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


 “아내는 요리사야.”  

 프라하의 한 호텔에서 트렁크를 열며 어느 날 정수가 말했다. 

 “망해가는 레스토랑의 요리사. 곧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르지.”

 ‘망해가는’,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르는’ 같은 파멸의 문장들. 사강에겐 좋은 징조였다.

 “늘 건강식을 고집했어. 아마도 그게 그 레스토랑이 망해갔던 첫 번째 이유였을 거야. 칼로리가 낮은 음식이 건강에 도움이 될진 몰라도 대부분 맛은 없으니까. 나와 다르게 낭만적인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지.”

 좋은 징조는 점점 불길한 모습을 띠며 사강의 눈앞에 다가왔다. 정수는 잠시 뜸을 들이듯 트렁크 안의 물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빠르게 말했다.  

 “기억나는 유별난 요리 이름이 하나 있는데…… 아마 ‘내일의 달걀찜’이라고 이름 붙인 요리였지. 달걀찜에 저민 닭고기가 들어 있는 괴상한 요리였어. 난 그걸 요리계의 근친상간이라고 놀려댔고.”

 심지어 정수는 아주 조금 웃기까지 시작했다. 

 “아마 지금 내가 그 식당 이름을 얘기한다고 해도 절대로 믿지 못할 거야.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이름의 식당일 테니까. 오전 일곱시부터 문을 연다는 것도 이해하기 쉽진 않지. 이른 아침부터 산을 타고 내려오는 등산객들을 위한 식당도 아니었거든.”  

 사강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건 아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 사강은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제부터 짐 정리를 좀 해야겠어. 탁자 위에 참치 샌드위치가 있는데 좀 먹지그래?”

 정수는 탁자를 눈으로 가리키며 사강에게 말했다. 사강은 말없이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서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날 휘장이 달린 그의 캡틴 제복은 활짝 열어놓은 옷장에 반듯하게 걸려 있었다. 호텔의 침대 정중앙에 커다란 트렁크가 누워 있었고, 젖혀진 트렁크의 짐들은 제멋대로 헝클어져 침대 위에 널려 있었다. 정수는 트렁크 어딘가에서 계속 짐을 꺼내고 있었다. 속옷이나 간단한 상비약이 아니라,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물건들, 가령 보통 사람들의 여행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절대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트렁크에서 나온 대부분의 것들은 오랜 시간 햇빛에 바짝 말린 건어물처럼 압축되어 있었다. 

 “옷이 하나도 안 구겨지다니 정말 신기하네요. 비결이라도 있어요?”

 사강이 정수의 트렁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트렁크 안으로 돌돌 말려 들어간 그의 옷들은 조금도 구겨지지 않은 채 가방 밖으로 가뿐히 빠져나왔다. 속옷과 양말, 손수건과 검정색 피케셔츠가 나왔고, 음악 잡지와 항공 관련 잡지들이 나왔다. 그는 은색 스틸 액자에 넣은 그림과 사진을 꺼냈다. 그의 손은 쉬지 않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사강은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등진 채 이 모든 광경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수의 트렁크에서 마침내 접어서 사용할 수 있는 베개가 나왔을 때, 사강은 정수가 벌이는 이 놀라운 ‘트렁크 쇼’의 클라이맥스를 보았다. 텅 비어 있던 호텔의 옷장은 서울에서 입던 익숙한 옷들로 채워졌고, 호텔 매뉴얼북이 놓여 있던 창가의 테이블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이 놓인 개인 탁자로 변신했다. 욕실에는 호텔용 세면도구가 아니라 그가 늘 사용하는 칫솔과 치약 비누가 나란히 놓였다. 

 사강은 모든 일이 특별한 규칙에 의해 진행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수는 호텔을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처럼 꾸미고 있었다. 그것은 서울에서 가져온 물건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모든 걸 트렁크 안에 넣고, 필요한 것만 꺼내 쓰는 사강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세계를 떠도는 직업 여행자의 삶이 일상이 되려면 바로 이런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 자신의 집을 옮겨놓듯 호텔을 사유화하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을 사강은 불현듯 깨달았다. 일 년의 반 이상을 낯선 도시의 호텔 방에서 지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고향 집의 익숙한 풍경과 냄새를 복사해 그곳에 가져와야 한다는 걸, 한정수가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야만 때때로 밀려드는 노스탤지어의 공습을, 칼끝처럼 와 닿는 낯선 언어와 불면의 고통을, 아무리 채우려 해도 벌어져 채워지지 않는 뒤바뀐 오전과 오후의 시차를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여행자의 운명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여행의 기술이었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곳과 저곳을 떠돌며 호텔 노마드로 생활할 수 있었던 비밀이었다. 

 “이걸 쓰면 방콕이든 델리든 뉴욕이든 동일한 공기를 만들 수 있어. 네가 좋아하는 향을 기억하고, 쉽게 잠들었던 냄새를 기록하는 게 중요해. 낯선 공기 속에서 편하게 쉬는 사람은 없으니까.”

 정수가 샌드위치를 들고 있던 사강에게 내민 것은 옅은 녹색 향초였다.

 “이름이 재밌어. ‘비 온 후 이끼’거든.”

 정수는 향초를 삼나무 숲에 비가 쏟아진 후, 나무 밑동에서 올라오는 이끼 냄새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조향사가 만든 인공적인 조합일 테지만, 사강은 향초가 구현하는 세계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이른 새벽 동물들이 밟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젖은 흙냄새, 비 온 뒤 오래된 삼나무 숲으로 부는 바람의 냄새, 숲 속의 이끼들이 내뿜는 산소의 냄새. 

 냄새의 균질화. 

 호텔 침대에서 나는 옅은 세제 냄새와 막 청소한 카펫에서 나는 옅은 소독약 냄새를 없애고 자신이 좋아하는 향기로 주변의 공기를 바꾸는 기술. 

 사강은 향초가 자신이 누워 있는 작은 공간을 자신이 상상했던 곳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눈을 감으면 천년이 넘은 삼나무 숲을 걷고 있었다. 그의 손을 잡고 비에 젓은 융단처럼 폭신한 이끼 위를 맨발로 걷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사강은 늘 같은 브랜드의 향초를 피웠다. 


 “윤사강, 당신은 내일 죽는다면 뭘 하고 싶어?”

 뉴욕의 호텔에서 정수가 다시 짐을 풀며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잘 거예요. 정말 맛있는 걸 침대에서 먹고, 먹여주고, 다시 잘 거예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기타처럼 날 연주해주길 원해요. 기왕이면…… 그래요. 지미 헨드릭스가 좋겠네요."

 “난 지미 페이지 쪽이 더 좋은데.”

 “마지막 섹스는 혁명가처럼 하고 싶어요.”

 “지미는 27살에 죽었어. 체 게바라는 40살도 못 돼서 죽었고.”

 “당신은 이미 마흔 살이 넘었어요.”

 “난 혁명가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요절했어. 내 친구들도 그랬고.”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어두워지기 시작한 창밖을 내다봤다. 정수는 잘 때도 풀지 않는 손목시계를 습관처럼 다시 바라봤다. 

 “울란바토르 일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지? 지금도 알고 싶어?”

 정수가 물었다. 사강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날, 나는 몹시 피곤했어. 48시간째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지. 그래서 비행기에서 승무원들을 향해 난동을 부리는 그 작자들을 도저히 참고 봐줄 수가 없었어.”

 항문에 금괴를 끼어 밀수하려던 정신 나간 남자들의 이야기는 사실 사강의 흥미를 전혀 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탔던 비행기가 정수가 몰던 보잉 747-400이었고, 그가 고집한 원칙주의 때문에 사상 최대의 금괴 밀수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건 그녀의 관심과 별개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울란바토르 금괴 밀수 사건의 내막은 곧 이륙을 앞둔 L항공사 비행기에 울란바토르 경찰이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승객 중 몇 명이 긴급 체포되었고 이들은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난동을 부렸다. 그들은 자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항의했고, 바로 서울에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사업상 계약을 들먹이며 비행기가 자신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럴듯한 법무법인의 이름을 대며 소송할 것이란 협박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정수는 그들을 단 1분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즉각 이륙을 결정했다. 

 사강은 신문에서 울란바토르 경찰들에 의해 체포된 채 끌려가는 밀수업자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남자들이 숨겨 가려던 금괴가 고스란히 그들이 앉았던 비행기 좌석 밑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도 보았다. 뉴스는 조종사가 정시 출발을 고집했기 때문에 그날, 울란바토르에 넘겨졌을지도 모를 금괴는 대한민국 세관에 의해 안전하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내 오메가 알지? 두 도시의 시간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편리한 기계지. 정시에 울란바토르를 떠나면 인천에 새벽 다섯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 들었어.”

 “잠깐만요. 새벽 다섯시라면…….” 

 “오전 다섯시는 조종사들에게 무척 중요한 시간이야. 택시를 타도 관리팀에 영수증 처리를 할 수 있는 한계 시간이거든. 난 집까지 편하게 가고 싶었어. 믿을 수 없을 만큼 피곤한 날이었거든.”

 “설마! 모든 게 택시비 때문이었다구요?”

 사강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현실적인 일이지.”

 “그 일로 회사에서 주는 상도 받았잖아요.”

 “받기 싫다고 설명하는 게 훨씬 더 귀찮았으니까.”

 “상금도 있었잖아요.”

 “공항버스 대신 택시 탈 정도였어.”

 “맙소사! 그 일로 당신의 원칙주의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부기장을 세 명이나 봤어요.”

 마침내 사강은 그를 바라보며 웃기 시작했다. 

 정수는 잠시 사강을 바라보더니 웃고 있는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그는 그녀의 옷깃을 여미고 목덜미와 깊게 팬 쇄골에도 부드럽게 키스했다. 셔츠의 세 번째와 네 번째 단추를 푸는 정수의 손길이 느껴졌다. 브래지어의 와이어를 천천히 쇄골 쪽으로 밀어 올리는 동안 그녀의 젖꼭지에 그의 혀끝이 살짝 와 닿았다. 

 사강의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가느다란 팔목을 감싸고 있는 혈관을 따라 뛰고 있는 맥박을 느꼈다. 맥박이 뛰는 지점을 바라보는 동안 손바닥의 선명한 흉터가 보였다. 열다섯 살에 새겨진 상처는 이제 자신의 새끼손가락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사강은 오래된 흉터를 뚫고 맥박이 뛰는 근처까지 자라난 생명선을 바라보았다.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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