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정미도가 오피스텔이 아닌 회사 근처 고시원에 살게 된 건, 대부분 잠만 자고 나오는 공간에 관리비나 도시가스비 같은 돈을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충청남도 삽교에서 여고를 마친 미도는 하루 서너 시간씩 쪽잠을 자며 대학을 다니던 칠 년 반 동안 각종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했다. 편의점, 호프집, 백화점 가구 매장 아르바이트 이외에 그녀는 여덟 가지 이상의 일을 했다. 삽교에서 같은 여고를 다니는 여동생의 학비와 레슨비도 그녀가 보내줘야 했다. 

“비올라? 꽃 이름 말하는 거야?”

동생이 이름마저 생소한 악기를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미도가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바이올린도, 첼로도 아닌 비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도가 ‘일단 해봐!’라고 말했던 건, 가녀린 외모와 딴판인 기질적인 호탕함과 그녀의 낭만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미도가 즉석 밥 하나로 하루 세 끼를 나누어 해결하던 생활밀착형 인간인 건 사실이었다.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라 돈을 아끼려다 보니 그런 식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악착같이 돈을 모아 체류비가 많이 들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도 사실이었다. 평생 삽다리 촌 바닥에서 살게 될 것을 두려워했던 미도의 아빠는 간암으로 죽기 전, 그녀에게 유언처럼 한마디를 남겼다. 


넌 넓게 살아라. 


그건 대처로, 서울로 가라는 뜻이었지만 그녀는 평생 충청도 번호판을 단 택시기사로 좁아터진 택시 안에서 다리 한 번 마음껏 못 뻗고 생을 마감한 아빠의 뜻에, 소작농으로 평생 좁은 땅뙈기에서 마늘밭을 일구던 할아버지의 뜻까지 보태 더 넓고 크게 해석했다. 

미도가 스스로에게 허용한 유일한 사치는 인터넷 여행 사이트를 뒤지며 중간 경유지에서 손님들을 태우고 오느라 직항보다 적어도 스물네 시간은 더 걸리는 싸구려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이었다. 호주, 이집트, 미국, 인도 같은 나라를 그녀는 그렇게 여행했다. 모두 광활하고 따뜻한 나라들로, 겨울이 아예 없거나 한국이 겨울일 때 여름이거나, 다양한 인종들로 북적대는 나라들이었다. 

그녀는 유일한 취미를 살려 대학생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여행사의 가이드로 첫 직장을 얻었다. 그때 마닐라의 로컬 여행사 현지 가이드에게 푼돈을 줘가며 현지인들이 쓰는 타갈로그식 발음이 섞인 서바이벌 필리핀 영어를 배운 덕분에 일 년 후, 미도는 해외영업팀으로 보직을 옮길 수 있었다.

자기 몫을 다하며 비교적 잘나가던 그녀가 첫 직장을 그만둔 건 다니던 여행사의 부도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운이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껄끄러운 결말이었고, 무엇보다 그녀가 싫어하는 엔딩이었다. 

남녀 관계에서 사표를 던져야 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헤어지거나. 

결혼하거나. 

정미도는 사내 커플이었다. 사내 연애의 단점이 현실적으로 폭발할 때는 커플이 찢어질 때다. 헤어져도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것 이외에 하나로 통일되던 많은 것들이 둘로 분리된다는 것, 그건 누군가 보이지 않는 칼을 들고 나눠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지혁, 당연히 네가 그만둬야지!”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은 쪽이 회사에 남는 게 당연하다는 쪽은 미도였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그녀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미도는 홧김에 사표를 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나, 다른 일에 대한 신념이 있다기보다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게 구차해서였다. 지혁과 헤어지고 난 후, 옮긴 직장 생활은 이 두 가지를 일일이 확인하며 증명하는 일이었다. 

“결혼이 사랑과 낭만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조건과 현실을 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죠?” 

정미도가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을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회사 근처 대로변에 있는 ‘필승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의 ‘골드스타 안테나’가 다양한 수치의 통계 자료들을 하나하나 가리키고 있었다. 미도는 회의실에 모인 부서 팀장들에게 브리핑 자료를 보여주고 있었다. 

“중요한 건 일단 헤어져야 만난다는 사실이에요. 이걸 한자로 정리하면 뭔 줄 아시죠?”

동그란 유리 원탁에 앉은 팀장들이 사자성어를 찾느라 골몰하고 있을 때, 그녀는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쏟아냈다. 

“거자필반(去者必返)! 실연은 또 다른 기회예요. 실연당한 사람들이야말로 잠재적인 우리 고객인거죠. 이혼이 우리 업계의 블루오션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청첩장 사이트에 ‘재혼 시 50퍼센트 세일’이란 문구를 붙여놓는다고 생각해보시죠. 아마 그 사이트 재수 옴 붙었다고 단번에 악플에 시달리고 망하겠죠. 하지만 지금은 재혼을 겸하지 않는 결혼정보회사는 한 곳도 없어요. 결혼과 이혼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붙어 다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현실 감각은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에요. 이혼 전문 변호사가 자신의 고객 정보를 이용해 재혼 전문 결혼회사를 차리는 세상이에요.”

미도가 “그렇지 않나요?”라고 묻기도 전에, ‘원탁의 기사들’이란 별명으로 통하는 팀장들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실연당해 돌아온 싱글들입니다. 하지만 돌아온 싱글들이 모이라고 한다고 얼씨구나 좋다고 모여들까요? 아니죠! 그들은 슬픔과 충격에 휩싸여 있어요. 그들은 누구보다 불행합니다. 불행해서 숨도 못 쉴 지경이죠! 누군들 다른 사람도 아닌 본인이 상대방에게 차일 거라고 상상했겠어요? 자신이 혼자라는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몸부림치고 있다구요.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특징이 뭔 줄 아세요?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게 된다는 겁니다. 맞아요! 불면증. 아주 심각한 불면증이 생기는 거죠. 약도 없어요. 수면제도 소용없죠.” 

미도는 온몸으로 ‘저도 겪어봐서 아주 잘 압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팀장들은 감정이 실린 그녀의 손가락과 명료하고 단호한 눈빛에 빠르게 감응하고 있었다. 

“우리는 실연의 가치에 대해 사업적으로 접근해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연인과 헤어진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일이에요. 그리고 그 일은 철저히 정서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거기엔 그 어떤 사업적인 냄새나 낌새도 새어 나가선 안 돼요. 요즘 고객들, 아무리 잡지나 신문에 기사처럼 꾸며도 애드버토리얼이라면 귀신같이 알아내니까요. 아주 까다롭고 감성지수가 높은 고객들이에요. 우리보다 고객들이 더 똑똑합니다. 최 팀장님도 아시죠?”

반쯤 눈을 감고 졸고 있던 최 팀장이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미도는 피곤해질 수도 있는 릴레이 회의 사이사이 적절한 순간에 불쑥 동의를 구함으로써 잠시도 자신의 이야기에 반론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녀의 브리핑은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헤어진 그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고 있고, 상처 받은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알게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들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려줘야 한다는 거예요.”

“뺨을 치다니요?” 

옆에 있던 조 부장이 미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헤어진 사람들은 전부 울고 싶은 사람들이에요. 울고 싶으면 울 수 있게 만들어줘야죠. 실연당한 사람 위로해준답시고 친구들이 해주는 이런저런 좋은 말 대신, 우리는 친구들이 절대로 해줄 수 없는 냉혹한 진실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존재 이유니까요.”

“존재 이유라…….”  

“실컷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져서 그때부터 자신의 위치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될 겁니다.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제대로 뺨 맞았다는 걸 느끼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때리되 때리지 않았다는 듯 의뭉스럽게 시치미를 떼야 하는 겁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그럴듯해 보이긴 하는데 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조 부장이 미도를 바라봤다.

“누군가 대뜸 조 부장님 뺨을 때렸다면 기분 나쁘고 아프지 않겠어요?”

“뭐…… 당연히.”

“아프겠죠! 부지불식간에 맞고 나면 아무리 멍한 상태인 사람이라도 내가 대체 왜 맞았을까 생각하지 않겠어요? 왜 내 뺨을 쳤을까 의문을 갖지 않을까요?”

“거야 억울해서라도 그렇겠죠.”

“보이지 않는 정신적 타격! 그게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될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더 세밀한 기획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이들이 결국 혼자가 되었다는 감각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충분히 울었으니 이제 정신 차리고 새 인연을 찾아라! 이게 포인트예요. 이해되세요?”

“…….”

“너는 혼자다. 이제 당신은 홀로 남겨졌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해주는 거죠. 애인을 잊지 못해서 과거의 연인과 유령처럼 동거 중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많아요. 혼자라는 걸 깨닫지 못해서 오랫동안 싱글로 남아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우리가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회사의 강점을 여러모로 생각해봤습니다. 회원 수가 많다는 것 역시 장점이 되겠지만 우리만이 가진 의외의 강점이 있더군요.”

“그게 뭡니까, 정 과장님?”

내내 침묵하던 대표가 미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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