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타인의 비밀을 듣는다는 건 큰 책임을 요구한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책임, 간직하는 동시에 떠나보내야 하는 책임, 묵언의 서약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비밀 역시 꺼내놓아야 하는 책임. 비밀은 공유하고 나눔으로 짓눌린 무게의 짐을 스스로 덜어놓는다.

‘간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나 기억 따위를 마음속 깊이 새겨두는 것’이다. 비밀은 누군가에 의해 간직된다. 우리가 ‘간직한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오래된 장롱 ‘속’이나, 복잡한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금고 ‘안’이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어렵게 끄집어내야 한다. ‘속’과 ‘안’ ‘곳’에 넣어두는 깊숙한 기억과 물건들. 마음의 가장 어두운 곳에 닿아야 비로소 꺼낼 수 있는 것. 그 밤, 지훈이 명훈에 대해 얘기한 건 그러므로 우연이 아니었다.

“형이 자폐아 판정을 받은 건 네 살 겨울이었어요. 치료가 시작된 건 여섯 살 봄이었고, 사고가 난 건 아홉 살 가을 무렵이었죠.”

창문에 반사된 지훈의 검은 실루엣이 촛불에 흔들렸다.

“처음 형의 이상을 발견한 건 외할머니였어요. 형은 집중력이 뛰어나서 비디오를 보거나 좋아하는 동화책을 읽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꼼짝없이 앉아 그것만 들여다봤죠. 형은 숫자도 놀랄 정도로 빨리 익혔어요. 기억력이 대단해서 한 번 본 건 절대로, 절대로 잊지 않았죠. 형은 4시라고 말하지 않았고, 늘 시계가 4시 11분 10초를 가리킨다고 말했어요.

어른들은 형이 큰 인물이 될 거라고 말했어요. 오로지 외할머니만 예외였죠. 외할머니는 형의 집중력을 의심했어요. 형의 청각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아무리 큰 목소리로 불러도 형은 절대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거든요. 정말 하나도 듣지 못하는 아이 같았어요. 하지만 형이 이비인후과에서 가서 들은 얘기는 빠른 시간 안에 소아정신과로 가야 한다는 얘기였어요. 그때 알게 된 거죠. 형의 증세를.

엄마는 그날로 직장을 그만뒀어요. 작가의 야망이 있는 분이셨어요. 하지만 오직 형에게만 매달리셨어요. 형에게 다양한 규칙을 정해준 것도 엄마였어요. 정해진 음식만 먹기, 정해진 길로만 다니기, 정해진 버스만 타기. 엄마는 형이 자신이 만든 규칙 안에서 생활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형이 아홉 살 되던 때에 아버지와 함께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였죠.

외할머니는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어요. 단호하게 ‘이제부터 이 아이들은 내가 맡겠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언하셨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어요. 외할머니의 검은색 벤츠와 밍크코트는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신뢰를 주었으니까. 자폐증은 유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외할머니는 평생 그것이 당신이 만든 유전자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외할머니는 천만 원이 넘는 모피코트를 입고서 무거운 십자가를 멘 예수처럼 사셨고, 딸과 사위의 죽음을 평생 애도하셨어요. 누군가 벌을 받아야 형의 미래가 열릴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야 인생이 공평해진다고 믿었어요. 형은 늘 빙글빙글 돌았어요. 세 번씩. 시계 방향으로. 홀수를 좋아했어요. 말도 세 번씩 외쳤어요. ‘나는’이라는 주어를 쓰면서 늘 문어체로 말했죠. 형은 숫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었어요. 그게 뭘 의미하는지, 나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실 이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어쨌든 형은 홀수 안에서, 숫자 3 안에 있어야 평화로운 사람이었어요. 강박증 형태로 나타나는 그런 부분은 차라리 이해할 수 있는 여지라도 있었죠…….”

지훈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사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걸까? 설령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할 권리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걸까? 형의 병이 빼앗아 간 건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따뜻한 공감 능력이었죠.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저 사람은 이렇게 반응하겠구나, 라는 자기 인식.

현정이에게 전 이런 얘길 할 수가 없었어요. 사랑하는 여자의 몸을 만지는 대신, 웅크린 몸을 조금씩 열리게 하는 따뜻한 포옹을 택하는 대신, 사람들이 보든 말든 꼿꼿하게 서 있는 자기 성기를 꺼내놓는 사람이 내 형이었어요. 팬티를 내리는 그 순간까지 어떤 망설임도 없이 말이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사정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괴물같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할 수 있는 건 대낮에 벌이는 자위라는 활극뿐이었죠. 형은 웃으면서 그런 짓들을 저질렀어요. 유쾌한 확신범이었어요. 몸은 자라지만 정신은 자라지 않는 남자가 저지르는 몰상식을 감당하기엔 우리 모두가 너무 지쳐버렸어요. 결국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고, 병의 증세를 교육 받고 능숙하게 협상하는 전문가들에게 맡겨졌죠.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킬 자신도 없었어요.

형의 세계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었어요. 자기 욕망, 자기 욕구, 자기 분노 같은 것들. 형은 타인을 향해 웃는 법을 몰랐어요. 물론 타인을 위해 우는 법도 몰랐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평생을 키워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죠. 그런 인간이니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요. 그래서 전 형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아예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건 자폐증의 가장 심한 패악이라고 생각했었죠. 이렇게 끔찍한 병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유년기는 진창이 돼버렸죠.

그런 형이 언젠가 냉장고 앞에 서서 멍하게 뭔가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형은 우유병을 바라보고 있었죠. 칼슘이 빠져나가는 병 때문에 할머니가 먹으라고 윽박지르며 소리치던 그 우유. 우유를 끔찍하게 싫어해서 그걸 자동차 주유구에 퍼붓던 인간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형이 우유병을 열더니 그걸 마시더군요. 처음엔 제가 본 장면이 환각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형은 유령처럼 보였고, 조부모 둘을 연달아 잃은 저 역시 유령 같은 존재였으니까.

형의 얼굴을 묘사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모르겠어요. 웃는 듯 우는 듯. 우는 듯 웃는 듯. 그건 인간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어요. 눈썹이 없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는 것처럼 형의 얼굴은 정말 기묘하고 괴상했죠. 우는 듯 웃고, 웃는 듯 우는 얼굴. 아마도 형은 자기 식대로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빙글빙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집 안을 돌고, 요양원 복도를 돌고, 돌고, 돌고, 역겨운 우유를 마시면서 다시 빙글빙글돌고 토하고…….

가장 큰 불안은 최악을 예상하는 일이 아니라, 최악도 차악도 뭣도 예상할 수 없을 때 생기게 마련이에요. 형을 이해하는 데 지금까지 제가 들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현정이도 무서웠겠죠. 점점 더 두려워졌겠죠.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걸 알아요. 외할머니는 형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게 소원이었지만, 전 외할머니보다 형이 먼저 죽길 매일 밤 기도했어요. 형이 싫어서 몇 번이고 가출했었으니까. 어디론가 닥치는 대로 차를 타고 계속해서 달아났어요. 그 어딘가가 늘 형이 있는 곳에서 제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였다는 걸 어느 날 깨달았어요. 그런 거죠. 그런 식이었어요. 아무리 달아나도 돌아오게 되는 멀지만 가까운.

현정이는 우리 사이에 우연과 낭만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했어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따분한 사랑이라고. 하지만 전 연애를 우연히 이루어진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애는 질문이고, 누군가의 일상을 탐정처럼 캐묻는 일이고, 취향과 가치관을 집요하게 나누고, 쟁취해내는 일이에요. 한순간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믿지 않아요. 대단한 영감으로 순식간에 걸작을 써내는 작가를 좋아하지도 않아요. 트루먼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데 6년이나 걸렸어요. 그런 거예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죽도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 우연히 벌어지는 환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철저히 노동 집약적인 일,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연애예요.”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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