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인권신문 | 기사 입력 0006년 8월 28일

7세 된 Y(서울 구로구)가 어린이집 친구에게 자기 가족을 소개한다. 소개받은 친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자신 앞에 서 있는 두 아저씨를 한참 동안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Y에게 묻는다. “이 사람이 아빠야? 또 이 사람도 아빠고?” Y는 고개를 끄덕이며, “음,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쪄.”라고 애매하게 대답한다. Y의 가족으로 밝혀진 두 아저씨가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자, 이번에는 친구가 직접 아저씨들에게 묻는다. “아저씨가 Y 아빠고, 아저씨가 Y 엄마 맞아요? 아니면, 둘 다 아빠예요?” 질문을 받은 두 남자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짓는다. 그러자 Y의 친구는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그렇구나. 내가 아는 사람들은 남자가 아빠고 여자가 엄마인데, Y네 집은 엄마, 아빠 모두 남자구나.” Y가 친구를 보며 그건 아니라는 표정을 짓자, 친구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둘 다 아빠구나! 와, Y야! 넌 아빠 둘 하고 사는구나! 좋겠다. 셋이 야구도 할 수 있고! 근데 밥은 누가 차려줘? 하긴 요즘 세상에 아빠가 밥 차리는 일이 대단한 일은 아니양.” Y는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두 아저씨도 Y와 함께 끄덕인다.
그러자 친구는 진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이제 우리 가서 놀아도 돼요? 아저씨들. 아니, Y 엄마, 아빠! 아니, 아빠, 아빠. 아이, 잘 모르겠네. 암튼 우린 이제 놀러 가도 되죠?”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Y와 친구는 두 손을 꼭 잡고 방으로 후다닥 뛰어간다.

 그렇다. Y의 부모(보호자)는 동성애자이다.
경상도 문경 출신인 Y의 아빠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만난 8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했다. 연애 경험이 없었던 Y의 아빠는 자신이 선천적으로 섹스에 대해 무심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정신적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면서 둘 사이에서 Y가 태어났다. 하지만 Y가 28개월 되었을 무렵 Y의 아빠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이혼을 선택했다. 젊은 Y 엄마의 장래를 생각해 Y는 아빠가 키우기로 했다. Y 엄마는 다행히 남편을 이해했다. 두 사람이 성 정체성의 문제를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대화를 자주 나눴던 사이였기에 가능했던 ‘덜(!) 슬픈’ 이별이었다. 안면 장애를 갖고 태어난 Y는 그때부터 아빠의 손에서 자랐다.
 Y가 네 살 때, Y의 아빠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물론, 남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다. 아빠의 남자 애인은 마치 친엄마처럼 Y를돌봤고, 자연스럽게 세 남자는 동거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가족들은 두 남자의 관계를 인정했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살았던 그들은 편견과 구설수에 삶이 평탄한 날이 적었다. Y의 아빠와 애인은 사실혼 관계였지만, 부부로서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Y는 두 사람에게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편부인 셈이다.
하지만 오는 8일이면 이 가정에도 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시민결합결혼제도’가 정식으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Y 아빠와 같은 동성애 커플도 정식으로 부부가 될 수 있다. 이번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대만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성 간의 결혼을 제도화한 나라가 되며, 세계적으로는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를 인정한 열여덟 번째 나라가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388만 동성애자들이 간절히 바랐던 소망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미 서울에만 8,000건 이상의 서류가 접수된 상황이고, 전국적으로는 1만 8,000명이 넘는 동성애자들이 ‘시민결합결혼제도’를 통해 정식 부부로 인정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로써 그동안 인권의 사각지대로만 여겨져왔던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진일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 자체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의견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시민결합결혼제도’가 동성애자의 인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긴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Y의 사례와 같이, 가정에서 부모를 성별로만 구별할 경우,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은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상의 불편함, 불이익은 고스란히 Y, 즉 아이에게로 돌아간다. 예를 들어, 현재 7세인 Y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그때 작성해야 할 서류들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대로라면 Y는 아빠는 있지만, 엄마는 없는 아이가 된다. 왜냐면 아이의 부모(학부형)는 반드시 남성과 여성의 조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결합결혼제도’ 시행과 함께 Y의 아빠는 법적으로 배우자가 있는 남성, 즉 유부남이 된다. 결국 Y의 입장에서 보자면, (법적으로) 아빠의 배우자를 엄마라고 부를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아빠의 배우자이므로 아빠라고도 볼 수 없다. 정부는 이 문제를 점진적으로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현재까지 정부는 아무런 대안도 마련한 바가 없으며, 동성애자 인권 신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민결합결혼제도’를 반대했던 일부 보수 단체 및 종교 단체들은 동성애자들의 결혼제도에서 한발 양보했기 때문에 (동성애자) 부모 문제에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즉, 동성연애자들의 결혼은 어쩔 수 없이 인정했지만, 법적으로 동성연애자들이 부모가 되는 것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얼마 전 대표적인 보수 개신교 목사로 알려진 오○○ 목사의 ‘동성애=수간(獸姦)=시간(屍姦)’ 발언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되기도 했다. 보수 개신교 단체는 “‘시민결합결혼제도’ 자체가 이미 해악이며, 만약 더 큰 악행(동성애 학부모의 법적인 인정)을 저지른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일부 보수 강경 종교단체연합에서는 ‘동성애 자체가 지옥행 직행 차표’라고 선전하고 있다. 합리적인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진영에서는 “물론 동성애자 부모를 둔 아이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동성애자들이 부모가 될 경우 평범한 아이들이 겪을 성 정체성 혼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성애 단체 ‘동무사이’에서 최근 조사한 설문의 결과를 보면, 보수 단체들의 주장을 재고해볼 만하다.
 만 12세 이하 초등학생의 경우 58.8퍼센트가 친구의 부모가 동성(애자)인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했으며, 28.8퍼센트는 친구에게 설명을 들은 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으며, 8.8퍼센트만이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3.6퍼센트는 생각해본 적 없다고 답변했다. 초등학생들의 경우 오히려 성인들보다 성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동무사이’의 오○○ 간사는 동성애자 부모를 인정하는 것은 추상적인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것이 거부될 경우 우리 아이들의 일부가 아무런 준비 없이 법의 테두리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부모의 인정은 재산 분할, 상속, 입양 등의 권리, 그리고 입원이나 감옥 면회, 신원보증 등 소수자들이 실질 생활에서 겪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고 설명한다.
‘동무사이’에서는 동성애자 부모를 둔 아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동성애자 부모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풍토를 만듦과 동시에, 서류상으로 부(아버지)와 모(어머니)를 성별에 따라 구별했던 것을 폐지하고 부모1, 부모2로 표기하자는 것이다. 보호자1, 2도방안이 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이미 8년 전부터 ‘파트너 등록제’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는데, 이 제도는 동성同性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권 신청서 등의 각종 민원 관련 서류의 부모 인적 사항 기재란에 ‘아버지father’, ‘어머니mother’ 대신 ‘부모 parent 1’, ‘부모 parent 2’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 제도이다. 영국 정부가 부모의 성별이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성적 차별이라는 동성애 옹호 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를 옹호하는 언어학자들은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전적 의미를 재정립 혹은 확장하자고 주장한다.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발간된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아버지’는 명사이며, 1) 자기를 낳아준 남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2) 자녀를 둔 남자를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이르거나 부르는 말, 3) 자녀의 이름 뒤에 붙여, 자기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4) 자기를 낳아준 남자처럼 삼은 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이상 네 가지로 정의되고 있다. 네 가지 정의에 모두 ‘남(자)’이라는 성별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뜻을 더 추가하자는 것이 동성애 옹호 언어학자들의 주장이다. 5)자기를 낳거나 길러준 남자나 여자 중 한 명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혹은 자신을 낳고, 길러준 남자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자. 물론, 어머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전적 의미를 임의로 추가한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며, 단지 사전적인 의미가 확장된다고 실효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아예 동성애 부모를 칭하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동성애자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과 별개로 보는 것이 옳다. 아동 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들의 자식을 동성애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수 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동성애자 부모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동성애자의 자식들의 장래나 그들의 권리까지 빼앗아선 안 될 것이다. Y의 부모가 동성애자라고, Y 역시 동성애자라고 볼 순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러한 아동들의 권리일지도 모른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편을 갈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아직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의 권리를 생각해볼 때다.
친구 아빠의 성별은 아이들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친구와 언제, 어떻게 놀 수 있느냐이다. Y와 친구처럼 말이다. 결국,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일은 부모의 성 정체성을 구별하여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 잘 어울려서 뛰놀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편견을 완전히 없앨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덜(!) 불편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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