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아빠는 수집광이었다. 

그는 오디오에 미쳐 집 안을 온통 쌀 궤짝처럼 생긴 괴상한 스피커로 가득 채우곤 했는데, 그의 수집벽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져 시계, 카메라, 초판본이나 장정이 독특한 희귀본 고서 같은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아빠의 수집 욕망을 가장 자극하는 것은 국경을 초월한 여자들이었다. 육감적인 일본 여자, 눈동자가 유달리 검은 초원의 몽골 여자, 몇 달 동안 햇빛 한 번 쏘인 적 없어 보이는 옅은 금발의 창백한 스웨덴 여자…….

어린 시절부터 사강은 늘 귓속에서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음을 들었다. 

그 소음들 속에는 엄마의 울음소리나 아빠의 웃음소리가 괴상하게 섞여 있었다. 그녀는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사강은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나이에 불시에 부모의 이혼을 맞이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기어이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집념을 키우게 된 건, 아홉 살 윤사강이 택한 최악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엄마의 양육 방식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사강은 말하는 법보다 말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다. 아프다고 울기보단 스스로 약국에 가는 편을 택했다. 물론 그녀가 아주 많은 말을 하는 예외적인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말을 참았던 부작용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라는 점에서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그녀의 말끝에는 잘린 전선처럼 생긴 마디들이 드러났고, 그 마디 끝엔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보기엔 힘든 짓눌려 너덜대는 감정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사강은 너무 말을 안 하거나, 너무 많은 말을 해서 주변의 어른들을 걱정시키는 아이였다. 

그럴수록 엄마는 사강을 더 보호하려 들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사강의 신경증을 두려워했다. 엄마는 ‘하지 마!’란 말을 달고 살았다. 더러우니까, 위험하니까, 힘이 드니까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의 리스트는 사강이 커갈수록 점점 더 늘어났다. 

엄마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물고기를 사랑하는 편이 더 쉬웠다.  

사강은 수족관에 있는 엔젤 피시의 밥을 직접 주었다. 엔젤 피시에게 ‘꼬마’란 이름을 지어준 것도 사강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물고기 밥은 하루에 딱 10알만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강은 자신이 배가 고플 때마다 꼬마에게 매번 한 움큼씩 먹이를 더 주었다. 

그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처럼 사강은 물고기와 우정을 나누었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손등을 꼬집은 일, 맨 뒷자리에 앉은 남자아이가 자신의 치마를 들춰낸 일도 꼬마에게만은 말했다. 그녀는 물속을 움직이며 말없이 뻐끔거릴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는 꼬마의 얇고 투명한 지느러미를 사랑했다. 먹이를 받아먹을 때마다 불룩해지는 꼬마의 입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꼬리를 나풀거리며 헤엄치던 꼬마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어린이 수영단에서 막 배영을 배우던 시기였으므로 사강은 꼬마가 수족관 안에서 배영을 연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강은 배를 내보인 채 30분이나 둥둥 떠다니는 꼬마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땐, 이미 꼬마가 죽어버린 후였다. 

“잘 기억해둬. 사랑을 너무 많이 주면 이렇게 배가 터져 죽어버려!”

꼬마가 배를 보이며 뒤집혀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때, 플라스틱 뜰채로 물고기 사체를 건지며 엄마가 말했다. 사강은 차라리 아프게 손바닥을 맞고 싶었다. 물고기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라면 벌을 받아 끔찍한 죄책감을 덜고 싶었다.

“얼굴 더러워지니까 울지 마라.” 

“…….”

“넌 이제 꼬마가 아니야.”

엄마는 꼬마와 똑같은 금붕어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강에게 더 이상의 물고기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너도 곧 열 살이야. 알겠니?”

두 손의 주먹을 꼭 쥐고 있던 사강은 엄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강은 점차 누군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말하지 않게 되자, 점점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졌다. 그렇게 사강은 원하는 것을 말하는 재능을 잃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그녀를 아주 유능한 회사원으로 만들어주었는데, 불만 없이 자족하는 사람이 귀한 시대에 그것은 거꾸로 보기 드문 재능으로 승화되었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이 짜거나 싱겁다고 고래노래 소리를 지르며 매니저를 불러내는 사람들을 보면 사강은 경외감을 느꼈다. 비행기에서 난동을 피우며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겠다고 발작을 일으키는 승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커피가 뜨겁지 않다고, 샐러드가 차갑지 않다고, 기내 에어컨이 너무 세다고, 약하다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격정적인가. 자신의 명함을 내밀고 만나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저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에 비해, 자신이 원하는 걸 분명히 말하고 있는 사람의 욕구를 채워주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사강이 잃어버린 승객의 콘택트렌즈를 찾아주고, 보드카를 생수병에 넣어 몰래 반입한 시끄러운 러시아 사람들을 상대하고, 불편한 자기 자리 대신 텅 빈 비즈니스 좌석에 앉아 가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 승객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고객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스웨덴 여자와 살며 눈 푸른 이복동생을 낳은 아빠에게 뭘 기대한단 말인가. 지금의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나이에 딸을 낳은 엄마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올해의 스튜어디스 상’을 두 번이나 탄 사강이 뛰어난 승무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건 자명했다. 그녀의 서비스는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콤플렉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자연스러웠고,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그러나 사강은 점점 비행기 타는 것이 두려웠다. 비행기를 타면 가슴이 죄어오고 숨 쉬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녀는 자주 주먹으로 흉곽 부위를 내리쳤다. 과호흡이나 공황장애 환자를 위해 기내에 설치된 산소호흡기를 떼서 입에 대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참아야 했다. 그것이 수시로 바뀌는 고도나, 헤어 제품으로 애써 고정한 머리카락을 있는 대로 조여 맸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란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만약 비행기 조종사에게 뜻하지 않은 고소공포증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을까. 도서평론가에게 불시에 난독증이 생겼다면 말이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그녀의 일상을 점점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사강은 신발장을 활짝 열었다.

상자 속에서 네 개의 상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것 중 하나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독일어판 『슬픔이여, 안녕』이 들어 있었다. 사강은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부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라면 얘기가 달랐다. 사강은 혐오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 것을 곁에 두지 않을 권리라면 그녀는 마음껏 주장할 수 있었다. 

이 책들, 『슬픔이여, 안녕』은 그녀가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


책은 대부분 기념일이나 기념일 전날 도착했다. 

밸런타인데이, 크리스마스 열흘 전, 생일, 여름휴가 시즌에도 책이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책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기념일’인지 알 수 없는 평범한 날 도착했다. 네 권의 책이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 년이 걸리지 않았다. 책에는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았다.  

누구도 이런 식으로 선물을 보내진 않는다. 

사강은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았다. 패턴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이런 선물은 사강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습작기 학생이 쓴 플롯 없는 엉망진창인 추리소설 같았다.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은 첫 번째 일본어판 『슬픔이여, 안녕』은 크리스마스에 도착했다. 상자에는 교토를 상징하는 황궁이 그려진 우표가 나란히 두 장 붙어 있었다. 사강은 일본어 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본어라면 아주 조금 말할 수는 있었지만, 한자를 제외한 일본어를 읽을 순 없었다. 



가로가 아닌 세로로 길게 늘어선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강은 이 책이 낯설었다.  ‘밸런타인데이’에 도착한 상자 속에는 스페인어 판 『슬픔이여, 안녕』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발신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스탬프가 택배 상자 위에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크리스마스 열흘 전에는 이태리 피렌체에서 『Boungiorno Tristezza』가 날아왔다. 

사강의 생일 날, 베를린에서 날아온 책에는 『Hallo von Sorrow』라는 소설 제목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매번 사강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시간대가 전혀 다른 낯선 도시를 배회하며 자신에게 책을 보내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그 사람의 손가락 지문과 그림자가 이 낯선 책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 책들을 읽으라고 보낼 리 없었다. 

생일에는 코끼리나 주술사가 그려진 실크 스카프와 함께 ‘사랑하는 내 딸’로 시작하는 엄마의 축하 카드가 날아왔다. 매년 같은 생일 축하 문장과 다른 패턴의 스카프를 보내는 것이 엄마의 인사법이었고, 스카프가 들어 있던 오렌지색 박스를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이 사강의 생일날 아침 풍경이었다. 하지만 의문의 상자가 도착하기 시작한 후, 생일은 축하의 의미보단 이번에는 과연 어떤 도시에서부터 어떤 언어로 번역된 책이 날아올지를 추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강은 파리에 사는 아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태리에 간 아빠가 피렌체를 떠돌다 두오모 근처의 헌책방에서 충동적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사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딸의 이름을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으로 지었던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사랑의 표현이 동명 소설가의 책을 보내는 일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사강에게 선물을 한 적이 없었다. 그가 준 어떤 선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 사강 자신이었다. 그는 딸에게 선물할 권리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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