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


“지금의 나를 십 년 후 똑같은 내가 바라봐도 전혀 이해되지 않을지 몰라요. 지금 이 일이 제 생애 가장 멍청한 짓일지도 모르죠.”

후회해도 모든 걸 감수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현정이 미도에게 내민 것은 지훈의 연락처가 적힌 사진이었다. 미도는 사진을 유심히 바라봤다. 회사 사이트의 추천회원 코너보단 자신의 지갑 안에 넣고 다니고 싶은 타입의 남자 얼굴이었다.

“왜 본인이 직접 연락하지 않죠? 그게 더 효과적일 텐데. 훨씬 더 빠르기도 할 거구요.”

“전화 걸고, 문자 보내고, 기다리는 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다시 만나기로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미도는 “종이학을 만 마리쯤 접지 그래요?”라고 말하려다가 다시 진지한 얼굴로 현정을 바라봤다.

“쉽게 헤어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라면, 쉽게 만나겠다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 끝내기 힘든 만큼 시작하기는 더 힘든 거죠.”

“알아요. 그래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요.” 

현정은 잠시 뭔가 고민하듯 말을 멈췄다. 

“제가 이런 얘길 하는 건…… 도저히 이해받기 힘든 방법으로 헤어졌기 때문에 일상적인 방법으로 화해하는 것도 그만큼 힘들 거란 얘기예요. 다른 사람들은 그저 ‘헤어졌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한텐 인생에서 가장 복잡하고 충동적인 일이었어요. 화해를 위해선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해요.”

“원래 일은 그렇게 벌어져요. 이미 난장판이라 수습 불가거나. 이지훈 씨에 대해 가능하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를 다 보내주세요. 문자든, 이메일이든, 전화든.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제가 직접 파악해야 하니까요.”

“그런 걸 전부 다 알아야 하나요?”

현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현정 씨, 사실은 제가 직접 알아볼 수도 있어요. 꽤 자세한 일들까지.”

미도는 현정에게 무조건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입술을 야무지게 다물었다.

“하지만 그편보단 현정 씨가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현정이 미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얘기하고 싶은 정보 없나요? 취미라든가, 좋아하는 일이라든가, 특별히 싫어하는 거라든가.” 

“지훈이는 소설을 좋아해요. 개인 트위터를 하니까 쉽게 성향이 파악될 거예요. 트루먼 카포티. 카포티의 소설을 인용하는 게 좋겠어요.” 

현정이 잠시 말을 멈췄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멋진 문장이네요. 실연당한 사람들이 보면 눈물 꽤나 흘리겠어요.”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리트윗 하는 것도 방법일 거고, 지훈이 트위터의 팔로우를 연구하는 것도 방법일 거예요.”

“좋아요. 제일 먼저 트위터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볼게요.”

“지훈이는 강의를 해요. 좋은 문장들을 모으죠.”

“무슨 뜻이죠?”

“강의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글들을 수집하는 버릇이 있어요. 소설, 영화, 연극, 에세이, 강의집에 나온 좋은 글귀들을 닥치는 대로 모아요. 그걸 강의 때 인용하고 그걸 바탕으로 에피소드들을 만들죠. 트위터에서 팔로잉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글귀들을 많이 올리는 사람들이에요.”    

“참고할게요.”

미도가 잠시 입을 다물고 뭔가 생각하듯 고개를 숙였다. 

“헤어지자고 한 쪽은 현정 씨가 맞는 거죠?”

미도는 이것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해두어야 생각했다. 그것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현정은 잠시 말을 멈추고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미도를 바라봤다. 미도는 현정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현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래도 도와주실 거죠?”라고 되물었다.   

“그게 제 직업이에요.”

“지훈이는…… 지훈이와 헤어지고 나서 알게 됐어요. 제 인생의 대부분이 날아가버렸다는 걸. 그렇게 생각하니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현정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손톱 끝을 깨물었다. 강박증을 손톱을 뜯는 것으로 이완시키는 여자들처럼 지독하게 짧고 뭉툭한 손톱이었다.

“전 그냥 애인을 잃은 게 아니에요. 지훈이는 저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었고, 우린 같은 학번 친구이기도 해요.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MT를 갔고, 취업 준비를 했어요. 함께 실패와 성공을 경험했죠. 지훈이는 제가 가장 힘들 때 아빠나 엄마처럼 늘 제 곁에 있었어요. 고민이 있을 땐 가장 합리적인 충고를 해주는 선배였고, 웃고 싶을 땐 어이없는 농담으로 절 웃게 만들어줬죠. 기억나지 않는 영화나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친구가 있으면 저는 늘 지훈이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걔 누구였지? 사랑니 뽑다가 죽을 뻔했다고 말했던 우리 반 남자애 있잖아. 그 영화가 뭐였지? 우리 그때, 크리스마스 때 명동교자에서 칼국수 먹고 오다가 봤던 짐 캐리 나오는 영화 있잖아. 저 대신 기억해주고, 저 대신 설명해주는 사람을 잃었을 때 그 상실감은…….”

“…….”

“퇴근길에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문득 그걸 알게 됐어요. 지훈이를 통과하지 않고 제 청춘을 이해하는 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전 정말 고아가 된 거예요. 세상 어떤 고아원에서도 절대로 받아주지 않는 천지에 고아가 된 거죠.” 

현정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지훈이란 이름만 나오면 반사적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어요.” 

“뭐죠?”

“실은 두 가지예요.”

현정이 미도를 바라봤다.

“여기 절 가입시킨 나이 든 여자 말이에요. 기억날 거예요. 워낙 요란하게 눈에 띄니까.”

“어머니 말씀이군요. 연애를 반대하시나요?” 

미도의 질문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는 현정의 말 사이에 있는 행간을 어렵지 않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미도는 현정에게 “왜?”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엄마가 그쪽으로 전화를 하면 다 알고 있다고 말하세요. 사실이든 아니든 저에 대한 대비책을 가지고 있는 듯한 태도를 확실히 견지하는 게 좋아요. 대비책이나 답이 없다고 생각되면 아마 그쪽을 있는 힘껏 물어뜯을 거예요. 하지만 지훈이의 형에 대해 묻는다면 무조건 모른다고 대답하세요. 나머진 제게 맡기세요.”

“그게 무슨 뜻이죠?”

미도가 현정을 바라봤다.

“이지훈 씨한테 형이 있나요?”

그때, 현정의 핸드폰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현정은 당혹스런 얼굴로 “잠시만요”라고 말하며 핸드폰 버튼을 누르고 밖으로 나갔다. 미도의 핸드폰도 거의 동시에 울렸다. 소개팅 다섯 번 만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 고객의 전화였다. 그렇게 그들의 대화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도중에 끊긴 채 공중에 사라졌다. 오 분 후 현정이 다시 카페로 들어왔다.  

“죄송해요. 가봐야 해요.”

현정이 일어나며 미도에게 악수를 청했다.  

“학교에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 선생님들이 많아요. 소개해드릴 수 있을 거예요.”

현정이 자리에 일어나며 미도에게 스치듯 말했다. 미도는 멀어져가는 현정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살펴보았다. 정현정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몰아가는 능력이 있었다. 

회원을 들먹이다니! 

엄마를 닮은 아주 영리한 여자였다.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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