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인권신문 | 기사 입력 0006년 8월 28일

7세 된 Y(서울 구로구)가 어린이집 친구에게 자기 가족을 소개한다. 소개받은 친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자신 앞에 서 있는 두 아저씨를 한참 동안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Y에게 묻는다. “이 사람이 아빠야? 또 이 사람도 아빠고?” Y는 고개를 끄덕이며, “음,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쪄.”라고 애매하게 대답한다. Y의 가족으로 밝혀진 두 아저씨가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자, 이번에는 친구가 직접 아저씨들에게 묻는다. “아저씨가 Y 아빠고, 아저씨가 Y 엄마 맞아요? 아니면, 둘 다 아빠예요?” 질문을 받은 두 남자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짓는다. 그러자 Y의 친구는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그렇구나. 내가 아는 사람들은 남자가 아빠고 여자가 엄마인데, Y네 집은 엄마, 아빠 모두 남자구나.” Y가 친구를 보며 그건 아니라는 표정을 짓자, 친구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둘 다 아빠구나! 와, Y야! 넌 아빠 둘 하고 사는구나! 좋겠다. 셋이 야구도 할 수 있고! 근데 밥은 누가 차려줘? 하긴 요즘 세상에 아빠가 밥 차리는 일이 대단한 일은 아니양.” Y는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두 아저씨도 Y와 함께 끄덕인다.
그러자 친구는 진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이제 우리 가서 놀아도 돼요? 아저씨들. 아니, Y 엄마, 아빠! 아니, 아빠, 아빠. 아이, 잘 모르겠네. 암튼 우린 이제 놀러 가도 되죠?”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Y와 친구는 두 손을 꼭 잡고 방으로 후다닥 뛰어간다.

 그렇다. Y의 부모(보호자)는 동성애자이다.
경상도 문경 출신인 Y의 아빠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만난 8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했다. 연애 경험이 없었던 Y의 아빠는 자신이 선천적으로 섹스에 대해 무심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정신적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면서 둘 사이에서 Y가 태어났다. 하지만 Y가 28개월 되었을 무렵 Y의 아빠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이혼을 선택했다. 젊은 Y 엄마의 장래를 생각해 Y는 아빠가 키우기로 했다. Y 엄마는 다행히 남편을 이해했다. 두 사람이 성 정체성의 문제를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대화를 자주 나눴던 사이였기에 가능했던 ‘덜(!) 슬픈’ 이별이었다. 안면 장애를 갖고 태어난 Y는 그때부터 아빠의 손에서 자랐다.
 Y가 네 살 때, Y의 아빠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물론, 남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다. 아빠의 남자 애인은 마치 친엄마처럼 Y를돌봤고, 자연스럽게 세 남자는 동거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가족들은 두 남자의 관계를 인정했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살았던 그들은 편견과 구설수에 삶이 평탄한 날이 적었다. Y의 아빠와 애인은 사실혼 관계였지만, 부부로서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Y는 두 사람에게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편부인 셈이다.
하지만 오는 8일이면 이 가정에도 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시민결합결혼제도’가 정식으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Y 아빠와 같은 동성애 커플도 정식으로 부부가 될 수 있다. 이번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대만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성 간의 결혼을 제도화한 나라가 되며, 세계적으로는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를 인정한 열여덟 번째 나라가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388만 동성애자들이 간절히 바랐던 소망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미 서울에만 8,000건 이상의 서류가 접수된 상황이고, 전국적으로는 1만 8,000명이 넘는 동성애자들이 ‘시민결합결혼제도’를 통해 정식 부부로 인정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로써 그동안 인권의 사각지대로만 여겨져왔던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진일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 자체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의견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시민결합결혼제도’가 동성애자의 인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긴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Y의 사례와 같이, 가정에서 부모를 성별로만 구별할 경우,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은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상의 불편함, 불이익은 고스란히 Y, 즉 아이에게로 돌아간다. 예를 들어, 현재 7세인 Y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그때 작성해야 할 서류들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대로라면 Y는 아빠는 있지만, 엄마는 없는 아이가 된다. 왜냐면 아이의 부모(학부형)는 반드시 남성과 여성의 조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결합결혼제도’ 시행과 함께 Y의 아빠는 법적으로 배우자가 있는 남성, 즉 유부남이 된다. 결국 Y의 입장에서 보자면, (법적으로) 아빠의 배우자를 엄마라고 부를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아빠의 배우자이므로 아빠라고도 볼 수 없다. 정부는 이 문제를 점진적으로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현재까지 정부는 아무런 대안도 마련한 바가 없으며, 동성애자 인권 신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민결합결혼제도’를 반대했던 일부 보수 단체 및 종교 단체들은 동성애자들의 결혼제도에서 한발 양보했기 때문에 (동성애자) 부모 문제에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즉, 동성연애자들의 결혼은 어쩔 수 없이 인정했지만, 법적으로 동성연애자들이 부모가 되는 것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얼마 전 대표적인 보수 개신교 목사로 알려진 오○○ 목사의 ‘동성애=수간(獸姦)=시간(屍姦)’ 발언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되기도 했다. 보수 개신교 단체는 “‘시민결합결혼제도’ 자체가 이미 해악이며, 만약 더 큰 악행(동성애 학부모의 법적인 인정)을 저지른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일부 보수 강경 종교단체연합에서는 ‘동성애 자체가 지옥행 직행 차표’라고 선전하고 있다. 합리적인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진영에서는 “물론 동성애자 부모를 둔 아이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동성애자들이 부모가 될 경우 평범한 아이들이 겪을 성 정체성 혼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성애 단체 ‘동무사이’에서 최근 조사한 설문의 결과를 보면, 보수 단체들의 주장을 재고해볼 만하다.
 만 12세 이하 초등학생의 경우 58.8퍼센트가 친구의 부모가 동성(애자)인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했으며, 28.8퍼센트는 친구에게 설명을 들은 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으며, 8.8퍼센트만이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3.6퍼센트는 생각해본 적 없다고 답변했다. 초등학생들의 경우 오히려 성인들보다 성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동무사이’의 오○○ 간사는 동성애자 부모를 인정하는 것은 추상적인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것이 거부될 경우 우리 아이들의 일부가 아무런 준비 없이 법의 테두리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부모의 인정은 재산 분할, 상속, 입양 등의 권리, 그리고 입원이나 감옥 면회, 신원보증 등 소수자들이 실질 생활에서 겪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고 설명한다.
‘동무사이’에서는 동성애자 부모를 둔 아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동성애자 부모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풍토를 만듦과 동시에, 서류상으로 부(아버지)와 모(어머니)를 성별에 따라 구별했던 것을 폐지하고 부모1, 부모2로 표기하자는 것이다. 보호자1, 2도방안이 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이미 8년 전부터 ‘파트너 등록제’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는데, 이 제도는 동성同性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권 신청서 등의 각종 민원 관련 서류의 부모 인적 사항 기재란에 ‘아버지father’, ‘어머니mother’ 대신 ‘부모 parent 1’, ‘부모 parent 2’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 제도이다. 영국 정부가 부모의 성별이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성적 차별이라는 동성애 옹호 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를 옹호하는 언어학자들은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전적 의미를 재정립 혹은 확장하자고 주장한다.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발간된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아버지’는 명사이며, 1) 자기를 낳아준 남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2) 자녀를 둔 남자를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이르거나 부르는 말, 3) 자녀의 이름 뒤에 붙여, 자기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4) 자기를 낳아준 남자처럼 삼은 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이상 네 가지로 정의되고 있다. 네 가지 정의에 모두 ‘남(자)’이라는 성별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뜻을 더 추가하자는 것이 동성애 옹호 언어학자들의 주장이다. 5)자기를 낳거나 길러준 남자나 여자 중 한 명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혹은 자신을 낳고, 길러준 남자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자. 물론, 어머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전적 의미를 임의로 추가한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며, 단지 사전적인 의미가 확장된다고 실효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아예 동성애 부모를 칭하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동성애자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과 별개로 보는 것이 옳다. 아동 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들의 자식을 동성애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수 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동성애자 부모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동성애자의 자식들의 장래나 그들의 권리까지 빼앗아선 안 될 것이다. Y의 부모가 동성애자라고, Y 역시 동성애자라고 볼 순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러한 아동들의 권리일지도 모른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편을 갈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아직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의 권리를 생각해볼 때다.
친구 아빠의 성별은 아이들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친구와 언제, 어떻게 놀 수 있느냐이다. Y와 친구처럼 말이다. 결국,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일은 부모의 성 정체성을 구별하여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 잘 어울려서 뛰놀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편견을 완전히 없앨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덜(!) 불편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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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소년, 노하라 신노스케는 명랑했다

환경과산모신문 | 기사 입력 0000년 9월 8일

 

8년 전 전국적으로 이상한 문자메시지와 메일이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된 적이 있었다.

임산부, 노약자, 특히 심장 약한 분들은 절대 보지 마세요!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된 이후 한 임산부가 아기를 출산했는데, 안구의 흰자여야 할 부분이 검은색이고, 검은 눈동자 대신 새하얀 눈동자로 태어났대요. 심지어 이 신생아는 코도 없고, 머리는 비정상적으로 커서 몸과 머리의 비율이 거의 일대일이라네요. 무서운 방사능 피폭의 공포가 드디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사진도 첨부합니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거짓이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이 비정상적인 신생아의 출생이 사실이라고 즉각 확인한 뒤, 공식 발표를 했지만, 기형아의 출산은 방사능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밝혔다. 물론 일본 정부의 발표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노하라 신노스케’라는 이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 대신 ‘피폭꼬마’ 혹은 ‘피폭소년’이라고 불렀으며 이 아이를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의 상징적 인물로 여겼다. 심지어 『뉴욕 타임스』 아시아판의 표지 모델로까지 거론되었다.


산부인과 전문의 오○○ 원장(둥근산부인과, 경북 문경시 소재)은 기관지 회원들과 함께 지난 8월, 후쿠시마에 가서 피폭소년 노하라 신노스케를 직접 만나고 왔다. 오 원장은 “솔직히 신노스케 군을 만나기 전까지는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는데 신노스케 군이 명랑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모두들 행복해했다.”고 전했다. 언론에 알려진 것과 같이 신노스케 군의 머리는 과도하게 컸고 넓적했으며, 코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고, 안구의 색도 비정상적이었지만, 행동이나 말투는 여느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전혀 별다른 점이 없었다고 한다. 진한 눈썹과 성적인 농담을 즐기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고. 신노스케는 동갑내기들보다 어른스럽게 생각하며 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이다운 천진함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액션가면>과 <건담> 로봇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네 살 어린 여동생 히마와리 양을 짓궂게 괴롭히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오 원장은 신노스케 군이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울라울라(일본 애니메이션 <액션가면>의 주제음악)’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춤까지 췄다고 말하며 웃었다.
신노스케 군이 비정상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명랑하게 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주변의 도움과 일본 정부가 펼치고 있는 ‘무관심’ 캠페인 덕이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수년 전부터 기형아에게 무관심하자는 이른바 ‘무관심’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이 캠페인은 기형아의 외모에 무심하자, 그들을 빤히 쳐다보지 말자, 그들에게 특별 대우를 해주지 말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운동이다. 실제로 일본 사회에서는 이미 신노스케 군 정도의 비정상적인 외모는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신노스케 군의 아버지 요시토 씨의 증언에 따르면, 신노스케 군이 다니는 학교에는 자신의 아들보다 외형적으로 훨씬 심각한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신노스케처럼 다른 장애 학생들도 별문제 없이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으며, 지역사회 내에서도 잘 어울려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노스케 군의 이러한 명랑한 모습을 조만간에 애니메이션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신에이동화와 아사히 TV가 신노스케 군의 이야기를 <Crayon Shin Chan>이라는 제목의 TV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시 방영 예정이다. 향후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지난달 8일 둥근산부인과에서 기형아가 태어났는데 당시 오 원장은 신생아의 부모에게 애석함을 전혀 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 원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솔직히 기쁜 일이라고 할 순 없지요. 아이의 코가 없었거든요. 콧날이 서 있어야 할 곳이 반질반질했어요. 하지만 콧구멍은 시원하게 두 개가 잘 뚫려 있었어요. 그러니까 너무 크게 슬퍼하거나 낙담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냄새도 잘 맡을 수 있고, 기능적으로는 완벽한 상태였어요. 단지 콧대가 없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코가 없는 부위가 아주 매끈했기 때문에 미학적으로도 최악이라곤 할 수 없었어요. 매끈한 얼굴에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이는 평균치보다 약간 작은 미숙아였지만, 코 빼고는 다 정상이었어요. 특히 성기의 경우는 평균치보다 훨씬 큰 편이었어요. 심장도 팔딱팔딱 잘 뛰었고, 산모도 아주 건강했어요. 코 없는 신생아를 부모한테 보여주면서 일부러 이렇게 말했어요. ‘아드님 코 좀 보세요! 좀 작네요. 아니, 자세히 보니 아예 아무것도 없네요. 하하하. 하지만 고추 보세요. 정말 큼직하죠? 하하하. 콧살이 다 고추로 갔나 보네! 아주 장군감입니다, 장군감! 이놈 큰일 낼 놈이네! 하하하.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코가 없이 태어난 이 아이의 이름은 Y라고 했다.
Y의 부모는 아이를 처음 본 순간에는 큰 충격을 받고 상심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 이제는 아들의 기형을 소재로 농담까지 한다. 그래도 입 없는 것보다는 코 없는 게 낫지 않겠냐며. 고추는 제대로 달렸으니, 남자구실을 하지 않겠냐며. 피폭소년보다는 Y가 훨씬 잘생겼다는 오 원장의 말에 Y의 부모들은 ‘물론’이라고 맞장구를 치며,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그리고 신노스케보다 훨씬 더 명랑한 아이로 키울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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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몽상이 실험적 글쓰기를 만나다!

60여개의 신문기사로 모자이크된 특이한 가담항설

끝없이 갈라지는 패러디의 향연

아이러니와 풍자를 넘어서 가슴을 움직이는 강렬한 페이소스

농담의, 농담에 의한, 농담을 위한 진실의 잔해들

 

 

■■■ 책소개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원래가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의 변주일 뿐이다. 완전히 처음 보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생경한 이야기. 소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문학적 상상력은 그러한 가설을 늘어놓으며 풍요로운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입증된다.

강병융은 장편소설 『상상인간 이야기』, 소설집 『무진장』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과 낯선 담론의 구현을 추구해왔다.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는 그가 6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소설로, 독립적인 60여 개의 기사와 9개의 만평이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최근 들어 젊은 작가들에 의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중간문학이 선보이고 있지만 이 작품처럼 내용과 형식이 과감한 파격을 취한 문학은 없었다. 패러디와 키치적 유머로써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문학적 시도인 이 작품은 신선한 충격과 사고의 전환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무수한 조각들로 맞춰지는 하나, 그리고 수십 개의 이야기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는 매우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듯 보이는 접근방식으로 기사, 편지, 사전항목, 그림 등 다양한 형식들을 종횡무진 나열하고 배치하는 특이한 구성을 통해 ‘Y’라는 인물의 삶을 퍼즐을 맞추듯 재구축하고 있다.

작가는 파편적인 이미지들, 단편적인 사건들, 감정의 단면들의 우연적 배치와 필연적 연결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의 ‘정체성’이 구성되는가, 또한 어떻게 하나의 ‘파국’이 완성되는가 하는 문제를 가벼우면서도 심도 있는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우선 ‘Y’라는 인물을 하나의 기표로 보고 그 동일한 기표를 각각의 기사들 안에서 전혀 다른 맥락에 놓는다. 그리고 그러한 상이한 맥락을 통해 동일한 기표는 시시각각 스스로 다른 것으로 변화하고 또한 주변을 변화시킨다.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 안에서 ‘Y’의 삶이 파국으로 치닫고 와해되는 과정이, 그의 아버지 ‘강모’의 소설이 완성되는 과정, 그의 어머니 ‘장민영’의 미술작품들이 확립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같은 내용의 드라마로 완결되는 과정과 평행하게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그와 상통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를 들여다보면 몇 가지 종류의 기사 수십 개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각각의 기사들은 따로 떼어 놓고 봤을 때 하나의 독립되고 완결된 서사를 이룬다. 그리고 그 단락 사이사이에 안팎 없는 이야기들은 한 축으로는 각각의 기사가 꼬리를 물듯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리하여 육십여 개의 기사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다.

결국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는 일견 파편처럼 그려진 단면들이 어떻게 하나의 삶을 다시 재구성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우리에게 거꾸로 되묻고 있는 작품이다.

농담의, 농담에 의한, 농담을 위한 진실의 잔해들

                            - 희극의 그릇에 담긴 비극의 요리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는 기사의 형식으로 유행의 패러디와 페티시, 광고, 문화 · 사회의 비판적인 시선을 폭로하고 있다. 코 없이 태어난 한 남자가 결국엔 스스로 거세를 선택하게 된다. 암울한 이야기를 읽는 동안 시종일관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인식하고 재미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친숙한 세계의 이야기 속에 새로운 세계가 끼어들면서 비틀어 질 때 느끼는 짜릿한 일탈. 익숙한 것이 생경해지는 순간 농담의 매력은 극대화된다. 농담은 삶을 반영하는 허구의 본질에 접근하면서 이야기가 전할 수 있는 것들을 향한다. 허구와 현실이 뒤섞여 어디부터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순간에 우리는 이야기가 가진 가능성을 만나게 된다.

서로 전혀 관계가 없게 보이는 여러 뒤섞인 사실들 안에서 하나의 길을 내고 그 사이에 드러나는 몇 가지 진실들, 그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처음의 낯설음을 넘어서 Y의 이야기가 분명하게 들려오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를 통해 잡스러운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세계가 어떤 허구적 진실성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병융의 잡학다식한 지식과 농담과 장난의 아슬아슬한 경계의 시도가 유감없이 발휘된 이 작품은 하나의 풍자 문학으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 추천사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는 거짓말을 반 스푼만 보태면 매 페이지마다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절정과 황홀로 가득하다. 기발하고 해괴한 이야기의 화소(話素)들은 희유하기 이를 데 없는 형식을 통해 우리의 지적 문화적 성감대를 자극한다. 소설 속의 분절된 이야기들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합종연횡한다. 강병융은 폴 오스터의 동물적인 서사 직조 능력과 코맥 매카시의 묵시론적인 위트가 행복하게 만났을 때, 어떤 소설이 쓰여질 수 있는지를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온갖 미디어처럼, 수많은 가상의 페이지터너(Page Turner)들이 나타나 책장을 넘겨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사에 대한 몰입도가 가히 폭력적인 수준인데, 이 소설은 21세기 한국소설의 사회적 감수성이 앞당겨 길어 올린 인상적인 성취인 동시에 향후의 풍속을 알려주는 풍향계다.

- 김도언(소설가)

강병융의 소설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를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소설을 뜻하는 옛말인 가담항설(街談巷說)을 떠올렸다. 60여개의 흥미로운 신문기사로 모자이크된 특이한 가담항설. 팩트와 픽션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계속될, 결코 물리지 않는 저잣거리의 이야기들. 그러나 우리는 강병융이 펼쳐놓은 가담항설을 희희낙락 정신없이 읽어나가다가 어느새 태어날 때부터 코가 없는 주인공 Y씨가 살아온 삶의 연혁(沿革)을 재구성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웃기고 애처롭고 화나고 슬픈. 독특한 소설적 실험을 선보인 작가 덕분에 독자들은 적어도 한 권 값의 소설로 두 편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 복도훈(문학평론가)

■■■ 줄거리

Y는 코가 없이 태어났다. Y의 아버지는 유명 소설가로 Y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고 Y의 엄마와 이혼을 한 뒤 새로운 사람(남자 파트너)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 Y는 비록 코가 없는 장애아지만 아빠와 아마(아빠의 새로운 파트너의 명명)의 사랑을 받으며 티 없이 자란다.

초등학생이 되기 몇 달 전, Y는 운명의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이름은 D. Y는 그녀를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게 되고, 그 뒤로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나비들이 날아다닌다고 느낀다.

코가 없는 Y에게 학교생활이 평탄할 리 없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따돌림이 시작된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Y를 향한 사람들의 삐뚤어진 시선과 동급생들의 괴롭힘은 끊이질 않는다.

Y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야구와 책읽기, 그리고 유일한 친구 이상기. 그 역시 뚱뚱하다는 이유로 일진들에게 늘 당했기 때문에 둘은 쉽게 소통하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정을 키워간다.

Y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대학생활은 Y의 환상과는 크게 다르고, 차별과 따돌림 역시 달라지지 않는다. 현실을 깨달은 Y는 군대에 가길 결심하지만 이마저도 좌절되어 잉여처럼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첫사랑 D에 대한 연정을 간직해오던 어느 날, Y는 노래방에서 D가 도우미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래방에 간다. 하지만 Y의 못생긴 얼굴을 본 D는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짓고 차갑게 외면하며 나가버린다. Y는 그 사건으로 크게 낙담한다.

마음의 상처를 받는 Y는 엘리베이터에서 한 소녀를 보고 우발적으로 성폭행을 저지른다. 그 때문에 Y는 감옥에 가게 되고, 죄책감으로 감옥에서 화학적 거세를 자청한다.

그런데 성실한 생활을 하며 모범수로 일찍 출감한 Y는 어느 날 노래방에서 성기가 절단된 채로 발견된다.

강병융

1975년 서울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학사, 석사, 박사 수료.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박사(러시아문학).

2002년 『정신과표현』 신인작품 공모에 「낙찰」이 당선되어 등단. 연작소설 『상상인간 이야기』(2005), 소설집 『무진장』(2006), 연구서 『자먀찐의 “우리들” 연구』(2010, 러시아어) 출간. 2009년 제8회 한국문학 번역 신인상 수상(노어권). 현재 명지대(소설창작), 한남대(소설창작), 뿌쉬낀하우스(러시아문학) 출강.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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