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5부.  B747-400 



2009년 일본의 젠니쿠 항공사는 승객들에게 비행기 탑승 전 반드시 화장실에 다녀올 것을 권고한 적이 있다. 승객들의 소변 무게를 줄이면 이산화탄소와 연료의 소모를 줄여 지구 환경 보존에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이 항공사 측의 의견이었다. 

같은 이유로 승무원들의 플라이트 백 무게를 줄이라는 회사 측 공문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공문이 나가기 전,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승무원들이 승진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괴소문이 돌기도 했다. 

“결론은 하나야. 마르고, 팔 길고, 여자보다 힘센 게이가 앞으로 항공업계를 장악할 거야! 키 작아도 팔만 길면 승객들 짐쯤이야 선반 위에 쉽게 밀어 넣을 수 있잖아? 너, 뚱뚱한 게이 본 적 있어? 난 없거든.”

첫째와 둘째 아이를 동시에 임신했던 입사 동기 윤희는 자신의 뚱뚱한 배를 바라보며 한탄하듯 말했었다. 

항공사에는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치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로드 마스터’라는 전문적인 직업이 존재한다. 비행기에 승객이 탑승하면 로드 마스터는 비행기의 ‘웨이팅 밸런스’를 체크해 승객의 짐과 화물을 나누어 배분하고 파악한다. 짐을 앞쪽에 실을 것인지, 뒤쪽에 실을 것인지에 따라 비행기의 이착륙이 달라지기도 한다.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비행기의 균형을 위해 승객의 좌석 위치를 바뀌는 경우도 있다. 보잉 777이나 에어버스 380처럼 거대한 비행 물체가 하늘로 떠오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균형이 중요하다.

사강은 균형을 늘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늘은 런던에서, 모레는 상하이에서 뒤집힌 낮과 밤을 맞이해야 하는 게 일상이라면 균형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하늘’이 아니라 ‘땅’에 뿌리내리고 살려면 말이다. 사강은 십 년째 같은 몸무게를 유지했다. 잠들기 위해 똑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었다. 같은 브랜드의 샴푸와 린스를 쓰는 것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만약 그녀의 인생에 ‘로드 마스터’가 존재한다면 지금이 가장 필요한 시기였다. 

사강은 공항 카페 라운지에 앉아 이륙을 준비 중인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어릴 땐 비행기를 바라보면 어딘가 자유롭게 떠나는 보헤미안의 이미지가 떠올랐었다. 하지만 승무원으로 입사한 후 한동안은 에어버스 330의 꼬리를 바라보면 ‘반 냉동 상태의 기내식은 160도 이상의 오븐에서 이십오 분 데운다’ 같은 공식이 떠올랐다. 하늘을 나는 새 떼들을 보면 언제나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승무원이 된 후엔 비행기 프로펠러 속으로 그것들이 빨려들어가거나 부딪혀 일어나는 ‘버드 스트라이크’ 같은 비행 사고가 먼저 떠올랐다.     

승무원이 된 후, 어느 도시에 가도 감흥이 십 분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도쿄는 서울과 비슷하고, 스위스는 독일과 비슷해 보였다. 프라하는 로마와 비슷해 보이고, 세부는 발리와 비슷했다. 어떤 도시가 어떤 도시와 비슷해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 끊임없이 “어디 가니?”라고 묻는 증세를 승무원들은 ‘항공성 치매’라고 불렀다. 항공성 치매의 가장 안 좋은 점은, 더 이상 어떤 아름다운 도시에 가도 자신을 위해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거 로모 아냐?” 

윤희가 말했다.  

“너 비행할 때 카메라도 가져가니? 난 잠자느라 호텔 밖으론 나가지도 않는데. 보기보다 낭만적이다, 윤사강. 입사 칠 년 차가 이럴 수도 있구나.” 

사강은 막 도쿄 비행을 마치고 활주로가 보이는 에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카페에 앉아 늦은 점심으로 치즈가 들어간 파니니를 먹으며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꺼냈다. 카메라는 성인 어른의 것이라기보단 조카에게 선물로 주기에 적당한 장난감처럼 보였다. 

“로모가 뭐야?”

사강이 말했다. 

“로모 몰라? 러시아에서 만든 카메라잖아. 나 이 카메라 좋아하는데.”

“왜?”

“싸잖아. 10만 원도 안 할걸?”

윤희는 사강이 들고 있던 카메라를 빼앗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로모, 색감이 되게 독특해. 사진을 찍으면 탈색된 것처럼 뿌옇게 날아가버리거든. 파스텔 톤이 된다고. 그래서 이 카메라만 고집해서 쓰는 로모 마니아도 있어. 근데 너, 필름 카메라는 좀 불편하지 않아? 현상소 찾는 것도 일이잖아. 난 되게 귀찮던데.”

“필름 카메라라구?”

카메라를 든 채 사강이 윤희를 바라봤다.

“카메라 뚜껑 열면 필름 넣는 곳이 있을걸? 로모는 디지털 아니잖아.”

“필름이 없으면 이 카메라 쓸 수 없는 거니?”

“당연하지. 요즘 전문가들 빼고 누가 필름 카메라를 쓰겠냐? 디지털처럼 당장 확인해볼 수도 없고, 잘못 찍어도 지울 수도 없고, 현상하는 데 돈 들고. 그나마 현상소도 별로 없잖아.”

윤희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그때, 사강의 머릿속에 ‘무용지물’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제야 자신이 실연당한 사람들의 모임에 놓고 온 기념품을 가져갔을 사람이 느낄 당혹감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를 모르면 읽을 수 없는 책과 필름이 없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카메라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좋아한다는 이유로 비틀즈의 <ABBEY ROAD> LP판을 선물해줬다 해도 만약 LP를 걸 턴테이블이 없다면 제아무리 값비싼 희귀 앨범이라 해도 역시 별 소용 없는 거 아닐까.  

사강은 로모 카메라를 바라봤다. 사강은 필름 카메라를 써본 적조차 없었다. 카메라에 필요한 필름을 사고, 그것을 카메라 안에 끼워 넣고, 필름 현상소에 가서 사진을 인화하는 일은 그녀에게 낯설었다.  

“필름 어디서 팔아?” 

“모르겠어. 필름 사본 지 하도 오래돼서.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팔지 않을까? 혹시 공항 안에 현상소가 있었나 모르겠네?”

윤희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사강 역시 길거리에서 도저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동창을 만난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누군가는 실연을 당하고 ‘차차차’나 ‘살사’처럼 격정적인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실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실연 후 사표를 던지고 스무 시간 이상 비행기를 탄 채 지구 반대편으로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영화에서 우연히 본 가우디의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에 반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그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 되는 사람도 있다. 

사강은 창문 밖의 활주로를 바라보다가 생각에 빠진 듯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필름 넣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필름 카메라는 골치 아픈 기계다. 하지만 쓸모 있다는 것의 정의가 사람마다 같을 순 없다. 무용지물이라야 가치가 올라가는 세계도 있으니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쓸모만큼만 인정받다가, 쓸모가 사라지면 즉각 폐기되는 삶이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경쟁이라면 그것의 반대편엔 또 다른 세계도 있는 거 아닐까. 세상엔 쓰임새가 애매해서 그저 간직할 수밖에 없는 물건도 있다.

“카메라 누구한테 선물 받은 거야?”

“응.”  

사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를 손에 꼭 쥐었다. 

“남자?” 

“글쎄…….”

카메라를 카메라가 아닌 ‘로모’라 부르는 일. 이 ‘로모’가 누군가에겐 ‘로모’가 아닌 또 다른 애칭으로 불렸을지도 모를 가능성. 그런 것들. 살면서 가지고 있는 물건에 친근한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친구처럼 생각하며 소중하게 다루는 일. 사강은 귀퉁이가 낡아 둥글어진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문득 낡은 카메라의 진짜 이름과 시간이 궁금해졌다. 

창문을 향해 막 마드리드에서 착륙한 보잉 777-200 한 대가 비행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된 비행기 꼬리가 아름다운 피조물처럼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며 터미널 쪽을 향해 들어왔다. 사강은 가방 속에 다시 카메라를 넣었다. 그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윤희에게 중얼대고 있었다. 

“런던에서 돌아오면 당장 필름부터 사러 가야겠어.”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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