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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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정은 미도의 고객 리스트 중 단연 최고의 고객이었다.

결혼정보회사에 ‘올해의 개매너’라는 우스꽝스런 상이 있었다면, 단연 그녀가 반짝이는 트로피를 받고 영광의 우승자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 현정의 사진을 봤을 때, 미도는 그녀가 남자들에게 꽤 많은 인기를 얻을 거라고 확신했다. 전체적으로 귀여운 인상의 여자였다. 게다가 그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공무원 연금이라니! 남자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직업이었다.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노블레스 클럽’에 가입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 만큼 학벌도 부모 재력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던 남자들은 한결같이 당황한 목소리로 미도에게 불쾌함을 표현했다. 

“뭐, 이런 날라리 같은 여자를 봤나!” 

“소개팅에 자주색 망사 스타킹 신고 나온 거 알아요? 정말 교사 맞아요?”

미도는 고객의 불평 전화에 시달렸다. 회사 웹사이트 게시판에는 태도가 불량한 악성 고객으로 현정의 실명과 학교 이름이 등장해 회사 사람들을 당혹시켰다.    

결혼정보회사 사람들은 그런 악성 고객들에게 제각각 암호 같은 이름을 붙였는데 현정의 별명은 ‘십 분’이었다. 그녀는 십 분 안에 자신이 만났던 모든 남자들을 퇴짜 놓았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문자메시지에 보낸 하트가 너무 많아서, 귓불이 작아서, 코가 커서, 입술이 두꺼워서, 구두 색깔이 불길해서 그녀는 남자를 퇴짜 놓았다. 귓불이 작으면서 코가 크고 입술이 두꺼운 데다가 구두 색깔까지 불길한 남자가 나타난 것도 기적이었지만, 모든 걸 기억하고 똑같은 불평을 늘어놓는 현정의 기억력에 미도는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그것은 정현정이 백 일 안에 성취한 결과물이자, 정미도가 몇 년 동안 구축했던 백 건이 훌쩍 넘는 커플 메이킹 성과들을 한낱 과거의 유물로 추락시킨 사건이기도 했다. 

미도가 유일하게 인정할 수 있었던 클레임은 들어온 지 오 분 만에 남자가 자신은 머릿속에 난 ‘가마’가 두 개라 결혼을 또 한 번 할 팔자라고 장담했던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 한 사람뿐이었다. 현정은 그 얘길 하다가 “그 남자가 직접 머리를 까더니, 가마 두 개를 보여주더라구요, 글쎄. 너무 웃기고 황당하지 않아요?”라고 말해 미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 일 이후, 미도는 현정이 모든 일을 고의적으로 망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미도는 그제야 현정뿐만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초의 실연 이후, 미도가 결심한 건 너무 일만 하느라 친구를 등한시하진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친구를 사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던 미도가 선택한 전략은 자신의 고객을 최고의 친구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일일이 고객들의 이름과 취미를 기억했다. 크리스마스나 새해엔 손쉬운 집단 문자 대신 일일이 전화를 하거나 손으로 안부를 묻는 카드를 보냈다. 진심을 담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 절실할 때 확실한 효과를 나타내기 마련이다. 미도의 친구들은 그러므로 나이와 성별, 직업을 초월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좋은 성과와 인센티브로 돌아왔다.  


이 년 전, 정현정을 노블레스 클럽에 가입시킨 건 그녀의 어머니였다.

미도는 회사 신원확인팀의 막강한 정보력을 이용해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던 현정의 어머니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이유로 이들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가히 무궁무진했다. 가령 아파트가 좋은지 빌라가 좋은지 오피스텔이 좋은지 같은 개인적인 주택 구입 성향과 어떤 회사의 어떤 차종을 좋아하는지 같은 사소한 것들도 쉽게 밝혀낼 수 있었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방법으로 보석을 선택한 여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온몸에 달고 있었던 그녀의 모친은 부동산 디벨로퍼(개발업자)였다. 무엇보다 미도의 눈에 확실히 띄는 대목이 하나 존재했다. 

그녀가 번 가장 큰 재산은 인상적이게도 고시원과 도시형 생활주택을 통해 나왔다. 교통이 좋고 상권이 발달한 역세권에는 종종 그녀의 이름이 등장했다. 그녀가 직접 개발한 전국 고시원과 원룸의 숫자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데, 미도가 머물고 있던 ‘승리 고시원’의 건물주가 실은 현정의 엄마라는 사실 역시 현정과 미도의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인맥을 중요시하는 정미도에게 그것은 아주 확실한 인증 마크였다. 게다가 결혼에 관련된 엄마와 딸의 갈등에 대한 논문이 있다면 미도는 꽤 훌륭한 발제자가 될 것이었다.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현정은 “안녕하세요. 커플매니저 정미도입니다”로 시작하는 미도의 전화를 딱 한 번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통화 때문에 미도의 전화번호는 현정의 휴대전화에 스팸 번호로 즉각 분류되었다. 삭제가 아니라 스팸 번호로 등록함으로써 다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폐기시켜버린 것이다. 정현정은 주관이 명확한 단호한 여자였다. 

현정이 갑자기 소개팅에 나가겠다고 전화한 건 불과 석 달 전의 일이었다. 

예상 밖이었다. 

현정의 전화에 한동안 미도는 심란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 ‘누군가’가 자신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인생의 가장 큰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그러므로 현정이 그날, 이승철의 <네버 엔딩 스토리>가 울려 퍼지는 독일식 호프집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SOS’를 쳤을 때, 미도는 그녀를 도와 환상의 커플을 만들겠다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꼭 직업윤리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성취와도 관련되어 있었다.

“전 제 전 남자친구와 다시 만나길 원해요.”

그들이 왜 헤어졌는지는 미도의 관심이 아니었다. 바람을 피웠건, 권태기 때문이었건, 남자에게 돈을 꾸고 갚지 않았건 개인 사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헤어진 남자를 어째서 다시 찾고 싶어 하는지 아는 건 중요했다. 미도는 결국 “왜 다시 만나고 싶어 하죠?”라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현정에게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야만 자신도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현정은 자신이 퇴짜 놓은 수많은 남자들 앞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뻔뻔함과 냉랭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을 쏟아놓다가 결국 눈물까지 흘렸다. 손수건이 부족할 정도였다. 실연 앞에서 그녀의 눈은 애처로울 정도로 충혈되었다. 미도는 현정에게 완벽히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상상력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사람을 속이는 것만큼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도 드물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몰래카메라가 여전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건, 그것이 보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 고객들에게 가장 먼저 심어주어야 할 것은 역설적이지만 그런 종류의 속임수였다. 

‘이 사람은 돈을 내고 만난 사람이 아니라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낸 운명이다’라는 판타지. 그것이 상황을 컨트롤하는 사람에 의해 조작됐다 해도, 그 안에는 일정 정도의 우연이 개입한다. 드라마 작가는 그것을 방송에서 보여주지만, 미도는 현실 속에서 그것을 진짜로 만들어냈다.

“현정 씨는 운이 참 좋네요.” 

“네?”

“전 타고난 기획자거든요.” 

미도가 웃으며 현정을 바라봤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은 친구를 고객으로 둔 커플 매니저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드라마 같은 일이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이승철의 목소리가 절절하던 그날, 현정과 함께 듣던 <네버 엔딩 스토리>는 그런 자신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치는 응원가였다.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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