들의 얼굴에서 보통 사람들 같으면 충분한 수면만으로 지워졌을 악몽의 그림자를 보았다.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었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어느 날, 사강의 무릎 위에 이렇듯 뜨거운 물이 가득 든 주전자가 엎어졌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 이곳저곳이 장마 끝에 습기를 잔뜩 머금은 벽지같이 여기저기 벗겨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생각 없이 손톱을 뜯거나, 이유 없이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거나, 참가비를 5만 원이나 내고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강은 이 얼굴들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흩어져 앉아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사강은 이들을 ‘오전 일곱 시의 유령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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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여섯 시.
 사강은 독립단편영화제의 수상작들을 상영하는 시내의 작은 시네마테크 앞에 서 있었다. 같은 건물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전, 그녀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작은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세로가 가로
보다 훨씬 긴 간판이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

 

 사강은 간판의 작은 글씨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밤에는 백열등 밑에서 시를 쓰고 낮에는 형광등 아래에서 진료를 하는 의사가 운영하는 신경정신과 병원의 간판처럼 보였다. 누군가 무심히 이곳의 간판을 지나친다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아침병원’으로 오독할 만했다. 그녀에겐 이런 이름의 식당이 있다는 걸 상상하는 일조차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인도, 아부다비나 뮌스터의 좁고 어두운 골목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름의 식당이었다. 사강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휘황찬란하고 압도적인 도심의 간판들 사이에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라고 쓴 연두색 글자들은 너무 작아서 휘황찬란하고 거대한 글씨들에 압사당할 지경이었다.
 오전 여섯 시 십 분.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차가웠다.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테이크아웃 커피의 플라스틱 뚜껑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얼굴 위에 와 닿았다. 사강은 간판 앞에 서 있었다. 사강은 불룩해진 가방 속 물건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올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곳에 도착하게 될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러하리라.
  
                                                                    *

 

 오전 여섯 시 이십 분.
 이지훈은 결국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에 온 유일한 남자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황당한 장난일지 모른다는 생각 사이에서 그는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시내 쪽으로 운전을 하는 동안 그는 몇 번의 진입로에서 다시 한 번 유턴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망설였다. 그러나 정작 목적지에 도착하자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졌다. 그날따라 맑은 하늘과 유달리 화사했던 아침 햇살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차피’란 말은 그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이곳까지 온 것만은 분명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

 

 지훈은 자동차 안에서 간판을 바라보았다.
 인터넷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작고, 무심하고, 철저히 손님을 무시한 식당 간판이었다. 저런 간판을 달고 망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이 레스토랑이 서울에선 먹기 힘든 진주 ‘꽃밥’을 파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는 몇 번의 검색을 시도했다.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검색한 단어는 ‘꽃밥’이었는데, 꽃밥은 진주 사람들이 부르는 비빔밥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여러 빛깔의 다양한 계절 나물들과 달걀노른자를 올려놓아 밥이 아니라 꽃밭처럼 보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했다.
 봄날에 먹는 꽃밥은 어떤 맛일까.
 4월의 꽃밭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맛일까?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는 게 그로선 꽤나 유감스러웠다.  

 

 지훈이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는 아까부터 시네마테크 입구에 서 있던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시네마테크 옆에 조성된 작은 정원 앞에 서 있었다.
 어깨를 덮는 긴 생머리와 동그란 이마는 부드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으로 반쯤 가려져 있었다. 서 있는 것이 익숙한 사람처럼 곧은 어깨와 반듯한 허리가 어딘가 절도 있어 보였다. 부드러운 검정색 가죽 재킷을 입은 여자는 검정색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종아리에 꼭 맞는 검정색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는데, 주름 하나 없이 쭉 뻗은 가죽의 질감은 부츠 안의 종아리가 충분히 곧고 날씬하리란 상상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입은 옷은 누군가의 몇 달치 월급일 수도 있는 고급스러운 것들이었다. 그러나 강렬한 첫인상과 달리 여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사라질 것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존재가 희미해지는 건 실연당한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일까. 미술관의 명작 아래에 적혀 있는  ‘접근하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을 본 것처럼 지훈은 여자를 바라보기 위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가 한 손으로 긴 머리를 묶었다 풀기를 반복할 때마다 길고 아름다운 목선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남자라면 응당 이런 숙녀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낼 것이다. 기꺼이 도와주려고 달려들 것이다. 주말 명동 한복판에서 봤더라도 한 눈에 알아볼 법한 여자였고, 순식간에 다가서기 쉽지 않을 거라는 열패감을 안겨주는 기묘한 느낌까지 있었다. 여자가 매고 있는 검정색 가방은 오랫동안 사용한 것인지 가죽이 구겨지듯 주름져 늘어져 있었다.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가방이었다. 그녀는 가방을 한 손으로 움켜잡듯 쥐고 있었다.
 여자는 뭔가 결심한 사람처럼 레스토랑의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 쥐고 있던 테이크아웃 커피의 플라스틱 뚜껑을 다시 열더니 바닥에 쪼그려 앉았고, 시네마테크로 들어가는 입구에 만들어진 작은 정원을 바라봤다. 여자는 식어버린 커피를 밤새 얼어붙은 차가운 땅 위에 주의 깊게 붓고 있었다. 지훈은 무심한 얼굴로 흙 위에 커피를 붓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설마 커피나무라도 열리길 바라는 걸까.

 

 그에게도 딸기 우유를 부으면 딸기가, 오렌지 주스를 부으면 오렌지 나무가 주렁주렁 피어오를 것이라 믿었던 엉뚱하고 황당한 여섯 살 시절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외할머니에게 손바닥을 맞았다. 한 살 위인 형도 그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형은 그의 궁둥이에 물파스를 듬뿍 발라 안 그래도 부풀어 발개진 엉덩이를 불쏘시개처럼 만들어놓곤 했다. 형은 외할머니 몰래 외할아버지의 자동차 주유구에 500밀리리터짜리 우유를 퍼붓는 엽기적인 장난을 쳤다. 형이 더듬거리는 말투로 “자동차도 우유를 마셔야 키가 크고 예뻐져!”라고 소리 질렀을 때, 외할머니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이런 사건들은 훗날 예술가가 되는 사람들의 유별난 유년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화였다.
 형은 보통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상태였다. 지훈 역시 당시에는 형의 영향을 받아 거의 정상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산만했다. 형이 말 대신 소리를 지르거나 비명을 지를 때, 그 역시 고함을 치거나 손바닥이 발개질 정도로 박수를 쳤다. 그는 형이 아침마다 먹는 하얀색 알약을 같은 개수만큼 함께 먹고 싶어 했다. 두 명의 ‘덤 앤 더머’ 앞에서 육십이 훌쩍 넘은 백발의 노인이 할 수 있는 건, 엄혹한 얼굴로 매를 드는 것뿐이었다.
 애써 지우고 있었던 기억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유물이나 화석처럼 특정 장소에나 가야 열어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여자가 그의 유년기의 입구에 서서 무심한 얼굴로 재생 버튼을 누른 덕분에, 그는 열린 기억의 틈새로 불어오는 과거의 바람을 느꼈다.  
 여자가 빈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앞뒤로 흔들리는 쓰레기통을 배경으로 여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주의 깊게 관찰하던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애써 외면했던 불길함이 몰려왔다. 그는 차의 시동을 껐다. 이제야 그는 현실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훈 역시 저 이상한 이름의 레스토랑 안에 들어가야 할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지훈은 시계를 봤다.
 일곱 시 칠 분.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은 일곱 시였다. 
 그는 이곳에 오는 누구라도 잠시 머뭇대며 믿을 수 없이 작은 저 간판을 올려볼 것이란 걸 깨달았다. 누구나 가볍게 지나칠법한 저런 작은 글자를 좇아오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삶 역시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지훈은 운전대를 놓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지훈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건 망설임과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검정색 가죽부츠를 신은 저 여자는,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3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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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 2012.09.25 20:5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재밌게 잘 읽었어요~~빨리 읽히고 좋아요~~몰입도도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