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정미도! 하던 얘기나 마저 해봐.” 

“뭐, 그때까지 땅에서 스팀 보일러처럼 연기가 무시무시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잿더미에 덮인 그 땅이 꼭 살아 있는 짐승의 뒷모습 같더군. 그 안에 양복에 넥타이를 매거나, 하이힐을 신은 수백 그루의 시체들이 묻혀 있을 걸 생각하면 끔찍하긴 했지만, 뭐랄까.” 

미도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듯 잠시 긴 숨을 내쉬었다.  

“그래! 장엄했어. 장엄하고 압도적인 서사시 한 편을 보는 것 같았지. 얼마나 큰 슬픔인지 전염성이 강해서 나도 생면부지인 사람들에 섞여서 넋을 놓고 울고 있었거든. 모두 하얀 꽃을 사들고, 떠나간 친구나 가족들의 사진을 들고, 눈물을 쏟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꼭 뉴욕이란 도시의 가장 슬픈 배경 음악 같았어. 잿더미 위에 수북이 쌓인 꽃들은 시들어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처연한 느낌까지 주더라. 뭐랄까, 시에라리온 같은 아프리카에선 다이아몬드 하나 때문에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이 죽어간 적도 있는데, 그곳에선 구체적인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거든. 아마 아프리카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겠지. 근데 내가 직접 목격한 뉴욕 그라운드 제로의 슬픔은 너무 구체적이라, 할 말을 잃고 말았어. 내가 아는 사람이, 그 사람의 친구가, 그 친구의 친구들이 공부하거나, 일하고, 삶을 개척하며 살아간 도시였으니까. 그게 내가 처음 본 뉴욕의 이미지야. 무너지거나 상실된 사람들의 땅.”

“그래서?”

“그래서 도쿄에도 가보고 싶어.”

미도가 말했다.

“위로해주고 싶어서?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리고 싶어서 그런 거야? 언니가 마더 테레사니?”

“위로해주고 싶은 게 아니라 위로받고 싶어서겠지.”

미우가 심란한 얼굴로 미도를 바라봤다. 미도는 잠시 생각에 빠진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나지막이 긴 한숨을 쉬더니, 뭔가 새롭게 다짐하려는 듯 기지개를 켰다.

“언니한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구나.”

“무슨 일은?”

“아냐, 분명히 있어. 말 안 할 거야?”

“비행기 표 값이 너무 싸잖아!” 

“너무 일차원적이야.”

“너 같은 다차원적인 인간이랑 살다 보니 더 이렇게 된 거야. 한 번도 도쿄에 못 가봤으니까 이번이 좋은 기회야. 너무 싸!”

“싼 만큼 위험하겠지.”

“이봐, 젊은이. 모험가 정신 좀 키워봐. 면접관이 원하는 건 그런 거야.” 

“어떻게 9․11 테러에서 그런 결론이 나와?”

“너한테는 없는 현실 감각이지.”

“배우고 싶은 마음도 없어.”

“가르친다고 생기지도 않아! 도쿄 갈 거야, 말 거야? 2인용 끊어, 말아? 삼 초 안에 대답해.”

“방사능에 피폭되면 어떡해?”

“현실 감각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일 초.”

“지진 나서 건물 무너지면?”

“이 초 막 지나갔다.” 

“신문 보니까 편의점에 물건도 거의 없고, 생수 사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던…….”

“일 초.”

“가자, 가!”   

“혼자 죽긴 너한테 투자한 돈이 너무 아깝잖아. 너한테 효도 받을 날을 꿈꾸면서 투자하는 건데. 너는 주식, 부동산, 금 통틀어서 투자 대비 효용성이 가장 꽝이야.”

“너무해!”

미도가 크게 소리 질렀다.  

벽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동시에 세 번 울렸다. 

조용히 안 하면 당장 벽을 부셔버리겠다는 옆방 고시원 총무의 날카로운 경고음이었다. 


*


며칠 후, 미도의 핸드폰에 문자메시지 한 통이 떴다. 


―이 형제, 캐면 캘수록 엄청나게 흥미롭던데요? 지난 이십오 년간 보험회사 최고의 악성 고객이었을 듯. 2008년에는 거액의 생명보험 두 개를 연달아 탔어요. 금액을 알고 나면 아마 과장님이 직접 사귀고 싶어질걸요? K 생명회사에 최고 베테랑 보험조사관이 이 사건을 직접 맡아 삼 개월 동안이나 밀착 조사했었습니다.   


셜록이 보낸 메시지였다. 

미도의 이메일에는 ‘이명훈 파일’이란 제목의 메일이 도착했다. 

이명훈과 이지훈. 이름만 봐도 이들이 혈연관계라는 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미도는 천천히 이지훈과 이명훈의 프로필을 읽기 시작했다. 이들 형제는 불과 십육 개월 차이로 태어난 연년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건 평탄하게 살아온 듯 보이던 이지훈이 실질적인 고아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다는 건 여러모로 미도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지훈이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와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어린 시절 그와 형에게 거액의 보험금이 나온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 없는 고아의 삶이 어떤지 미도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가족 없이 풍족한 삶을 살았다는 건, 그가 어떤 식으로든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셜록이 알아낸 자료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일 년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명훈은 팔 년 만에야 간신히 학교를 졸업했다. 그것은 나이가 다르지만 일정 기간 명훈과 지훈이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그는 주소지를 바꾸며 무려 네 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녔다. 명훈이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중학교에 들어간 건 누군가의 확고부동한 의지로 이루어낸 기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다섯 달 만에 쫓겨났다. 그는 곧 중학교를 자퇴했다. 교무 일지에 의하면 이명훈은 수업 중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벌떡 일어나 빙글빙글 도는 이상행동을 자주 했다. 

그가 중학교를 자퇴한 후 주소지가 한 번 더 바뀌었다. 명훈은 성북구에 있는 장애인 학교에 들어갔다.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를 전문적으로 코칭하는 특수 교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미도는 이메일을 읽다가 놀라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놀랍게도 명훈의 최종 학력이 전문대 중퇴로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학은 겨우 삼 개월 정도만 다녔을 뿐이지만 장애인 학교를 다녔던 아이가 대학교 교육까지 받게 된 배경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이메일의 거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이들의 경제적, 정서적 지원자가 사 년 전 비슷한 시기에 죽었다는 기록이었다. 보험조사관이 조사한 내용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이에겐 끔찍한 재난이었지만, 어떤 이에겐 영원한 휴식을 의미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먼저 외할머니가 죽었다. 

한 달 후 외할아버지가 죽었다.

모두 명훈의 대학 중퇴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고, 이지훈이 대학을 졸업하기 일 년 전이었다. 조부모가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이지훈은 사망 이후에 알게 되었다. 

이명훈은 현재 파주의 한 전문 요양 시설에 있었다. 이지훈은 매주 토요일 일정한 시간에 형을 찾아간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매주 형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사 가지고 가기 때문에 요양원 최고의 인기남이에요. 돈 많고 외로운 그곳 노인들 모두의 친손자인 셈이죠. 


셜록의 이메일은 ‘친손자’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힌 채 끝나 있었다. 

미도는 컴퓨터를 닫고 사람들이 퇴근한 어두운 건물을 지나 버스 정류장에 섰다. 

소나기가 내린 후 서울의 도심은 여기저기 젖어 있었다. 거리의 건물과 나무들은 본래의 색보다 더 진한 빛을 내며 반짝였다. 빈 버스 안에서 미도는 자신의 등에 감도는 희미한 불빛을 느꼈다. 비가 내린 후라 기온은 떨어졌고, 하늘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가로등 불빛에 축축이 물든 도시는 차가워 보이지 않았다. 

“힘들어도 웃어라, 그래야 좋은 일이 생긴다, 슬퍼도, 싫어도 좋은 말만 해라. 그래야 그 말길을 따라 좋은 일들이 걸어 들어오는 거니까.”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아빠는 삽다리 근처에서 택시 운전을 했다. 

미도는 그때의 두려움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도망가지 않겠다고, 나보다 약한 존재를 책임지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고 만다. 준비하지 않은 채 맞이하는 첫 번째 생리처럼 그것은 낯선 통증을 동반한다. 그녀는 지훈을 생각하다가, 창문에 비춘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미도가 탄 심야 버스가 올림픽 대교 위를 들어서려는 찰나, 거대한 다리의 철골 아치 사이에 걸린 보름달이 미도의 눈에 꽉 차올랐다. 도시의 고층 건물과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들을 가뿐히 밀어내는 눈부시게 환한 보름달이었다. 미도는 그 달을 바라봤다. 버스의 창문을 열자 물기 많은 서늘한 바람이 목덜미 사이로 감겨왔다. 그녀는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고 달리는 버스에 부딪히는 단단한 바람을 손가락 사이로 느꼈다.  

미도는 핸드폰을 열어 열한 개의 숫자로 이루어진 이지훈의 전화번호를 바라보았다.

버튼만 누르면 현정의 사진과 셜록의 이메일 속에만 존재하던 그 실체와 직접 연결될 것이었다. 버튼 하나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저 영 점 일 초의 시간이면 지구 위에 떠 있는 인공위성의 전파가 그를 자신과 연결시킬 것이었다. 

그러나 미도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 명을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과 장소와 시간과 돈이 투입된다는 아이러니가 미도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미도는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녀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미도는 눈을 감고, 이 밤의 달빛을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미도에게 일어난 가장 기묘한 일이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 이지훈 한 명만을 위한 복잡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더구나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니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한 적 없는 그녀가 위험 부담을 끌어안은 채, 일을 하고 있었다. “보름달이 뜨면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는 아빠 말, 정말 맞나 봐. 기분이 정말 이상하거든.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그녀는 창문 위에 뜬 달을 보며 아빠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미도는 핸드폰을 입고 있던 모직코트 안 깊숙이 집어넣었다. 

휴대전화에 닿았던 그녀의 검지 끝이 저릿해져왔다.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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