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사강은 그의 얼굴과 팔을 젖은 물수건으로 계속해서 닦았다. 그녀는 바짝 말라 보풀처럼 일어난 그의 입술에 바셀린을 바르고, 티스푼으로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흘려 넣어주었다. 사강은 룸서비스로 해열제와 가습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침대 옆 작은 테이블 위에 가습기를 올려놓았다. 가습기의 붉은색 버튼을 누르자 항균 마크가 적힌 분무를 통해 습기가 뿜어져 나왔다. 사강은 습기가 건조한 호텔방 모서리를 따라 골고루 흐르도록 분무기를 조절했다. 

 사강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받아둔 ‘응급처치 119’ 애플리케이션을 찾아냈다. 그녀는 알레르기 환자의 급작스런 발진과 발열 상황에 관한 카테고리를 읽다가, 고추와 굴 알레르기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찾아냈다. 

 H의 손등에 피었던 붉은색 반점도 이전보다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 밑에 낮게 웅크리고 앉아 그의 가슴에 자신의 오른쪽 귀를 갖다 댔다. 사강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그의 심장 박동을 체크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그의 호흡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 복잡한 혈관을 타고 심장을 거쳐가는 통로들을 그려보았다. 

 비행기가 고도를 유지하며 북태평양의 아득한 창공을 날고 있는 고요한 밤, 사강이 들었던 보잉 747-400의 엔진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왔다. 그녀는 다시 그의 심장 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비행기 엔진 소리처럼 들리던 이명은 그의 심장 혈관과 연결되어 있을 심장박동 소리와 포개어졌다.

 누군가 문을 열고 틀어놓은 듯한 음악 소리가 문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Love is real, real is love, love is feeling, feeling is love, love is touch, touch is love…… 존 레논의 <러브>였다. 사강은 끊임없이 사랑이 반복되는 레논의 속삭임을 들었다. 보통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는 이제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긴장감 때문에 뻣뻣해 보였던 얼굴과 눈가엔 순한 기운이 감돌았다. 길게 구부러진 속눈썹은 그의 얼굴에 소년 같은 천진함을 드리웠다. 호흡이 일정해졌고 가팔랐던 들숨과 날숨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강은 그의 얼굴을 조금 더 바라봤다. 사강은 가습기에 물을 한 번 더 채웠다. 모든 게 채워지고, 제 위치에 돌아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는 정수의 침대맡에 젖은 이끼 냄새가 난다는 향초를 켰다. 그것이 그의 밤을 지켜줄 것이라 믿으면서. 

 건조한 기내에 시달린 사강의 눈은 이제 뜨고 있기 힘들 정도로 뻑뻑해져 있었다. 그의 몸 상태를 조금 더 지켜본 후, 사강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24시간 째 긴장 속에 깨어 있던 그녀의 눈꺼풀은 어느새 감겨 있었고, 그녀는 정수의 방에 있던 하늘색 패브릭 소파 위에서 잠들었다. 꿈 없는 평온한 잠이 그녀의 온몸을 담요처럼 덮었다.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지만 그녀는 뒤척임 없이 잤다. 때때로 어떤 것에 깊게 호소하는 사람처럼 그녀의 입술은 살짝 벌어졌다 천천히 닫혔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미 그녀가 켜놓은 향초의 불은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사강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 눈부시게 환한 햇살이 호텔 구석구석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미몽 중에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환기하려 노력했다. 그녀가 옅은 꿈속에서 벗어나 마침내 눈을 떴을 때, 사강은 자신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과 마주쳤다. 그가 소파 옆에 앉아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었다. 

 “열이 있군.” 

 H가 말했다. 

 “계속 자는 게 좋겠어.”

 테이블에는 이끼 냄새가 나는 향초가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 


 한정수가 모는 보잉 747-400은 여객기는 물론 화물기로도 사용되는 CARGO 기종이었다.

 그는 때때로 평상복을 입고 승객으로 탑승해 앵커리지나 스톡홀름 같은 중간 기착지까지 날아가 자신이 조종하는 비행기로 갈아타고, 화물을 실어 날랐다. 레일이 깔린 화물칸 가득 공업용 소금과 구리나 망간을 싣고 도쿄로 향했고, 칠레에선 냉동육과 와인을 싣고 상하이로 날아가기도 했다. 언젠가 살아 있는 수백 마리의 닭들을 화물칸에 운송하기도 했는데, 수면 마취제의 양을 잘못 판단해 주사한 탓에 비행 중간에 깨어난 닭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인도 남부의 고아에서 온 코끼리를 화물칸에 실은 적이 있었어. 오사카에 새로 생기는 동물원에 보내질 코끼리였지.”

 그가 운행하는 747-400의 어퍼 덱(upper deck)에는 모두 6개의 좌석과 승무원들이 쉴 수 있는 벙크가 있었다. 비행기로 코끼리를 수송하느라 긴장했던 조련사는 비행기가 순항 고도에 이르자 좌석에 앉아 졸기 시작했다. 조련사는 커다란 매부리코를 가진 바짝 마른 인도 사람이었는데, 너무 말라서 벨트 없이는 어떤 바지도 입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정수는 그가 습관처럼 바지춤을 들어 올리며 수시로 화물칸으로 연결된 비상계단을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취시킨 코끼리의 상태를 살피는 그의 눈은 벵갈 호랑이처럼 매섭게 반짝였다. 

 정수는 정해진 시간마다 부기장과 교대해 조종간을 잡았다. 

 그는 벙크에서 쉬는 대신 화물칸에 잠들어 있는 코끼리를 보기 위해 비상계단을 내려왔다. 따뜻한 지역에서 온 코끼리라 온도와 습도가 특히 중요했다. 습도를 맞추기 위해 조련사가 코끼리 옆에 놓은 찌그러진 은색 물주전자가 그의 눈에 보였다. 코끼리는 조종석 가장 가까운 구역에 잠들어 있었다. 그는 화물칸을 천천히 걸어 코끼리가 있는 구역까지 근접했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믿을 수 없이 커다란 덩치의 코끼리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옆으로 누워 있었어. 태국에서 본 비스듬히 누워 있는 불상처럼. 코를 말아 감고 잠들어 있었어. 코끼리는 사람 앞에선 잘 자지 않는다더군.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이 거대한 동물이 절대 잠을 자지 않는 영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대.”

 “코끼리가 승객인 비행기는 잘 상상이 되질 않네요.”

 사강이 그를 바라보자 정수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날 코끼리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런 커다란 몸집의 네발 동물들만 있는 세상에 나만 유일하게 두 개의 다리를 가진 인간이라면 어떨까. 승객이 없는 비행기 안이라는 게 꽤나 외로워서 드는 생각이었을 거야.” 

 인간이 외로운 건 일평생 자신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외로운 건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말이다. 어린 시절 그녀가 느꼈던 도리 없는 고독이 그에게로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그 외로움의 기울기가 너무나 비슷해 그녀의 마음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울란바토르 금괴 밀수 사건, 어떻게 된 거예요?”

 울지 않으려면 어떤 질문이라도 해야만 했다. 사강은 정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알고 싶어요”라고.

 “진실을 말인가? 듣고 나면 놀랄 텐데?”

 정수가 사강을 빤히 바라봤다.   

 아홉시 뉴스에도 방송되었던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그가 왜 자신들을 데려가지 않으면 평생 저주하겠다고 난동을 부리던 자국민을 기다리지 않고 비행기를 돌려 황급히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는지 따윈 조금도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을 하지 않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에 사강은 항공사 사람들이 모두 다 알고 싶어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를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몇몇이 특히 더 알고 싶어 했던 이런 질문을 말이다. 

 “당신 아내는 어떤 사람이죠?”    

 사강이 대답을 기다리며 그를 응시했다.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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