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정미도는 회사에 들어가 모두 서른여덟 개의 회원 명부를 정리하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 커플 매칭 상황을 체크했다. 이벤트팀의 정 대리와 만나 새롭게 론칭할 ‘러브 보트’에 대한 브리핑도 받았다. 하지만 미도가 회사에 돌아와 저녁 내내 골몰한 것은 ‘실연’과 ‘결혼’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미도는 자신이 수집한 실패한 연애들의 기록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처음에 보드라운 솜털 뭉치처럼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늑대만 한 사나운 개로 변신해 죽도록 짖어대는 과정과 비슷했다. 실제 미도가 두 번째 사귄 남자에게 선물로 받은 귀여운 레트리버는 몇 달 만에 우렁찬 목소리를 내는 집채만 한 대형견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치 곤란한 선물 때문에 미도는 예산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는 친척에게 그 개를 넘기기 전까지 옆방 남자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 영감처럼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단어가 있었다.  

미도는 수첩에 그것을 ‘실연의 기념품’이라고 적었다. 

처치 곤란한 실연의 흔적은 누구에게나 남는다. 따라서 그것을 깨끗하게 처리해주는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시간 없는 독신자들을 위해 결혼정보회사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지훈이 그녀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트위터로 들어가 그에게 던질 ‘큐피트의 화살’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현정이 말해준 트루먼 카포티의 문장 이외에도 여러 편의 영화와 소설, 연극의 대사들을 차례로 적어 내려갔다. 사랑 때문에 울고 웃으며 목숨을 버리는 아름답고, 슬픈 탄식들이 미도의 컴퓨터를 채워나갔다. 그녀는 트위터를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퍼 나르는 말이 결국은 실연과 관련된 사랑의 언어임을 깨달았다. 사랑을 하든 하지 않든 누구나 잃어버린 자신의 한쪽을 찾기 위한 기꺼운 여정에 동참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이것이 그저 이지훈 한 명만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세상엔 실연 때문에 엉뚱한 사이트에 들어가 있는 대로 바이러스를 옮아오거나, 지하철을 거꾸로 타고 황망한 얼굴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그것은 멀지 않은 과거에 미도에게도 일어났던 일이었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섯 시간 동안 트위터를 돌아다니며 찾아낸 말 중, 미도의 마음을 가장 움직였던 것은 결국 ‘커트 보네거트’라는 소설가의 말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딱 한 사람과 가정을 이룬다. 신랑은 친구가 하나 생기는데 그나마 여자다. 신부는 이야기 상대가 하나 생기는데 그나마 남자다!’

미도는 그것을 트루먼 카포티의 문구 대신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놓았다가 하루 만에 지웠다.

 

그러니까 가장 불행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그나마 남자’인 친구 한 명 없는 사람이다.      

그날 밤, 현정의 말대로 회사에 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나마 남자’인 친구가 한 명도 없는 현정의 엄마였다. 어렸을 때, 남편을 잃은 여자가 딸에게 갖는 집착이 어느 정도 정당하다고 해도, 그녀의 목소리는 끝이 갈라질 만큼 신경질적이라 듣는 사람에게 자연스런 반감을 느끼게 했다. 

“그 애가, 이지훈 형에 대해서 말 안 하던가요?” 

중년 여자의 목소리는 얼마간 지쳐 있었다. 곧 현정이 예상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미도는 차분하게 예상 답변을 차례로 내놓았다.  

“현정이한테 전해요. 나랑 협상하고 싶으면 당장 찾아오라고!”

자신의 딸과 대화 아닌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통보하는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결혼의 파탄은 대부분 돈 때문에 일어난다. 

연애할 때는 문제되지 않았던 집이나 혼수, 신혼 여행지를 결정하는 것까지 모든 게 돈과 관련된다. 별 상관 없어 보이는 ‘효도’의 문제 역시 놀랍게도 돈으로 환원된다. 누가 누구의 부모를 어디에서 모시고 살 것인가부터 누가 누구의 부모에게 얼마짜리 선물을 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가 파혼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은 결혼을 준비하며 배운다. 미도는 돈을 무시하는 태도를 끔찍하게 경멸했다. 정현정과 이지훈 사이의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 ‘사람’이 끼여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돈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미도는 이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야 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지훈의 형이 누구인지, 무슨 이유로 실체 없이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조사해야 했다. 결혼정보회사의 커플 매니저가 탐문에 능하다는 말은 그 어떤 매뉴얼북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도는 자신의 일이 리서치와 탐문, 신원 조회, 방문 조사 같은 명사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특히 노블레스 회원들에게 정확한 정보는 특히 더 중요했다. 그러려면 우선 이지훈의 형 본명부터 알아내야 했다. 

미도는 신원확인팀에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예상대로라면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신호가 울리더니 딸깍, 소리와 함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셜록’이란 별명을 가진 차 대리였다. 

“알아볼 사람이 하나 있는데 가능할까?” 

“이십사 시간 주세요.”

늘 그렇듯 셜록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밤에 혼자 일하는 걸 특히 좋아해서 야근이 잦은 미도와 자주 늦은 저녁을 먹었었다. 셜록과 친분을 쌓아두는 건 여러모로 미도에게 이익이었다.  

“미안한데 이름을…… 아직 몰라. 시간이 많지도 않고. 일주일이면 될까?”

“칠십이 시간.”

“좋아. 그 남자 동생 이름이 이지훈이야. 이지훈 주소랑 주민등록번호 불러줄게. 회사 주소도 알려줄까?” 

“얼굴 확인할 수 있는 사진도 첨부해줘요.”

미도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마우스로 창 하나를 클릭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적힌 폴더였다. 컴퓨터 화면 사이로 한 남자의 얼굴이 천천히 차올랐다. 사람을 꿰뚫는 듯 깊은 눈을 가진 남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도는 자신도 모르게 안경 너머 지훈의 동공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이 복잡한 일들을 해결할 실마리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빠르게 사진을 첨부한 이메일을 보냈다. 

“꽤 잘생겼는데요? 재수 없게!” 

셜록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 진행되기 백 일 전의 일이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후쿠 지방을 강타한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어나고, 후쿠시마 원전 2호기의 격납기 부분이 녹기 시작한지 팔십삼 일 전의 일이기도 했다.


*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을 진행하며 야근을 거듭하던 미도에게 달콤한 휴가가 주어진 건 몇 년 만의 일이었다. 회사에선 정미도의 포상 휴가가 승진을 앞둔 그녀에게 주어진 선물 보따리 중 하나라는 소문이 돌았다. 며칠 후, 회사의 온라인 시스템을 정비하던 중 발생한 사고 때문에 마침 직원들에게도 휴가가 주어졌다. 기계 고장 때문에 회사 전체가 쉬던 어느 날, 미도는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뜻밖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정미우, 면접 불합격 기념으로 도쿄 갈래?” 

그것은 일본으로 가는 왕복 비행기 티켓이 평소에 비해 너무 싸다는 것이었다. 

“아직 발표 안 났거든!”

“중요한 프로젝트 끝내고 일주일 후야. 일본 가기 싫어?”  

미도는 여행 사이트의 비행기 노선을 클릭하며 도쿄로 떠나는 비행 날짜를 확인했다. 이렇게 싼 비행기 티켓이라면 물가가 비싼 일본이라도 휴가비가 남을 것 같았다. 

“갈 거야, 안 갈 거야?”

“일본 지금 난리 났잖아. 여진이 언제 일지도 모르고, 방사능비도 내린다고 하지 않았어? 언닌 신문도 안 보냐?”

“기상청 들어가봤는데, 떠나는 날부터 일주일 동안 도쿄에 비 안 온대.”

“대한민국에 기상청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니.”

“난 공인된 국가 기관을 철석같이 믿는 선량한 시민이야.”

미우가 콧방귀 끼듯 미도를 바라봤다. 

“내가 재밌는 거 하나 알려줄까? 사실 나 알카에다가 설치던 9․11 때 뉴욕에 갔었어.”

“뭐?”

미우가 미도를 노려봤다. 

“발리 간다고 뻥치고 간 건 미안한데 어쨌든 좋았어.”

“언닌 왜 그렇게 삐딱하게 굴어? 테러 터진 뉴욕은 왜?” 

“그때도 지금 도쿄행 비행기 티켓처럼 비행기 왕복권이 무지 쌌거든. 그때 정말 누구도 뉴욕에 안 가려고 들었으니까.”

“언니가 분쟁 지역 전문 기자라도 돼? 왜 그런 델 골라 가?” 

미우가 읽고 있던 책장을 덮었다.

“뉴스를 봤어. 언제 또 그곳에 가볼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죽게 되면 죽는 거고, 살게 되면 사는 거고, 그땐 직장이고 뭐고 때려치운 상태니까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어. 그때, 폭삭 무너져 거대한 회색 잿더미로 변한 그라운드제로도 보고, 사진도 찍었어. 남들이야 뭐라고 말하든 기묘한 슬픔의 경험이었지. 괴물처럼 큰 세계무역센터가 폭삭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나 멀쩡하게 차려입은 뉴요커들이 통곡하는 소리가 너무 비현실적이라 도저히 믿기지 않았거든. 근데 너, 도쿄 진짜 안 갈 거야?”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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