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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람들에게 오전 일곱 시는 어떤 시간일까. 
알람 소리에 깨어 비몽사몽인 시간, 아침을 먹을지, 조금 더 잔 후에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간, 흐트러진 이불과 베개 사이에 기대 첫 담배의 니코틴을 잠들어 있던 폐 속 깊숙이 삽입하는 시간, 출근 전 밤사이 흘려놓은 사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분주해지는 시간들…… 며칠 동안 사강은 ‘오전 일곱 시’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처럼 계속 오전 일곱 시에 대해 생각했다.
일곱 시 칠 분.
사강은 시계를 보았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에 모인 사람들 중 눈을 맞추거나 악수를 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아는 얼굴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생기는 안도감이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옆자리에 앉은 창백한 얼굴을 향해 어색하게 웃기도 했다.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대담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을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레스토랑 안에는 미역국을 끓이는 냄새와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달걀찜 냄새가 흥건했다. 모두 불 위에서 온기를 내뿜는 가정식 음식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음식들은 부엌에 서서 쌀을 씻고, 익숙한 감자 칼을 든 채 커다란 감자를 깎는 엄마의 뒷모습을 연상시켰다. 유리벽으로 마감된 오픈키친 안에서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여자를 보다가 사강은 고개를 돌렸다. 결국 불륜이 성공적일 수 없는 이유는 함께 부엌을 공유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시간이 부족해서는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었던 기억이 없다면, 그것이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진 않을까. 그녀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레시피’라고 적힌 메뉴판의 메뉴를 공들여 읽었다.   

 

. 따뜻한 식전주
. 햇볕에 말린 홍합과 신선한 들기름에 볶은 한우를 넣어 끓인 미역국
. 내일의 달걀찜  
. 아침 허브와 레몬을 곁들인 연어구이
. 봄날의 더덕구이
. 미니 꽃밥
. 완두콩과 밤을 넣은 돌솥밥
. 달콤한 디저트

 

메뉴판은 오븐에서 막 구워져 나온 삼십 분짜리 구연동화 같았다. ‘꽃밥’은 꽃밭처럼 들리는 이름이었고, ‘봄날의 더덕구이’은 3월에 캐낸 더덕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를 연상시켰다. 사강은 무심히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정수가 말했었다.
계절 음식을 먹는 건 그 계절의 뼈를 통째로 씹어 먹는 거라고.
그러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음식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강은 실연이 폭식이 아닌 절식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의 퍼레이드를 목격하고 있었다. 절식 중인 수녀이거나 금식 기도 중인 신부이거나 교회가 부흥하길 바라는 개척 교회의 목사이거나 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예비 수도승들처럼.
이들은 금식 기도원의 식당에 앉아 있는 환자들 같았다. 낮에 자거나, 밤에 자거나, 못자거나, 너무 많이 자서 부은 얼굴들이 눈 밑에 깔린 다크서클과 입가에 팬 주름들과 함께 자신들의 슬픈 이야기를 찬송하고 있었다.
사강은 메뉴판의 음식들을 소리 내 읽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위안을 주는 노래처럼 들릴 것이다. 그것은 뜨거운 불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음식들이었고, 비행기 일등석을 타는 사람들도 기내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었다. 메뉴판에는 망가진 식욕을 한 올 한 올 기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성공할지 미지수였다.
사강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와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강의 눈에 가장 먼저 파란색 LA 다저스 야구 모자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쓴 채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망가진 심장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내내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강은 남자가 사람들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실내의 밝은 조명이 아니었다면 사강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남자는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동자를 숨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착용한 병약한 사람일 것이다.
건너편 여자의 충혈된 눈에는 피곤함이 눈곱처럼 말라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다크서클 때문에 난투극 끝에 탈출한 사람처럼 보이는 여자도 있었다. 간신히 샤워까진 했는데 머리카락을 말릴 기운은 없었다는 듯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유난히 곱슬곱슬한 건너편 여자의 라코스테 셔츠는 어깨 부분이 아직 젖어 있었다. 사강은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혀 손가락 몇 개를 눈 위에 올려놓았다. 빛이 눈 사이로 스며들지 않도록. 그녀는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슬로나 스톡홀름처럼 한여름 백야를 가진 도시에선 어둠이 급작스레 찾아들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밀려오고, 도심에 세워진 희붐한 가로등과 함께 서서히 빠져나간다. 이런 도시에 있으면 어둠과 빛에 대한 감각은 달라진다. 태양이 너무 오래 떠 있는 도시에선 어둠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태양을 밀어낸 사람이라면 어둠을 향해 날아가는 박쥐처럼 깊은 동굴 속을 배회한다.   
이들에게 사라진 건 태양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오전의 활기였다.
아침이 되었지만 이들의 눈은 밤처럼 닫혀 있었다. 묵직한 자물쇠로 채워진 눈동자는 생기를 잃었고, 공허한 눈빛 뒤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사강은 이들의 얼굴에서 보통 사람들 같으면 충분한 수면만으로 지워졌을 악몽의 그림자를 보았다.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었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어느 날, 사강의 무릎 위에 이렇듯 뜨거운 물이 가득 든 주전자가 엎어졌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 이곳저곳이 장마 끝에 습기를 잔뜩 머금은 벽지같이 여기저기 벗겨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생각 없이 손톱을 뜯거나, 이유 없이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거나, 참가비를 5만 원이나 내고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강은 이 얼굴들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흩어져 앉아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사강은 이들을 ‘오전 일곱 시의 유령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4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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