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로 영화제를 알렸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제안한 것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실연의 기념품’을 처리할 공간을 대신 마련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편의상 그것을 ‘실연의 기념품 가게’라고 불렀다. 사강은 레스토랑 입구에 놓여 있는 커다란 상자를 바라봤다. 바로 저 상자에 사람들이 가져온 실연의 흔적들이 버려질 것이었다.  
세상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있을까.
한낮의 눈부신 태양 속에도 그림자가 숨겨져 있다.
연애가 끝나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흔적을 남긴다. 서로를 기념해주었던 반지와 이니셜이 박힌 목걸이, 길거리 가판대에서 구입한 싸구려 액세서리들, 여행 중 면세점에서 충동적으로 사들인 고가의 실크 스카프와 가방, 책, 음반…… 그는 좋아하지만 그녀는 좋아하지 않았던 뮤지션의 공연 티켓과 그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입지 않았을 시폰 프릴이 달린 스커트, 진분홍색 메리제인 슈즈, 브래지어 끈이 살짝 비치는 시스루 블라우스 같은 옷들, 혹은…… 원하지 않는 아기, ‘러브 차일드’라 부르는 아이들이 남겨지기도 한다. 그렇게 연애가 끝나고 사랑이 죽고 나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물건들이 범죄 현장의 유류품처럼 남는다. 
실연 후 남게 되는 이런 물건들의 공통점은 버리기도 힘들고, 가지고 있기는 더더욱 힘들다는 것이다. 실연이 남긴 이런 얼룩을 클리닝하는 세탁소가 환영받는 건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만약 그런 세탁소가 존재한다면 지우기 힘든 얼룩이 가득한 세탁물을 든 손님들로 가득찰 것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누군가에게서 받은 상처의 기념품들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있는 기념품 가게가 있다고 치자. 처리하기 힘든 이런 기념품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교환의 방식은 실용주의자들의 발상이다. ‘실연의 기념품 가게’는 일 주년 기념 반지를 종로의 금은방에 팔아치우는 것보다 한결 품위 있었다.  
집단적인 상처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풍경 안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누군가의 상처가 자신에게 돌아오고, 자신의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되돌아가며 상처의 모서리는 무뎌지고 치유되어 가는 것이다. 누구보다 이들은 실연의 기념품에 묻은 슬픔이나 분노, 기쁨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치유는 이곳에서 가장 큰 희망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영화제의 이름조차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영화제’가 아닌가.
사강은 그저 웃고 싶어서 보는 예능프로그램에서조차 치유를 이유로 고해성사하며 우는 연예인들을 보는 게 불편했다.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 가수도, 염색을 하지 않으면 온통 백발인 한물간 액션 배우도,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전성기 때와 완전히 얼굴이 달라진 여배우도,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와 유명세를 치르며 겪었던 고통을 얘기했다. 눈물로 가득한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볼 때마다 그 한결같은 메시지가 주는 압박감에 사강은 피로감을 느꼈다. 저렇게 눈시울을 붉히는 대가로 얼마를 받고 있을까. 우는 사람보다 그것을 보는 사람 쪽이 훨씬 더 힘들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실연 이후, 그녀는 자신이 필요 이상 시니컬해진다는 것도 잘 알았다.  
사강은 자신의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만졌다.
사강은 자신이 왜 이곳에 나와 있는지를 상기하려고 애썼다. 혼자 맞는 아침이 두려워서도, 영화를 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더구나 사람들이 말하는 위로나 치유의 문제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치유받는다는 게 대체 가능한 일일까. 치유도, 용서도, 결국 자신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강은 제일 먼저 가방 속의 이 물건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가방 속에 든 이 지긋지긋한 물건과 헤어지는 행위만이 그녀에게 중요했다.

                                         

                                                                    *

 

레스토랑의 좌석 배치가 이루어졌다.
영화제 주최 측에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앉아야 할 자리를 배정해주었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배정된 자리로 이동했다. 평온하던 공기가 일순간 변하며 어수선해졌다. 레스토랑 안에는 이제 비발디의 <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봄에 봄의 음악을 틀어놓는 것만큼 따분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선 어쩐지 따뜻한 환대의 음악처럼 느껴졌다. 사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수록 그녀는 점점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녀는 우두커니 서서 사람들 쪽을 바라보았다. 사강은 곧 다른 곳에선 결코 볼 수 없었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사강이 앉은 자리 맞은편에는 빈 의자가 놓여 있었다.
모두 스물한 개의 의자가 그녀의 맞은편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사강과 사람들이 일렬로 나란히 앉았다.
누군가와 마주보고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놓았는지 사강의 목덜미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맞은편에 놓인 스물한 개의 빈 의자가 의미하는 건 너무 자명해서, 이곳에 있는 누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커플이 아니었으므로 사람이 앉아 있지 않은 의자는 실연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때때로 차가운 손을 잡아주고 웃으며 함께 밥을 먹던 애인은 사라졌다. 맞은편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빈 의자는 “이제부터 넌 혼자 밥 먹는 연습을 해야만 해!”라고 열창하는 중이었다. “혼자 먹는 밥도 괜찮아! 맛있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검정색 스웨터를 입은 안내자들은 만찬이 시작될 좌석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의자에 이름표가 붙어 있진 않았지만 그들은 의자에 누가 앉아야 할지 잘 아는 사람들 같았다. 안내자들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규정을 지키듯 약속된 동선 위를 조용히 움직였다. 대신 미소 지은 얼굴들은 이곳에 온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듯 온화했다. 그러나 그런 상냥함 때문에 방석이 놓인 폭신하고 따뜻한 의자에 앉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더 절실하게 인식했다.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몇 달 동안 소화 장애에 시달렸고, 수면제로는 해결되지 않는 불면증 때문에 심한 수면 부족 상태였다. 눈동자가 충혈되더니 귓불과 목덜미까지 붉게 상기되는 사람도 있었다. 맞은편의 텅 빈 의자를 바라보다가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훌쩍거리는 여자도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긴 나무 테이블 위에는 진열장에서 막 꺼낸 듯 보이는 흰 도자기 그릇과 손수건 스물한 개가 놓여 있었다. 그것이 아침 식사를 위한 것인지,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손수건 위에 행운을 의미하는 네잎클로버가 수놓아져 있다는 것으로 의미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9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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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의 이별은 거의 일 년 가까이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자주 충혈됐다. 그녀는 밭은 재채기를 종종 내뱉었다. 가혹한 봄날이었다. 손수건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때였다. 그러나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손수건마저 정수가 사강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와 연결되지 않은 물건을 찾는 게 불가능해질 즈음, 사강은 실연이 어긋난 뼈를 다시 맞추듯 죽을힘을 다해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사물을 그와의 기억 쪽으로 되돌리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이제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녀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걷던 길에 이런 나무가 서 있었어.
그와 함께 먹던 음식에 이런 토끼 귀 모양의 은빛 스푼이 놓여 있었지.
그는 김광석의 노래를 참 좋아했었지.
그와 함께 보던 영화에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가 흘러나왔어,
난 후회하지 않아, 난 후회하지 않아, 난 후회하지……

 

헤어지길 잘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이별이 진짜 이별일 수는 없다. 아흔아홉 살에 죽음에 이른 노인의 자연사를 절규하며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강에게 실연은 자신을 향해 스스로 칼날을 겨눈 자살에 가까운 것이었으므로, 그녀는 스스로를 죽이기 위해 칼날을 목 위에 대기 전 자신의 사랑이 죽어가는 과정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던 날 밤, 사강은 어둠 속에서 자신의 트위터에 뜬 문장을 읽고 있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제를 주최합니다.
실연 때문에 혼자 있기 싫은 분들은 저랑 아침 먹어주실래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으로 바로가기.

 

그녀는 잠들지 못한 채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으로 바로가기’를 클릭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영화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기념품 가게

 

사강은 손가락으로 실연이나 치유 같은 단어들을 쓸어내렸다. 각각의 제목을 손가락으로 클릭하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설명되어 있는 몇 개의 카테고리가 나왔다. 그녀는 충동적으로 ‘치유’라는 단어를 클릭했다. 영화제라는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500일의 썸머>
<러브레터>
<화양연화>
<봄날은 간다>

 

사강은 세로로 정렬된 영화 제목을 하나씩 클릭했다.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와 촬영 스텝에 관한 정보들이 떴다. 모두 실연당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였다. 사강은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며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에서 ‘실연’이란 단어를 클릭했다. 그리고 탈칵, 소리와 함께 새롭게 넘어가는 화면을 지켜보았다. 

 

       실연은 오래  

 

화면이 부유하며 천천히 오른쪽으로 문장을 밀어내고 있었다.
 
       실연은 오래된 미래다.

 

실연은 오래된 미래다.
사강은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되뇌다가 눈을 감았다.

 

실연은.
오래된.
미래다.

 

눈물이 동공 위로 서서히 차올랐다. 눈을 뜨면 곧 낙하할 뜨거운 웅덩이를 사강은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별은 앞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실연은 언제나 뒤로 온다.
이별은 ‘하는’ 것이지만 실연은 ‘당하는’ 것이다. 누구도 ‘이별 당하다’라고 말하거나, ‘실연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실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을 일시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고,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뜨거운 모래를 끌어들여 폐허로 만드는 사막의 사구다.  
실연 후, 사강의 현재는 끊임없이 과거 쪽으로만 회귀했다. 과거가 그 모든 시간과 가능성을 빨아들였다. 실연은 기쁨과 슬픔, 회한과 쓸쓸함, 분노 같은 모든 감각들을 거대한 분화구의 화산재처럼 덮어버렸다. 미래 역시 과거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치도 나아가지 않은 너무나 익숙한 미래. 실연은 그렇게 사강에게 오래된 미래가 되었다. 
사강은 트위터를 보며 ‘미래’라는 단어를 클릭했다. 곧이어 ‘저랑 함께 아침 드실래요?’라는 문장이 나타났다. 실연이 미래를 낳고, 미래가 아침 식사를 낳고, 아침 식사가 치유를, 치유란 단어가 다시 기념품이란 단어를 밀어 올리며 상처란 명사로까지 옮아가고 있었다. 
실연을 어루만지는 단어들이 겨우 아가미를 내밀고 흘러와 ‘외로움’이란 이름의 호수에 도달해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그것을 간증했다. 자신의 실연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무리 짓지 못한 회한이 이 조찬 모임에 처연한 색채를 덧씌웠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새벽기도회를 연상시켰다. 사강은 가방 속의 물건들 역시 성경책만큼 무겁다는 걸 깨달았다. 
“다들 너무 무거운 얼굴들이에요.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애도하는 기분이 들구요.”
미도가 말했다.
“헤어진 애인의 상징적인 죽음을 애도하는 거겠죠.”
“이런 분위기면 전 밥 먹다 체할 것 같아요. 소화제 가져올 걸 그랬어요. 꼭 <최후의 만찬> 같지 않아요?”
“예수님 제자는 열 두 명뿐이에요.”
“그런가? 제가 한번 몇 명인가 세어볼까요? 눈치 못 채게 셀 수 있어요.”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기도 전에 미도는 사람들을 나지막이 세어보며 손가락을 꼽고 있었다. 몇몇이 사강과 미도를 바라봤다. 미도는 마침내 비밀을 알아냈다는 듯 만족스런 얼굴로 사강에게 “스무 명이네요”라고 속삭였다.
사강은 미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미도를 포함해 모두 스물한 명이었지만 사강은 고쳐 말하지 않았다.

 

 

(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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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건 사강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건 정수였다.

 바로 그 점이 사강을 지옥 같은 혼란스러움에 빠트렸다.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린 것도, 밥을 먹지 못하는 것도, 잠을 자지 못하는 것도 이별을 선언한 사강 쪽이었다. 정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일관된 표정으로 공항과 활주로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관제탑에서 군대 행진곡이라도 틀어주면 그가 한때 전투기를 몰던 공군 조종사였다는 걸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절도 있는 걸음걸이였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던 걸까.
 그럴 리 없었다. 하지만 사강의 주위엔 아무렇지도 않은 것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줄 사람이 없었다. 심장의 정중앙에 구멍이 뻥 뚫려버리는 기분이었다. 몸 전체가 거대한 링 도넛처럼 느껴졌고, 누군가 부주의하게 눈물 한 방울만 튀어도 잔뜩 설탕을 바른 도넛처럼 온몸이 차례로 녹아버릴 것 같았다. 
 “있잖아요, 전 밤에 바퀴벌레가 나타났는데, 아무도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걸 느낄 때 정말 외로워져요. 휴지도 다 떨어져서 며칠 전 신문지로 그걸 딱 때려잡았을 때. 등껍질이 탁 터지면서 왜 노란 진물 같은 게 막 흘러나올 때.”
 미도는 사강의 얘기를 오해한 게 분명했다. ‘찼다’를 ‘차였다’로 말이다. 얼핏 들으면 비슷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사강은 미도의 오해를 수정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도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이제야 찾아냈다는 듯 끊임없이 말했다.
 “바퀴벌레 지능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요?”
 “바퀴벌레한테 지능이랄 게 있나요?”
 “어머! 무슨 소릴! 바퀴벌레는 자기 동료나 가족을 죽인 인간의 얼굴을 분명히 기억한대요. 그래서 그 인간한테 반드시 복수한다는 거예요. 밤에 자다가 마셨던 물컵 안에 바퀴벌레가 들어 있었다고 생각해봐요. 복수할거야, 라는 얼굴로 물컵 안을 수영하면서 온갖 바이러스를 왕창 퍼뜨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
 “그쪽, 안 믿는 눈치지만 저도 첨엔 정말로 안 믿었어요. 근데 맹세코 정말이래요. 내참,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그 얘기 해준 것도 남자친군데. 사실 바퀴벌레 보다가 헤어진 남자친구 생각하는 거, 정말 짜증나고 화나요.” 
 갑자기 나타난 바퀴벌레나 지네, 거미를 보고 불현듯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다는 건, 그 사람이 대책 없는 사랑에 빠졌단 증거다. 징그러운 벌레를 본 여자는 여지없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그런 것은 당연히 남자가 나서서 잡아줘야 하는 호들갑스럽고 의존적인 세계에 즉각 편입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벌레든 뭐든 혼자서 때려잡을 독립심과 용기를 말하는 건 사강이 아는 연애가 아니었다.
 “부산영화제나 전주영화제 같은 곳에 늘 가고 싶었지만, 도무지 멀어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트위터 안 했으면 여기 절대 오지 않았겠죠? 누가 이런 걸 만들었을까, 전 그게 제일 궁금해요.”
 미도가 반복해서 말한 영화제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영화제’를 두고 한 말이었다.
 “역시 본인도 실연당한 사람이겠죠?”
 사강은 자신이 처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을 클릭했던 일주일 전을 떠올렸다. 트위터에 영화제의 공고가 난 건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

 

실연당했습니다.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해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제를 주최합니다.
실연 때문에 혼자 있기 싫은 분들은 저랑 아침 먹어주실래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으로 바로가기.


 글이 뜬 건, 새벽 세 시 사십삼 분이었다. 
 트위터에 접속하는 순간, 사강은 국제공항의 커다란 전광판 앞에 서서 눈을 감고 세계를 날아다니는 수많은 비행기들을 떠올렸다. 비행기가 내는 엔진 소음이 밝은 빛을 내는 혜성처럼 긴 꼬리를 흔들며 지구의 밤하늘로 서서히 사라져 끝내 소멸하는 아득한 풍경을.
 실시간으로 수천, 수만 개의 글이 올라가는 트위터는 인천공항터미널 3층에 서 있는 전광판 같았다. 난수표처럼 복잡한 문자의 행렬들, KE925, AA290, OZ579, NH6954, TK8092, CO4414, AE630, UA737…… 언뜻 의미를 알 수 없는 약호들은 마드리드와 헬싱키, 방콕과 울란바토르, 도쿄의 이륙과 착륙을 알리는 비행기들의 집합으로 고속도로를 맹렬히 달리는 심야고속버스의 고장 난 점멸등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전광판에 그려지는 비행기의 도착과 출발과 출발의 지연을 알리는 기표들…… 국제공항의 전광판은 실시간으로 140자의 글자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트위터와 비슷해 보였다.  

 아침 일곱 시부터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자는 건 이상한 제안이었다.  
 아침을 먹고 연달아 영화 네 편을 함께 보자는 아이디어는 조금 더 이상했다.
 가장 이상한 건 마지막 제안이었다.
 그러나 의미 없이 밀려오는 수백 개의 맨션 중, 이 문장만은 유독 사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해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

 

 정수와 헤어진 후, 그녀의 주변은 정말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조용했다.
 너무나.

 

 그런데 그런 일을 체험하고 있는 복수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사강은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이란 말에 조용히 밑줄을 그었다. 그것이, 더구나, 농담일리 없었다.
 그런 햇빛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강은 트위터의 프로필을 살펴봤다.
 트위터의 본인 성명 란의 이름 역시 트위터였다. 트위터의 이력 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버려진 매몰지처럼 보이는 이곳도 한때 빛나는 사건과 순간 들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
 그가 누구든, 그녀가 누구이든 이 문장의 화자는 실연의 기억을 잊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극복되지 못한 실연에 낮과 밤이 뒤바뀌고, 오전과 오후가 뒤섞이고, 폭식과 절식 사이를 헤매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달력의 한 계절이 통째로 찢어져 사라진 후의 일임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봄인 줄 알았는데 가을이라는 걸 알아챘을 때, 이제 막 개나리가 진 줄 알았는데 물에 젖은 낙엽이 신발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걸 목격했을 때, 그때의 마음을, 머리와 빗장뼈가 동시에 울릴 때 나는 그 진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를 원망하다 진동으로, 무음으로, 다시 벨 소리를 끝까지 올리던 반복의 반복들. 불현듯 잘못 누른 버튼 때문에 신호음이 울릴 때, 복음 같은 그 소리에 주저앉아 수화기 버튼을 누르고 독백하던 날들, 사강은 그런 아침을 자신이 어떻게 견뎠는지 어렵지 않게 기억했다.
 사강은 타인에게 이해받기 힘든 이별을 겪었다.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녀 스스로 정수에게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윤사강에겐 한동안 소년도 남자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은 남성 혐오와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정수가 나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세계에 남자라는 신인류가 새롭게 편입됐다. 그녀에게 그것은 봄의 폭설과 늦가을의 더위 같은 이상기후를 용케 피한 다행스런 연애였다.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인 아이가 기적처럼 자라났고, 그 행운의 주인공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었다. 그러나 깊은 안도감 뒤에는 훨씬 더 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같은, 무엇보다 개인적이어야 할 연애가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강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받지도 못했다.

 

 

(7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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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게 되리라곤 전 생각지도 못했어요. 창피했거든요. 하지만 역시 여기 온 건 잘한 것 같아요. 다시 시작할 수 있겠죠? 전 그렇게 믿고 싶어요.”
 사강은 미도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과거와 작별하고 커플이 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한 번의 사랑만으로 모든 사랑의 가능성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사랑 때문에 새벽녘 손목을 긋거나, 선물 받은 넥타이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미도 씨 말처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왜요?”
 미도가 사강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부정적인 게 좋은 건 아니잖아요?”
 미도는 동의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실패하고 그런 거 아닌가? 긴 전쟁 중에도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아이가 태어나고 그렇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들은 헤어질 걸 알면서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러니까.”
 “헤어질 걸 알고도 사랑한다?”
 사강이 미도를 바라봤다.
 “그럼요. 우린 죽을 걸 알고도 살아가잖아요.”
 “사람들이 정말 그런 걸 알고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요. 저도 죽을 거고, 사강 씨도 죽을 거고. 누구나 다 죽잖아요?”
 사강은 미도를 바라봤다. 사강은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 있는 듯한 악몽을 자주 꾸었다. 입구의 문은 열려 있지만 처음부터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 터널이었다. 환한 빛 속에 있다가 빨려들어가듯 짙은 어둠 속으로 따라 걸어가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이상한 터널. 사강은 그 터널을 떠올리며 그 속을 걷듯 느릿느릿 말했다.
 “미도 씨 말이 사실이라면 누구도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말은 쓰지 않을 거예요. 차라리 ‘하루하루 죽어간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루치의 삶을 덜어내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실패한 친구에게 노력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 전 믿지 않아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같은 말이 대체 그 사람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어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별것 아니었다고 털고 일어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장 넘어져 무릎이 깨진 사람 앞에서 ‘힘내라. 당신의 잠재력을 믿어라. 앞으로 좋은 일만 일어날 거다’라고 말하는 건 온당치 못해요.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를 얘기하면서 위로하는 게 무슨 소용이죠? 그럴 땐 그저 손을 내밀어주고 어깨를 안아주는 편이 훨씬 인간적이죠.”
 사강의 목소리는 어조 없이 담담했다. 
 “차라리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맛있는 커피를 권해주거나, 따뜻한 국을 끓여주는 쪽이 전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럼 따뜻한 음식을 권유하는 이런 영화제가 나쁘진 않은 거네요. 그렇죠?”
 “제 생각에는요.”
 “재밌는 영화제에요. 누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 걸까요?”
 “그쪽, 실연당한 건가요?”
 사강이 미도를 바라봤다.
 “제가 실연당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 봐요? 그런 거죠?”
 미도는 굳이 자신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사강은 고개를 저었다.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람을 상대로 뭔가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은 곧 사라져버렸다.
 “남자친구랑 헤어진 지 팔십칠 일째예요. 팔십칠 일하고 열세 시간 지났네요.”
 손목에 찬 커다란 전자시계를 바라보던 미도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강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급격히 내려가는 그녀의 입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작은 덧니가 그녀의 입안을 촘촘히 메우고 있었다.
 “미안해요. 힘들겠군요.”
 “아뇨. 안 힘들어요. 저 말짱해요. 헤어지고도 잊지 못하는 사랑, 전 그런 거 수지타산 안 맞아서 못 해요. 그 사람이 날 사랑하는 만큼만 사랑하자, 이게 제 신조예요. 받은 만큼 주고 준 만큼 받자. 물론 잘되는 것 같진 않지만.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거지, 복잡하게 이런저런 이유 대면서 헤어지자고 하는 사람 정말 질색이거든요. 죽어도 나쁜 역할은 맡지 않겠다는 못된 심보잖아요? 연애에서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사람마다 힘든 걸 극복하는 방법은 다르니까, 곧 괜찮아지겠죠. 사실 홧김에 사표 낸 지는 일주일 됐어요.”
 사강은 미도를 바라봤다. 그녀의 목덜미가 조금 발개져 있었다.
 사강은 한 번도 이직하지 않고 육 년 동안 같은 직장을 다녔다. 매달 25일이면 월급을 받고, 그 돈을 한 푼도 저축하지 않고 대부분 써버린 것 역시 육 년째였다. 이 사람들은 어떨까. 사강은 아침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며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외롭다’와 ‘괴롭다’ 사이를 형상화한 조각품들 같았다. 그 조각품에 이름을 붙이면 아마도 ‘외로워서 괴롭고 괴로워서 외롭다’가 되지 않을까. 
 “세상에 얼마나 나쁜 자식들이 많은지 알고 나면 정말 연애라는 게 불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어른들이 왜 연애보다 중매를 좋아하는지도 알겠고.”
 이상할 만큼 친화력이 있는 여자였다. 사강은 어느새 이 낯선 여자와 의미 없는 숫자들, 가령 기르다가 부러뜨린 손톱, 택시에서 분실한 휴대전화와 딱 한쪽만 잃어버려 착용 불가능한 귀걸이의 숫자 같은 것들을 얘기하고 있었다.  
 “영화제 프로그램 봤어요? 영화가 네 편이던데. 전부 다 볼 거예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전 네 개 전부 다 볼 거예요. 프로그램이 정말 맘에 들어요. <화양연화>랑 <봄날은 간다>, <러브레터>하고…… 나머진 뭐였죠?”
 “<500일의 썸머>.”
 “전 그 영화는 못 봤는데. 실연당한 사람들 얘기인가 보죠?”
 “500일 동안 한 여자에 빠져 있던 남자가 옛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졸업>을 본 후, 좋아하는 팬케이크 가게에서 애인에게 일방적으로 차인 얘기예요. 저도 줄거리만 읽었어요.”
 “여기 온 사람들, 전부 애인한테 차인 사람들 아닐까요? 설마, 양심이 있다면 애인을 찬 인간이 여기까지 기어오진 않았겠죠? 재수 없는 인간들!”
 미도는 잠시 분노한 표정을 짓더니 한풀 꺾인 목소리로 사강을 향해 말했다.
 “전 일 년 정도 사귀다 차였어요.”
 미도가 “그쪽은 얼마나 사귀었어요?”라고 묻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미도는 곧장 사강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 
 “그쪽도 차인 거죠?”
 미도가 확신에 차 사강을 바라봤다.
 “아뇨.”
 사강이 고개를 들고 미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비발디의 <겨울>이 흘러 나왔다.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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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던 레스토랑 건너편에서 한 여자가 사강 쪽으로 걸어왔다. 
 “반가워요. 전 정미도예요.”
 여자가 활짝 웃자 작은 덧니가 드러났다.
 스무 살은 넘었을까. 어쩌면 어깨에 멘 저 배낭 속에 수학이나 영어 교과서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강은 미도를 바라봤다. 전체적으로 어려 보이는 얼굴과 달리 어깨가 강조된 검정색 파워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구겨지기 쉬운 얇은 린넨 소재의 블라우스는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런 초봄엔 어울리지 않았다. 발목과 복사뼈가 전부 드러난 밑단이 짧은 팬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윤사강입니다.”
 사강의 경우, 자신의 이름은 대부분 제복의 왼쪽 가슴에 매달린 명찰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스스로 이름을 얘기하며 밝게 인사하는 사람에게 “네”라고 짧게 대답할 순 없었다.
 “그쪽은 무슨 일 하세요? 우리 직업 맞추기 할래요?”
 사강은 당황스런 얼굴로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도는 모두가 우울한 ‘오전 일곱 시의 유령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눈에 띄었다. 그녀는 유일하게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고, 어디에서나 들릴 법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말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그녀만이 무표정이나 절망 이외의 표정이 엿보였다. 그녀의 상기된 얼굴과 왼쪽 뺨에 팬 보조개는 가벼운 흥분 때문인지 더 빛나 보였다. 그러나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그들과 무엇이든 얘기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선 실연 후 생길 수 있는 조울증의 기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는 지금 조증 상태인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억지로라도 미소와 활기를 무장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가.
 “백화점에서 일하지 않으세요? 자동차 판매 영업을 한다거나. 제약회사 영업 직원이거나 보험일 수도 있겠구요.”
 사강이 미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 저 학교 다닐 때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알바 한 적 있어요. 취직하려고 속성 메이크업도 배우고 그랬었는데. 그쪽은…… 비서 아니세요? 회장님 비서.”
 “제가 비서처럼 보여요?”
 “네. 적어도 저랑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진 않아요.”
 미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강은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같이 짧게 자른 미도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저런 스타일의 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나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귀 전체가 드러나는 짧은 머리 덕분에 그녀의 귀에 달린 여러 개의 피어싱과 별 모양의 금속 귀걸이가 더 크고 화려해 보였다. 그러나 사강의 눈에 들어온 건 너무 말라서 얇은 빗자루만 한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몸이었다.
 “추우세요?”
 사강이 미도에게 물었다.
 “원하면 제 재킷을 벗어드릴 수도 있어요. 전 좀 덥거든요.” 
 “안 추워요. 괜찮아요.”
 미도가 웃었다.
 “이 재킷, 안감이 두툼해서 꽤 따뜻해요. 사양하지 마세요.”
 “저, 정말 안 추워요!”
 미도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미도는 틀림없이 추워 보였다. 떨고 있진 않았지만 입술이 파랗게 질린 걸 보면 곧 추위를 느낄 것이다. 특히 맨다리에 얇은 바지를 입었으니 그 속으로 3월 아침의 찬 공기가 잔뜩 들어와 앉았을 것이다.
 사강은 오 분이나 십 분 후, ‘춥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신체적 징후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상황을 예견하고 미리 질문을 던진 건 타고난 예민함 때문이라기보단 반복된 훈련의 결과였다. 사강은 기내에서 일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에 마른기침을 하고, 오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자주 봐왔다. 사강이 미도에게 질문을 던진 건 천성적인 마음씀씀이 때문이 아니었다. 질문은 그녀의 직업병이었다.
 “아…… 이제야 알겠어요. 제 옷 때문에 그러는 거죠?”
 미도가 그제야 이해한단 얼굴로 사강을 바라보았다.
 “이 옷, 하나도 춥지 않아요. 걱정 마세요. 전혀 춥지 않으니까. 말짱해요. 보기보단 통뼈에요, 저! 그나저나 참 특이한 모임이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다는 게 놀랍지 않아요? 전 저만 나오면 어쩌나 되게 걱정했었거든요. 혼자서 밥 먹는 거, 처량 맞잖아요. 근데 여기 와보니 너무 안심이 돼요. 대성황이잖아요.”
 사람들이 많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곳은 대체로 조용했다. 게다가 빈 의자를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이는 상황에서 대성황이란 단어를 떠올린다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미도는 이곳의 분위기를 꽤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하이 톤의 목소리가 이곳과 엇박자로 계속 어긋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사실 실연당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생각하면 전 엄청 위로가 돼요. 적어도 나만 슬퍼할 일은 아닌 거잖아요? 왜 아픈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위로받고,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안심이 되잖아요? 안 그런가? 끼리끼리 동병상련이란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뭐, 여기 있는 사람들이야 나중에 다시 모두  커플이 되겠지만요. 이곳에 모인 사람들, 뜻밖에 잘생기고 예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아요?”
 미도는 잠시도 쉬지 않고 말했다.
 “저 남자, 어떤 것 같아요? 아까부터 눈에 띄던데. 여자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아요?”
 미도가 남자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는 레스토랑에 있던 신문을 들고 있었다. 사강 역시 남자를 의식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김없이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단지 우연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사강은 남자들의 그런 노골적인 시선에 꽤나 단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명찰도 제복도 없는 사적인 공간이었고,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예민해져 있었다.
 쌍꺼풀 없는 남자의 눈매는 차갑지만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 다행히 테 없는 동그란 안경은 남자의 차가운 느낌을 적절히 교정해주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성격을 유추해볼 수 있는 옅은 주름들이 보였다. 자주 웃었던 흔적으로 보이는 양쪽 입가의 옅은 세로 주름과 눈 옆에 자연스레 생긴 가로 주름들. 그러나 세 번째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사강은 고개를 단호히 돌렸다. 
 하얀색 치노 팬츠와 검정색 캐시미어 터틀넥은 그와 꽤 잘 어울렸다.
 여간해서 흰색 바지를 입지 않는 보수적인 한국 남자들에게선 쉽게 볼 수 없는 패턴이었다. 디자이너일까? 패션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옷을 좋아하고, 차려입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을 줄 아는 능력은 의외로 희귀하다.
 하지만 사강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애써 무시했다.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정확히 말해,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이곳에 온 이유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강은 가방에 든 물건을 생각했다. 처리하기 힘든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을 처리해줄 전문가를 찾아오는 건 당연했다. 그런 사람을 전문 용어로 ‘킬러’라 부른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선 사람을 죽이는 전문가만 존재하지 않는다. 물건, 추억, 시간을 죽이는 전문가도 필요해지는 법이다. 사강은 그것이 결국 상상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모임이 결성된 것도 누군가의 상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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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의 사람들에게 오전 일곱 시는 어떤 시간일까. 
알람 소리에 깨어 비몽사몽인 시간, 아침을 먹을지, 조금 더 잔 후에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간, 흐트러진 이불과 베개 사이에 기대 첫 담배의 니코틴을 잠들어 있던 폐 속 깊숙이 삽입하는 시간, 출근 전 밤사이 흘려놓은 사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분주해지는 시간들…… 며칠 동안 사강은 ‘오전 일곱 시’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처럼 계속 오전 일곱 시에 대해 생각했다.
일곱 시 칠 분.
사강은 시계를 보았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에 모인 사람들 중 눈을 맞추거나 악수를 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아는 얼굴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생기는 안도감이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옆자리에 앉은 창백한 얼굴을 향해 어색하게 웃기도 했다.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대담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을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레스토랑 안에는 미역국을 끓이는 냄새와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달걀찜 냄새가 흥건했다. 모두 불 위에서 온기를 내뿜는 가정식 음식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음식들은 부엌에 서서 쌀을 씻고, 익숙한 감자 칼을 든 채 커다란 감자를 깎는 엄마의 뒷모습을 연상시켰다. 유리벽으로 마감된 오픈키친 안에서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여자를 보다가 사강은 고개를 돌렸다. 결국 불륜이 성공적일 수 없는 이유는 함께 부엌을 공유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시간이 부족해서는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었던 기억이 없다면, 그것이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진 않을까. 그녀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레시피’라고 적힌 메뉴판의 메뉴를 공들여 읽었다.   

 

. 따뜻한 식전주
. 햇볕에 말린 홍합과 신선한 들기름에 볶은 한우를 넣어 끓인 미역국
. 내일의 달걀찜  
. 아침 허브와 레몬을 곁들인 연어구이
. 봄날의 더덕구이
. 미니 꽃밥
. 완두콩과 밤을 넣은 돌솥밥
. 달콤한 디저트

 

메뉴판은 오븐에서 막 구워져 나온 삼십 분짜리 구연동화 같았다. ‘꽃밥’은 꽃밭처럼 들리는 이름이었고, ‘봄날의 더덕구이’은 3월에 캐낸 더덕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를 연상시켰다. 사강은 무심히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정수가 말했었다.
계절 음식을 먹는 건 그 계절의 뼈를 통째로 씹어 먹는 거라고.
그러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음식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강은 실연이 폭식이 아닌 절식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의 퍼레이드를 목격하고 있었다. 절식 중인 수녀이거나 금식 기도 중인 신부이거나 교회가 부흥하길 바라는 개척 교회의 목사이거나 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예비 수도승들처럼.
이들은 금식 기도원의 식당에 앉아 있는 환자들 같았다. 낮에 자거나, 밤에 자거나, 못자거나, 너무 많이 자서 부은 얼굴들이 눈 밑에 깔린 다크서클과 입가에 팬 주름들과 함께 자신들의 슬픈 이야기를 찬송하고 있었다.
사강은 메뉴판의 음식들을 소리 내 읽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위안을 주는 노래처럼 들릴 것이다. 그것은 뜨거운 불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음식들이었고, 비행기 일등석을 타는 사람들도 기내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었다. 메뉴판에는 망가진 식욕을 한 올 한 올 기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성공할지 미지수였다.
사강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와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강의 눈에 가장 먼저 파란색 LA 다저스 야구 모자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쓴 채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망가진 심장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내내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강은 남자가 사람들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실내의 밝은 조명이 아니었다면 사강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남자는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동자를 숨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착용한 병약한 사람일 것이다.
건너편 여자의 충혈된 눈에는 피곤함이 눈곱처럼 말라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다크서클 때문에 난투극 끝에 탈출한 사람처럼 보이는 여자도 있었다. 간신히 샤워까진 했는데 머리카락을 말릴 기운은 없었다는 듯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유난히 곱슬곱슬한 건너편 여자의 라코스테 셔츠는 어깨 부분이 아직 젖어 있었다. 사강은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혀 손가락 몇 개를 눈 위에 올려놓았다. 빛이 눈 사이로 스며들지 않도록. 그녀는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슬로나 스톡홀름처럼 한여름 백야를 가진 도시에선 어둠이 급작스레 찾아들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밀려오고, 도심에 세워진 희붐한 가로등과 함께 서서히 빠져나간다. 이런 도시에 있으면 어둠과 빛에 대한 감각은 달라진다. 태양이 너무 오래 떠 있는 도시에선 어둠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태양을 밀어낸 사람이라면 어둠을 향해 날아가는 박쥐처럼 깊은 동굴 속을 배회한다.   
이들에게 사라진 건 태양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오전의 활기였다.
아침이 되었지만 이들의 눈은 밤처럼 닫혀 있었다. 묵직한 자물쇠로 채워진 눈동자는 생기를 잃었고, 공허한 눈빛 뒤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사강은 이들의 얼굴에서 보통 사람들 같으면 충분한 수면만으로 지워졌을 악몽의 그림자를 보았다.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었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어느 날, 사강의 무릎 위에 이렇듯 뜨거운 물이 가득 든 주전자가 엎어졌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 이곳저곳이 장마 끝에 습기를 잔뜩 머금은 벽지같이 여기저기 벗겨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생각 없이 손톱을 뜯거나, 이유 없이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거나, 참가비를 5만 원이나 내고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강은 이 얼굴들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흩어져 앉아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사강은 이들을 ‘오전 일곱 시의 유령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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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여섯 시.
 사강은 독립단편영화제의 수상작들을 상영하는 시내의 작은 시네마테크 앞에 서 있었다. 같은 건물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전, 그녀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작은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세로가 가로
보다 훨씬 긴 간판이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

 

 사강은 간판의 작은 글씨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밤에는 백열등 밑에서 시를 쓰고 낮에는 형광등 아래에서 진료를 하는 의사가 운영하는 신경정신과 병원의 간판처럼 보였다. 누군가 무심히 이곳의 간판을 지나친다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아침병원’으로 오독할 만했다. 그녀에겐 이런 이름의 식당이 있다는 걸 상상하는 일조차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인도, 아부다비나 뮌스터의 좁고 어두운 골목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름의 식당이었다. 사강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휘황찬란하고 압도적인 도심의 간판들 사이에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라고 쓴 연두색 글자들은 너무 작아서 휘황찬란하고 거대한 글씨들에 압사당할 지경이었다.
 오전 여섯 시 십 분.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차가웠다.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테이크아웃 커피의 플라스틱 뚜껑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얼굴 위에 와 닿았다. 사강은 간판 앞에 서 있었다. 사강은 불룩해진 가방 속 물건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올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곳에 도착하게 될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러하리라.
  
                                                                    *

 

 오전 여섯 시 이십 분.
 이지훈은 결국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에 온 유일한 남자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황당한 장난일지 모른다는 생각 사이에서 그는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시내 쪽으로 운전을 하는 동안 그는 몇 번의 진입로에서 다시 한 번 유턴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망설였다. 그러나 정작 목적지에 도착하자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졌다. 그날따라 맑은 하늘과 유달리 화사했던 아침 햇살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차피’란 말은 그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이곳까지 온 것만은 분명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

 

 지훈은 자동차 안에서 간판을 바라보았다.
 인터넷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작고, 무심하고, 철저히 손님을 무시한 식당 간판이었다. 저런 간판을 달고 망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이 레스토랑이 서울에선 먹기 힘든 진주 ‘꽃밥’을 파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는 몇 번의 검색을 시도했다.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검색한 단어는 ‘꽃밥’이었는데, 꽃밥은 진주 사람들이 부르는 비빔밥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여러 빛깔의 다양한 계절 나물들과 달걀노른자를 올려놓아 밥이 아니라 꽃밭처럼 보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했다.
 봄날에 먹는 꽃밥은 어떤 맛일까.
 4월의 꽃밭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맛일까?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는 게 그로선 꽤나 유감스러웠다.  

 

 지훈이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는 아까부터 시네마테크 입구에 서 있던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시네마테크 옆에 조성된 작은 정원 앞에 서 있었다.
 어깨를 덮는 긴 생머리와 동그란 이마는 부드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으로 반쯤 가려져 있었다. 서 있는 것이 익숙한 사람처럼 곧은 어깨와 반듯한 허리가 어딘가 절도 있어 보였다. 부드러운 검정색 가죽 재킷을 입은 여자는 검정색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종아리에 꼭 맞는 검정색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는데, 주름 하나 없이 쭉 뻗은 가죽의 질감은 부츠 안의 종아리가 충분히 곧고 날씬하리란 상상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입은 옷은 누군가의 몇 달치 월급일 수도 있는 고급스러운 것들이었다. 그러나 강렬한 첫인상과 달리 여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사라질 것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존재가 희미해지는 건 실연당한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일까. 미술관의 명작 아래에 적혀 있는  ‘접근하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을 본 것처럼 지훈은 여자를 바라보기 위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가 한 손으로 긴 머리를 묶었다 풀기를 반복할 때마다 길고 아름다운 목선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남자라면 응당 이런 숙녀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낼 것이다. 기꺼이 도와주려고 달려들 것이다. 주말 명동 한복판에서 봤더라도 한 눈에 알아볼 법한 여자였고, 순식간에 다가서기 쉽지 않을 거라는 열패감을 안겨주는 기묘한 느낌까지 있었다. 여자가 매고 있는 검정색 가방은 오랫동안 사용한 것인지 가죽이 구겨지듯 주름져 늘어져 있었다.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가방이었다. 그녀는 가방을 한 손으로 움켜잡듯 쥐고 있었다.
 여자는 뭔가 결심한 사람처럼 레스토랑의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 쥐고 있던 테이크아웃 커피의 플라스틱 뚜껑을 다시 열더니 바닥에 쪼그려 앉았고, 시네마테크로 들어가는 입구에 만들어진 작은 정원을 바라봤다. 여자는 식어버린 커피를 밤새 얼어붙은 차가운 땅 위에 주의 깊게 붓고 있었다. 지훈은 무심한 얼굴로 흙 위에 커피를 붓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설마 커피나무라도 열리길 바라는 걸까.

 

 그에게도 딸기 우유를 부으면 딸기가, 오렌지 주스를 부으면 오렌지 나무가 주렁주렁 피어오를 것이라 믿었던 엉뚱하고 황당한 여섯 살 시절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외할머니에게 손바닥을 맞았다. 한 살 위인 형도 그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형은 그의 궁둥이에 물파스를 듬뿍 발라 안 그래도 부풀어 발개진 엉덩이를 불쏘시개처럼 만들어놓곤 했다. 형은 외할머니 몰래 외할아버지의 자동차 주유구에 500밀리리터짜리 우유를 퍼붓는 엽기적인 장난을 쳤다. 형이 더듬거리는 말투로 “자동차도 우유를 마셔야 키가 크고 예뻐져!”라고 소리 질렀을 때, 외할머니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이런 사건들은 훗날 예술가가 되는 사람들의 유별난 유년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화였다.
 형은 보통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상태였다. 지훈 역시 당시에는 형의 영향을 받아 거의 정상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산만했다. 형이 말 대신 소리를 지르거나 비명을 지를 때, 그 역시 고함을 치거나 손바닥이 발개질 정도로 박수를 쳤다. 그는 형이 아침마다 먹는 하얀색 알약을 같은 개수만큼 함께 먹고 싶어 했다. 두 명의 ‘덤 앤 더머’ 앞에서 육십이 훌쩍 넘은 백발의 노인이 할 수 있는 건, 엄혹한 얼굴로 매를 드는 것뿐이었다.
 애써 지우고 있었던 기억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유물이나 화석처럼 특정 장소에나 가야 열어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여자가 그의 유년기의 입구에 서서 무심한 얼굴로 재생 버튼을 누른 덕분에, 그는 열린 기억의 틈새로 불어오는 과거의 바람을 느꼈다.  
 여자가 빈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앞뒤로 흔들리는 쓰레기통을 배경으로 여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주의 깊게 관찰하던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애써 외면했던 불길함이 몰려왔다. 그는 차의 시동을 껐다. 이제야 그는 현실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훈 역시 저 이상한 이름의 레스토랑 안에 들어가야 할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지훈은 시계를 봤다.
 일곱 시 칠 분.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은 일곱 시였다. 
 그는 이곳에 오는 누구라도 잠시 머뭇대며 믿을 수 없이 작은 저 간판을 올려볼 것이란 걸 깨달았다. 누구나 가볍게 지나칠법한 저런 작은 글자를 좇아오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삶 역시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지훈은 운전대를 놓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지훈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건 망설임과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검정색 가죽부츠를 신은 저 여자는,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3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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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 2012.09.25 20:5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재밌게 잘 읽었어요~~빨리 읽히고 좋아요~~몰입도도 좋고요~~

                                                                                                                      아침이 밤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자정은 어떤 모습일까
                                                                                                                                          - 에밀리 디킨슨



1부.  오전 일곱 시의 유령들 

  

 
오전 일곱 시부터 주름 없이 다린 슈트에 넥타이를 매고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아침형 인간들일 것이고, 하루 네 시간의 수면만으로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침대에서 어렵지 않게 일어날 사람 말이다. 혈색 좋은 얼굴에는 자신감과 미소가 넘치고, 이른 아침부터 서로의 눈을 맞췄다는 동지애로 악수하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수성가한 CEO, 정치인, 엘리트 관료들의 은밀한 식사 시간. 호텔의 레스토랑이 새벽부터 이런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한 건, 이들의 조찬 모임에는 비공식적인 행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조 단위 세금이 투입되는 정책을 결정하거나, 어느 가장의 모가지를 대량으로 자르는 일을 하면서도 밥을 남기는 사람은 없다. 굳이 성공을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주는 여유가 아침의 밥맛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넘치는 식욕이 강렬한 성욕과 직결된다는 걸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장소는 별 다섯 개짜리 특급 호텔과 비행기 일등석이다.

 사강은 직업상 이들을 자주 봐왔었다.

 그들은 비행기 안에서도 절대 잠들지 않는 부류로 헤드폰을 끼고 영화를 보는 대신 반짝이는 손목시계를 팔목에 찬 채 서류를 보거나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 타임스』를 읽는다. 통화기금이나 개발협회, 금융공사 같은 이름을 단 국제기구의 고위급 간부, 미국계 거대투자회사에서 일하는 전무이사, ESPN 같은 채널에서 언제든 볼 수 있는 유명 운동선수들……. 명령하는 것에 익숙한 말투나, 커피나 물이라고 말하는 대신 ‘더블 에스프레소’, ‘에비앙’이라고 짧게 끊어 구체적으로 말하는 성향, 오랜 시간의 비행에도 지치지 않는 체력의 소유자라는 것 외에도 그들은 넘치는 에너지와 돈을 무기로 많은 자식과 애인들을 가지고 있다는 전 지구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강은 그런 사람들을 ‘기내에서 똑같은 면세품을 두 개씩 사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중요한 건 이들이 균형의 미덕을 숙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명정대함은 이들에게 아내와 애인 모두를 오랫동안 소유할 수 있는 권력 이상의 것을 줄 것이다. 사강은 신중하게 고른 값비싼 선물이 죽어가는 인간관계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공이 인증된 수컷들에게 발견되는 이런 균형의 DNA가 어떻게 체내에 이식되는지에 대한 이론은 아직 들은 바 없다. 하지만 만약 그런 보고서를 쓴다면 사강은 첫 서문을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샤넬로 하죠.”

 화장품이나 스카프, 가방 역시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건 샤넬이다.

 그러나 브랜드 ‘샤넬’이 아닌 인간 ‘가브리엘 샤넬’은 오랫동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숨겨진 정부로 살아야 했다. 아내를 둔 남자의 애인들이 닥치는 대로 샤넬의 물건들을 사들이는 것은 수면 위에 잘 드러나지 않는 가브리엘의 무의식과 고뇌를 닮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젊었을 땐 샤넬이 촌스럽게만 보였어. 샤넬의 두꺼운 트위드 재킷이나 진주 목걸이가 꼭 할머니 옷장에서 막 훔쳐낸 것처럼 보였거든. 근데 나이가 들면서 늘 똑같아 보이던 옷이나 핸드백이 예뻐 보이더구나. 별일이지. 그 여자 옷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내가 샤넬의 클래식 2.55 백을 들게 되면, 그땐 나 역시 중년이 됐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지.”

 샤넬이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법적인 아내가 아니었고, 권력 있는 남자들의 열정적인 정부였다는 사실을 처음 얘기해준 건 엄마였다. 엄마는 샤넬을 ‘스커트 길이 하나 줄인 것치곤 돈을 너무 많이 번 여자’였다고 말했다. 사강이 엄마에게 제일 먼저 배운 것도 턱을 살짝 치켜들고 상대방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샤넬처럼 냉정하고 단호히 말하는 법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왜 사랑하지 않아? 왜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는 거지?”

 그때 엄마의 상처 난 목에는 아빠가 선물한 샤넬의 실크 스카프가 단단히 묶여 있었다.


 

*

 

 

 빈 거리를 버스가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

 사강은 서늘한 새벽 공기가 가라앉은 창가에 기대어 대형 광고판이 서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표정이 바뀌는 지점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며 그녀는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카펜터스의 노래를 들었다. 버스는 이태원 해밀턴 호텔 정류장을 지나며 커다란 배낭을 멘 외국인을 태웠다.

 개암나무 빛깔의 선명한 눈동자에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스페인에서 산티아고 걷기 열풍이 불던 때, 사강은 가슴에 교회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부착한 채 성지순례를 떠나는 단체 관광객들과 함께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여러 차례 탔었다. 그녀는 지중해의 햇볕에 그을린 스페인 남자들의 혈색을, 뜨거운 태양광선 아래서 잘 익은 올리브를 먹고 FC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의 극성팬으로 자라난 ‘카를로, 라울, 호세’라 불리는 스페인 남자들의 생김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쉽게 사랑에 빠지지만 금세 식어버리는 악동 기질, 짙은 눈썹을 씰룩이며 자신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특유의 몸짓이나 깊게 쪼개진 턱 사이의 굴곡에 대해서라면 말이다. 남자는 버스에 앉자마자 승객이었던 사강과 눈을 맞추며 웃었다.

 사강은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커다란 배낭을 바라봤다. 남자는 창가를 통해 전달되는 낯선 풍경에 매료된 듯 한동안 서울의 아침을 관찰하더니, 눈물이 고일 정도로 하품을 하며 품 안의 배낭을 베개 삼아 졸기 시작했다. 버스가 좌회전하자 버스에 탄 사람들의 목과 어깨도 부드럽게 꺾였다. 낡은 양철 컵이 매달린 남자의 검정색 배낭이 오른쪽으로 기울며 흔들렸다.

 오전 다섯 시 이십 분.

 피곤에 겨운 졸음이 버스 기사가 틀어놓은 FM 라디오와 함께 사강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사강은 서리가 옅게 낀 버스의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목덜미 사이로 차갑게 불어왔다. 사강은 새벽녘 한적한 도로 위 상점을 바라보았다. 흰 앞치마를 두른 남자들이 빵집 안으로 쉴 새 없이 밀가루 포대를 나르고 있었다. 건너편 4차선 도로 24시간 편의점 트럭은 물건이 가득 담긴 초록색 플라스틱 박스를 토해내고 있었다. 교차로에 잠시 멈춰서 있던 버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사강은 24시간 편의점 옆 작은 카페 유리창에 적힌 짧은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갓 볶은 원두 커피가 단돈 900원


 

 0의 숫자를 가만히 세어보다가 사강은 문득 멍해졌다.

 그것은 서울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시였다.

 저혈압 환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혹독한 오슬로의 차고 무거운 공기 속을 막 뚫고 돌아온 그녀는 주머니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1유로짜리 동전들을 만지작거렸다. 원두커피의 가격을 알리는 문구 밑에는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추신처럼 다정한 말이 동봉되어 있었다.

 

 

 갓 구운 에그토스트 1,000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식빵이 그녀의 눈동자 아래에 잠시 정지해 있었다.

 

 

 갓 볶은

 갓 구운

 

 

 ‘갓’이란 부사 위로 아침에 만든 버터처럼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단지 1유로나 2유로짜리 동전 하나면 가능한 풍족한 식사였다. 오슬로에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문득 서울이 가진 아량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버스가 고가도로 위를 가뿐히 올라섰다.

 사강은 뻑뻑한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이른 봄의 냉기가 느껴지는 바람이 뺨 위로 불어왔다. 가방 속에서 어젯밤 잠들기 직전 맞추어놓았던 휴대전화의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사강은 가방 안에 깊숙이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이런 일이 마치 익숙한 일상이라도 되는 듯 눈으로 보지 않고 휴대전화 알람 기능을 간단히 껐다. 소리가 잠잠해지자 사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버스 문 앞에 서서 짧게 하차 버튼을 눌렀다. 버튼 음이 울렸다. 다시 버스의 손잡이가 좌우로 흔들렸다. FM 진행자의 목소리와 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듯 버스의 맥박이 라디오의 신나는 음악에 맞춰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카펜터스 특집의 마지막 곡입니다. 불멸의 히트곡. <TOP OF THE WORLD>입니다!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익숙한 전주와 함께 카렌 카펜터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하늘의 꼭짓점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아침을 여는 라디오의 주파수가 열린 창문 사이로 서울 곳곳을 넘쳐흘렀다. 사강의 눈에 하나둘, 문을 여는 카페와 상점들이 보였다. 딸깍, 자물쇠 열리는 묵직한 소리, 오랫동안 닫힌 가게 문을 열 때 나는 미어지는 쇳소리, 키를 꽂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때 나는 가벼운 진동음들처럼 서울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하철 입구에서 걸어 나왔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두근거렸다.

어떤 도시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서울의 심박 수였다.

 

(2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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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eap mlb jerseys 2012.06.07 16:2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신재민 실형 3년6월 선고 “청렴해야할 공무원이..” 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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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2.07.05 16:45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5. ans 2012.10.11 20:42 Address Modify/Delete Reply

    만화속세상만 있는 게 아니었네요! 감사히 볼게요^^

<스타일>, <보통의 연애> 백영옥 작가의 장편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 매주 월 - 금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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