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일보> 2012년 6월 16일 신문 기사

김혜림 | khr12@jejudomin.co.kr

극도로 예민한 마태수, 삼류 배우 홍마리, 직장에서 해고당한 조. 그들은 상상하는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준다는 수수께끼의 인물 레몽뚜 장을 따라 ‘더비 카운티 메디컬센터’를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여성 리를 보게 된다.

레몽뚜 장은 세 사람에게 리의 영혼을 찾게 하고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 모호한 시공간 속에서 리의 영혼을 찾는 그들은 괴기하고 섬뜩한 각자의 과거가 담긴 환상을 보게 된다.

작가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소설 속에서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실제적 인물인 레몽뚜 장마저 누군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인물로 드러나는 것이다. 즉 소설 속에서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레몽뚜 장의 실제성을 없애고 상상과 현실의 구분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 모든 것이 뒤섞여버린다.

중요한 것은 이 구분조차 불가능한 상상과 현실의 뒤섞임이 결국 우리의 또 하나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레몽뚜 장을 통해 내면에 감춰두었던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현실과 상상을 교묘하게 넘나들며 인간의 상상은 불안과 공포와 욕망이 만들어낸 또 다른 현실임을 보여준다.

기사 원문 보기:http://www.jeju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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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6222004285&code=960205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6/h2012062221495884210.htm

 

 세계일보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20622022057&subctg1=&subctg2=

 

 

모두 6월 22일에 실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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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2012년 6월 18일 월요일 기사 발췌

 "하상훈·이종산·김하서, 젊은작가 젊은소설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신인 작가들의 소설이 잇따라 나왔다.

(중략)

 2010년 '앨리스를 아시나요?'로 '제2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김하서(37)씨의 첫 장편소설 '레몽뚜 장의 상상발전소'는 현실과 상상이라는 두 이질적인 대상을 교묘하게 뒤섞는다.

 소설 속 주인공 레몽뚜 장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현대판이다. 메피스토펠레스처럼 그 정체가 불분명하며 인간 내면에 잠들어 있는 욕망을 이뤄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주 사소한 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할 정도로 극도로 예민한 만성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고 있는 '마태수', 삼류 배우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홍마리', 한때 대박을 친 온라인 게임의 프로그래머였으나 새로운 게임 기획의 실패로 직장도 잃고 한순간에 급전직하한 '조'. 이들은 수수께끼 같은 정체불명의 인물인 레몽뚜 장을 만나게 되면서 삶이 뒤바뀐다.

 각자의 내면에 감춰뒀던 기괴하면서도 위험한, 하지만 강렬히 욕망하는 것들을 목도하는 한 인물들은 터무니없는 상황이 자신의 상상이며 그것이 곧 자신의 현실임을 깨닫는다.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소설 속에서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실제적 인물인 레몽뚜 장마저 누군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인물로 드러나는 것이다.

304쪽, 1만3000원, 자음과모음

기사 전문 보기: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cID=&ar_id=NISX20120618_0011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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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저자는 낯설고 제목은 오리무중이다(파울 첼란의 시 구절이라 한다). 하지만 무심하게 책장을 펼치는 순간 자르기는커녕 책을 집어든 손이 무척이나 대견하게 여겨지는 책, 오랜만에 ‘손맛’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대체 어떤 책인가. 그나마 단서가 되는 건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란 부제다. 하지만 넘겨보면 문화사가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 같은 책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과 혁명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책 읽기 자체의 혁명성을 다룬다. 저자의 주장은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며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닷새 밤 동안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얼핏 대수롭지 않은 주장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책을 읽어버렸다는 것’으로 다시 새기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맙소사, 책을 읽어버리고야 말았다!”는 느낌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책은 본래 읽을 수가 없다. 읽으면 미쳐버리기 때문이다. 알면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정도가 아니면 일류의 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 따라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광기와 함께 열광과 열락을 내포하며 독서의 즐거움은 신조차도 선망하는 어떤 것이다. 최후 심판의 날에 책을 옆구리에 끼고 온 우리를 보고서 신은 사도 베드로에게 얼굴을 돌려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라고 저자는 상상한다. “이 사람들은 보답이 필요 없어. 그들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사람들은 책 읽는 걸 좋아하니까.” 곧 책 읽기의 즐거움을 누리는 자들에겐 불멸의 영광도 필요치 않다!

책을 읽고 쓴다는 게 어째서 그토록 대단한가. 그 자체가 혁명이고 혁명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가령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대혁명은 한 마디로 성서를 읽는 운동이었다. 그가 한 일은 성서를 읽고 번역하고 수없이 많은 책을 쓰는 것이었다. 루터는 이상할 정도로, 궁극에는 이상해질 정도로 철저하게 성서를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세계가 그 근거이자 준거여야 할 텍스트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책을 읽는 내가 미쳤거나 세상이 미쳤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닌가. 농민의 아들에 불과했던 루터지만 성서를 읽어버리는 바람에 교황의 방해자가 되었다. 자신이 읽은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함으로써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책을 읽은 이상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루터는 말했다. 대천사에게서 ‘읽어라’는 계시를 받았던 무함마드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나 거부했지만 그는 신에게 선택돼 읽으라는 절대명령을 받는다. 문맹이었던 무함마드가 결국 읽을 수 없는 것을 읽고 잉태한 것이 <코란>이고 그로써 이슬람 세계를 만들어낸다. 무함마드의 ‘혁명’이다. 저자가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힘이고, 혁명은 문학으로부터만 일어난다고 거듭 주장하는 근거다.

이러한 혁명의 ‘본체’로 저자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12세기의 ‘중세 해석자 혁명’이다. 11세기 말 피사의 도서관 구석에서 유스티아누스의 법전이 발견되고, 600년 가까이 망각에 묻혀 있던 이 로마법을 바탕으로 교회법을 대대적으로 다시 고쳐 쓰는 작업이 진행된다. 그렇게 해서 집성된 것이 12세기 중반 교회법학자 그라티우스의 교령집이다. 이 새로운 법을 기본으로 유럽 전체를 통일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로서 ‘교회’가 성립되고, 바로 이 교회가 근대국가의 원형이 된다는 설명이다. 근대국가만이 아니다. ‘준거를 명시하다’는 실증주의 역사학 또한 법학의 영향으로 발생한 것이다. 더 나아가 12세기 혁명으로 탄생한 법학이 유럽의 첫 ‘과학’이며 모든 과학의 원천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한 변화를 낳은 혁명의 실상은 사실 수수하다. 단지 중세의 수많은 신학자, 법학자들이 홀로 책장을 넘기며 법문을 고쳐 써나간 것이니까. 사사키 아타루는 그러한 혁명이 우리에게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철학이 끝났다거나 문학이 끝났다는 주장은 낭설이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으며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체온을 약간 상승하게 해주는 책이다.

이현우<서평가·필명 ‘로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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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2년 06월 12일 화요일

‘발칙한 상상력’ 상상을 뛰어넘다

신인작가 3人 화제의 장편소설

신인 작가들의 장편소설 출간이 활발하다.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 주는 이들의 작품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다. 2010년 제2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던 김하서의 첫 장편소설 ‘레몽뚜 장의 상상발전소’(자음과모음)를 비롯, 올해 새롭게 제정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의 첫 회 수상자로 선정된 이종산의 장편 ‘코끼리는 안녕,’과 하상훈의 장편 ‘아프리카의 뿔’(이상 문학동네) 등이 최근 잇따라 선보였다.

(중략)

김하서의 첫 장편소설 ‘레몽뚜 장의 상상발전소’는 현실과 상상을 교묘하게 뒤섞어 어느 것이 상상이고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세계를 보여 준다.

소설은 ‘레몽뚜 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다른 등장인물들이 내면에 감춰 두었던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을 다룬다. 작가는 특히 불확실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인간의 불안, 그로 인한 공포가 어떤 상상으로 탈바꿈하는지를 그로테스크하게 펼쳐 보인다.

문학평론가 심진경 씨는 “지금까지 읽어 본 적 없는 ‘치명적이고 눈부신 착란의 순간’을 소설은 포착하고 있다. 그것은 상상과 현실이 뒤섞이다가 급기야 모든 것이 무너지면서 불타오르는 순간”이라며 “작가는 바로 그 순간을 쭉 늘렸다가 팍 눌렀다가를 반복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미로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고 분석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전문 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61201032530065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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