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7부 호텔 생활자

“꼭 옛날 사진 속을 걷는 것 같네요.”

지훈이 다나카 상과 함께 간 곳은 고층 빌딩과 거대한 광고판들이 위압적으로 들어차 있는 신주쿠가 아니었다. 그곳은 예전부터 지훈이 봐왔던 신주쿠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군데군데 벽돌이 깨져 성하지 않은 몸피의 건물들과 낡고 좁은 골목들이 다닥다닥 뒤엉켜 마치 1970년대나 1960년대 분위기로 돌연 시간이 멈춰 선 것처럼 생경했다. 기묘한 타임테이블 위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이런 오래된 골목이 간직하고 있는 특유의 모습들, 가령 시간이 흐른다기보다 한껏 고여 있어 한 시절을 연상하기에 좋을 정도의 습기와 쓸쓸한 과거의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여긴 골덴가예요. 건너편 니시 신주쿠에 비하면 올드 시티죠. 제가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구요. 시마 과장 좋아하십니까?”

다나카 상이 말했다.

“만화는 형이 더 좋아해요.”

다나카 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생각해보니 『올드보이』에도 골덴가가 나오네요. 한잔 걸치면서 신세 한탄하기 좋은 곳이에요.”

다나카 상이 습관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웃었다. 바람이 불자 애써 왼쪽 관자놀이 근처에 가지런히 붙인 머리카락이 솟아올라 뒤집혔다. 얼핏 잘못 만들어진 가발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머리숱은 적어도 10퍼센트가량 줄어든 것 같았다. 그를 보자 문득 최 부장이 생각났다. 다나카 상은 지훈을 보더니 더 호탕하게 웃었다.

“방사능 비 맞아서 그런 겁니다. 크하하하.”

쉰이 다 된 나이에도 여전히 미혼인 다나카 상은 어깨가 유독 넓어 보이는 회청색 파워 슈트에 물방울이 자글자글한 실크 넥타이를 고수했다. 덕분에 영화진흥공사에나 가야 있을 법한 80년대 필름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보였지만,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가 기억하는 1980년대는 무성했던 자신의 머리숱만큼이나 풍요롭고 따사로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 그들은 골덴가에 있는 다나카 상의 단골 선술집에 들렀다. 커다란 나무 테이블 하나가 전부였고, 입구엔 일본 식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사하는 고양이 인형 대신 ‘유키’라는 이름의 진짜 고양이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유키 짱은 자기가 고양이인 걸 모르는 눈치예요.”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의자 옆에는 고양이가 느긋하게 누워 있었다. 가자미 굽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옆 사람과 어깨가 맞닿을 정도의 좁은 거리에선 누가 하는 말이든 쉽게 섞였다. 술자리의 화제가 이번 일본 대지진이라는 건 지훈도 알 수 있었다. 당장 핸드폰 버튼 하나만 눌러도 흙더미 속에 통째로 매몰된 마을과 무너진 건물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원전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일본 특유의 전력 구조 때문인지 후쿠시마 원전 여파는 꽤 커 보였다. 도쿄 시내에선 전기를 아껴 쓰자는 캠페인 휘장을 두른 공무원들과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이 집은 녹차가 일품이에요.”

다나카 상은 지훈에게 따뜻한 녹차를 권했다.

“여기, 사케 집 아닌가요?”

“주인이 나가타 현에 커다란 녹차 밭을 가지고 있어요.”

“나가타 현이 녹차가 유명한 곳인가 보죠?”

“그곳은 쌀이 유명합니다.”

다나카 상이 지훈을 바라보며 낄낄대며 웃자 지훈도 따라 웃었다.

“지진 때문에 걱정이긴 하지만 잘 이겨낼 거예요. 지금은 각자의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힘들 때니까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투명한 잔에 담긴 녹차를 바라봤다. 평화로웠던 일본의 지난봄과 뜨거운 여름의 태양을 가득 담은 녹차일 것이었다. 다나카 상이 찻물을 따르는 소리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서울에 언제 가십니까?”

“회사에 전화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 갈 생각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하루나 이틀쯤 더 있을 수도 있어요.”

“벚꽃이 제철이라 좋을 때예요. 근데 어제 소나기가 와서 왕창 떨어졌어요. 하루만 일찍 왔어도 참 좋았을 텐데요. 정말 아름다운 벚꽃이었는데.”

그는 아쉽다는 얼굴로 지훈을 바라봤다. 하루만 일찍 왔어도…… 한 시간만 일찍…… 어쩌면 일분만 일찍 왔어도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 다나카 상은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꽤 무서운 말이었다.

“호텔은 편안하십니까?”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덕분에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지훈은 서울에서 일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극소량의 수면만으로 버텼던 몸이 보상받길 원하는 듯했다. 이상할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혹시라도 자다가 침대가 흔들리거나, 전등이 내려앉아도 놀라지 마세요.”

“농담은 여전하시네요.”

“농담이면 좋겠지만…….”

다나카 상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농담이 아니에요.”

호텔 방문을 열자, 어둠과 함께 깊은 정적이 밀려왔다.

지훈은 재빨리 스마트키를 꽂아 넣었다. 모던한 스타일의 침대와 침구류, 미니멀한 화장대 그리고 소파와 옷장이 모두 정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는 트렁크를 올려놓는 탁자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먼저 회의 때 입을 셔츠와 슈트를 꺼내 옷장에 비치된 옷걸이에 걸고, 속옷과 양말은 서랍에 개어 넣었다. 구두와 운동화는 슬리퍼가 들어 있던 더스트 백 안에 각각 넣어 옷장 앞에 놓아두었다. 서울에서 가져온 책은 침대 옆 스탠드 옆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마치 그곳에 보이지 않는 책꽂이가 있는 것처럼 그는 책의 높이와 두께 크기를 맞추었다.

지훈은 가방 안에서 액자 하나를 꺼냈다.

가죽으로 만든 두툼한 수첩처럼 보였지만 펼치면 어디에든 세워놓을 수 있는 액자였다. 지훈은 액자 속 사진을 보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형과 외할아버지가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쓰던 독서대와 꼬마전구가 달린 스탠드도 꺼냈다. 램프는 중국 광저우의 ‘이케아’에서 9달러를 주고 산 것이었다. 짐을 푸는 지훈의 얼굴은 주름 없이 빳빳한 호텔 침구류처럼 침착해져 있었다.

강의가 있는 날, 지훈은 하루 먼저 자동차를 몰고 가 연수원 숙소에서 잠을 잤다. 대부분 지방에 있는 연수원의 이른 아침 강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연수원에 미리 도착해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 조직 구성원이나 조직 문화를 이해하는 데 훨씬 유용하다는 최 부장의 충고 때문이었다. 지방의 기업 연수원에 내려가는 일은 지훈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에게 자신의 물건을 12평짜리 연수원 숙소에 알맞게 재배치하는 건 늘 중요한 일이었다.

지훈은 호텔 창밖의 어두운 풍경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새벽까지 열어놓는 작은 라멘 가게와 ‘lawson’이라고 적힌 파란색 간판 불빛이 어둠 속에 작은 배처럼 떠 있었다.

지훈은 잠옷을 꺼내 입듯 호텔 옷장에 걸려 있던 호텔 이름이 수놓아진 유카타를 걸치고, 오랜 기간 호텔에 머무는 장기 투숙자처럼 침대에 누웠다.

지훈은 호텔을 ‘숙소’라고 쓰고 ‘집’이라고 읽었다.

그가 명훈을 ‘형’이라 쓰고 ‘동생’이라 읽었던 세월과 무관하지 않은 고의적인 오독이었다.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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