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건 사강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건 정수였다.

 바로 그 점이 사강을 지옥 같은 혼란스러움에 빠트렸다.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린 것도, 밥을 먹지 못하는 것도, 잠을 자지 못하는 것도 이별을 선언한 사강 쪽이었다. 정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일관된 표정으로 공항과 활주로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관제탑에서 군대 행진곡이라도 틀어주면 그가 한때 전투기를 몰던 공군 조종사였다는 걸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절도 있는 걸음걸이였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던 걸까.
 그럴 리 없었다. 하지만 사강의 주위엔 아무렇지도 않은 것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줄 사람이 없었다. 심장의 정중앙에 구멍이 뻥 뚫려버리는 기분이었다. 몸 전체가 거대한 링 도넛처럼 느껴졌고, 누군가 부주의하게 눈물 한 방울만 튀어도 잔뜩 설탕을 바른 도넛처럼 온몸이 차례로 녹아버릴 것 같았다. 
 “있잖아요, 전 밤에 바퀴벌레가 나타났는데, 아무도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걸 느낄 때 정말 외로워져요. 휴지도 다 떨어져서 며칠 전 신문지로 그걸 딱 때려잡았을 때. 등껍질이 탁 터지면서 왜 노란 진물 같은 게 막 흘러나올 때.”
 미도는 사강의 얘기를 오해한 게 분명했다. ‘찼다’를 ‘차였다’로 말이다. 얼핏 들으면 비슷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사강은 미도의 오해를 수정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도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이제야 찾아냈다는 듯 끊임없이 말했다.
 “바퀴벌레 지능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요?”
 “바퀴벌레한테 지능이랄 게 있나요?”
 “어머! 무슨 소릴! 바퀴벌레는 자기 동료나 가족을 죽인 인간의 얼굴을 분명히 기억한대요. 그래서 그 인간한테 반드시 복수한다는 거예요. 밤에 자다가 마셨던 물컵 안에 바퀴벌레가 들어 있었다고 생각해봐요. 복수할거야, 라는 얼굴로 물컵 안을 수영하면서 온갖 바이러스를 왕창 퍼뜨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
 “그쪽, 안 믿는 눈치지만 저도 첨엔 정말로 안 믿었어요. 근데 맹세코 정말이래요. 내참,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그 얘기 해준 것도 남자친군데. 사실 바퀴벌레 보다가 헤어진 남자친구 생각하는 거, 정말 짜증나고 화나요.” 
 갑자기 나타난 바퀴벌레나 지네, 거미를 보고 불현듯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다는 건, 그 사람이 대책 없는 사랑에 빠졌단 증거다. 징그러운 벌레를 본 여자는 여지없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그런 것은 당연히 남자가 나서서 잡아줘야 하는 호들갑스럽고 의존적인 세계에 즉각 편입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벌레든 뭐든 혼자서 때려잡을 독립심과 용기를 말하는 건 사강이 아는 연애가 아니었다.
 “부산영화제나 전주영화제 같은 곳에 늘 가고 싶었지만, 도무지 멀어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트위터 안 했으면 여기 절대 오지 않았겠죠? 누가 이런 걸 만들었을까, 전 그게 제일 궁금해요.”
 미도가 반복해서 말한 영화제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영화제’를 두고 한 말이었다.
 “역시 본인도 실연당한 사람이겠죠?”
 사강은 자신이 처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을 클릭했던 일주일 전을 떠올렸다. 트위터에 영화제의 공고가 난 건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

 

실연당했습니다.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해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제를 주최합니다.
실연 때문에 혼자 있기 싫은 분들은 저랑 아침 먹어주실래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으로 바로가기.


 글이 뜬 건, 새벽 세 시 사십삼 분이었다. 
 트위터에 접속하는 순간, 사강은 국제공항의 커다란 전광판 앞에 서서 눈을 감고 세계를 날아다니는 수많은 비행기들을 떠올렸다. 비행기가 내는 엔진 소음이 밝은 빛을 내는 혜성처럼 긴 꼬리를 흔들며 지구의 밤하늘로 서서히 사라져 끝내 소멸하는 아득한 풍경을.
 실시간으로 수천, 수만 개의 글이 올라가는 트위터는 인천공항터미널 3층에 서 있는 전광판 같았다. 난수표처럼 복잡한 문자의 행렬들, KE925, AA290, OZ579, NH6954, TK8092, CO4414, AE630, UA737…… 언뜻 의미를 알 수 없는 약호들은 마드리드와 헬싱키, 방콕과 울란바토르, 도쿄의 이륙과 착륙을 알리는 비행기들의 집합으로 고속도로를 맹렬히 달리는 심야고속버스의 고장 난 점멸등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전광판에 그려지는 비행기의 도착과 출발과 출발의 지연을 알리는 기표들…… 국제공항의 전광판은 실시간으로 140자의 글자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트위터와 비슷해 보였다.  

 아침 일곱 시부터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자는 건 이상한 제안이었다.  
 아침을 먹고 연달아 영화 네 편을 함께 보자는 아이디어는 조금 더 이상했다.
 가장 이상한 건 마지막 제안이었다.
 그러나 의미 없이 밀려오는 수백 개의 맨션 중, 이 문장만은 유독 사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해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

 

 정수와 헤어진 후, 그녀의 주변은 정말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조용했다.
 너무나.

 

 그런데 그런 일을 체험하고 있는 복수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사강은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이란 말에 조용히 밑줄을 그었다. 그것이, 더구나, 농담일리 없었다.
 그런 햇빛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강은 트위터의 프로필을 살펴봤다.
 트위터의 본인 성명 란의 이름 역시 트위터였다. 트위터의 이력 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버려진 매몰지처럼 보이는 이곳도 한때 빛나는 사건과 순간 들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
 그가 누구든, 그녀가 누구이든 이 문장의 화자는 실연의 기억을 잊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극복되지 못한 실연에 낮과 밤이 뒤바뀌고, 오전과 오후가 뒤섞이고, 폭식과 절식 사이를 헤매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달력의 한 계절이 통째로 찢어져 사라진 후의 일임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봄인 줄 알았는데 가을이라는 걸 알아챘을 때, 이제 막 개나리가 진 줄 알았는데 물에 젖은 낙엽이 신발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걸 목격했을 때, 그때의 마음을, 머리와 빗장뼈가 동시에 울릴 때 나는 그 진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를 원망하다 진동으로, 무음으로, 다시 벨 소리를 끝까지 올리던 반복의 반복들. 불현듯 잘못 누른 버튼 때문에 신호음이 울릴 때, 복음 같은 그 소리에 주저앉아 수화기 버튼을 누르고 독백하던 날들, 사강은 그런 아침을 자신이 어떻게 견뎠는지 어렵지 않게 기억했다.
 사강은 타인에게 이해받기 힘든 이별을 겪었다.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녀 스스로 정수에게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윤사강에겐 한동안 소년도 남자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은 남성 혐오와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정수가 나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세계에 남자라는 신인류가 새롭게 편입됐다. 그녀에게 그것은 봄의 폭설과 늦가을의 더위 같은 이상기후를 용케 피한 다행스런 연애였다.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인 아이가 기적처럼 자라났고, 그 행운의 주인공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었다. 그러나 깊은 안도감 뒤에는 훨씬 더 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같은, 무엇보다 개인적이어야 할 연애가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강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받지도 못했다.

 

 

(7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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