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그만 헤어질까?”
 언젠가 휴가를 맞춰 함께 떠난 파리에서 현정은 지훈에게 불쑥 물었다. 그러나 지훈의 대답을 기다릴 사이도 없이 현정은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을 입술에 잔뜩 묻힌 채 말했다.
 “아님 말고!”
 현정은 살짝 벌어진 앞니 사이로 혀를 밀어 넣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흰 구름이 카푸치노 위에 올려놓은 포근한 우유 거품처럼 느껴지던 날이었다.
 지훈과 현정은 다른 연인들처럼 퐁네프 다리나 에펠탑에서 사진을 찍고, 파리의 카페에 앉아 지나다니는 관광객들을 구경하며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현정이 지하철역 근처 서점에서 산 잡지를 뒤지며 볼만한 공연의 리뷰를 찾는 동안 지훈은 걸어 다니며 바게트나 샌드위치를 바쁘게 먹는 파리지앵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지도를 들고 몽마르트르의 뒷골목을 걷다가 영화 <아멜리에>에서 나왔던 ‘카페 레드 뮬랭’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크림 브뤼레와 하트 모양의 다크 초콜릿이 토핑으로 올라간 레몬치즈 케이크를 먹었다. 계획 없이 걷고 또 걷는 건 파리를 여행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었다. 시차 때문에 너무 일찍 일어난 다음 날, 이들은 오페라 극장 앞에 앉아 해 뜨는 광경을 보다가, 이리저리 건물 내부의 뼈대가 튀어나와 기괴하게 보이던 퐁피두 센터의 영화 자료실에서 발음하기 힘든 이란 감독의 옛날 영화와 프랑수와 트뤼포의 <줄 앤 짐>을 봤다.
 그날 오후에 지훈과 현정은 리옹역에서 RER 티켓을 끊어 베르사유로 가는 이층 기차에 몸을 실었다. 베르사유 궁궐의 아름다운 정원을 걸으며 현정은 지훈에게 말했었다.
 “베르사유는 원래 루이 13세가 사냥을 위해 머물던 여름 별장이었대. 주변이 온통 늪지대였고 쓸모없는 땅뿐이었는데 그걸 루이 14세가 아름다운 궁궐로 만든 거지. 절대왕권 시대였으니 가능한 일이었을 거야. 이곳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생각하면 너무 놀라워. 삼백 년이 넘은 건물이 이렇게 멀쩡하다는 게 정말 신기하잖아. 넌 믿겨지니?”
 지훈이 고개를 젓자 현정은 정원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가끔 우리가 사귄 지 십 년 가까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아. 내 청춘이 너란 사람으로 채워진 거잖아. 테트리스로 치면 난 정사각형만 잔뜩 들어가 있는 블록 같아. 어떤 사람들은 세로가 긴 직사각형, 가로가 긴 직사각형, 기역, 니은 모양의 도형처럼 다양한 블록들로 가득 차 있을 텐데.”
 직선처럼 부는 바람 때문에 나무들이 한쪽 방향으로만 흔들렸다. 현정의 긴 머리도 같은 방향으로 흩날렸다.
 “지루해?”
 “가끔. 넌?”
 “글쎄.” 
 “…….”
 지훈은 바람에 날리는 현정의 긴 머리칼을 바라보다가, 셔츠 사이로 볼록 튀어나온 그녀의 작은 젖꼭지를 바라봤다. 현정이 숨을 내리쉴 때마다 그것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왔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국을 떠나면 현정은 늘 브래지어부터 풀어놓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이즈보다 늘 한 치수 큰 브래지어를 착용했다. 평균보다 작은 가슴에 꽤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하지만 언어와 공기가 달라지면 현정은 제일 먼저 자신의 가슴보다 큰 브래지어 사이즈를 불편해했다.
 이들은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서로의 진심을 농담으로 흘려버릴 정도로 그들의 시간은 함께 마모됐다. 지훈은 시간이 오래된 가죽처럼 부드럽게 낡아가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연애가 터질 듯한 열정과 섹스로 가득 찬다면 인류의 절반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자살했거나, 미쳤을 것이다. 열정이나 욕망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감정이라는 걸 지훈은 알고 있었다. 한 여자와의 지속적인 연애는 때때로 지훈을 발기 불능의 노인처럼 만들었다.
 “캠퍼스 커플이라는 게 운명적이라기보단 전형적이란 생각이 들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거나, 선을 보는 거나, 뭐가 다를까 생각도 들고. 너랑 난 너무 모범생들처럼 만났잖아. 우린 모범적으로 연애하고 결혼도 모범생들처럼 하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현정이 회한에 찬 듯 웃었다.
 “후회되면 지금이라도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지 그래? 넌 고등학교 선생이라 최고 등급일걸?”
 “진담이니?”
 “농담 같아?”
 “나랑 헤어지면 어떨 것 같아?”
 “넌 어떨 것 같아?”
 “우리 말이야. 매일 이혼할까 말까, 이러면서 지지고 볶는 나이 든 부부 같지 않니?”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남 얘기하듯 늘어놓고 자주 웃었다.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는 오래된 영화 얘길 하듯 했던 말을 반복했고, 말이 나오기도 전에 뭘 물어볼지, 뭘 먹고 싶을지, 어디에 가고 싶을지 다 아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자.”
 “그래.”
 “내가 어디 가자고 하는지 알아?”
 “피곤하니까 호텔로 돌아가잔 얘기잖아.”
 “맞아.”
 현정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훈을 바라보다가 깔깔대며 웃었다.
 
 자동차를 렌트해 엑상프로방스와 아를에 가자고 한 건 현정이었다.
 니스에서 영화제가 열리는 칸까지 기차를 타고 가자고 한 건 지훈이었다.
 ‘피터 메일’의 서정적이며 목가적인 에세이 『나의 프로방스』를 연상시키는 남프랑스 여행은 그러나 그들이 함께했던 수많은 여행 중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 렌터카 회사에서 장담한 고장 날 일 따윈 없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혼다 어코드’의 타이어는 엑상프로방스로 가는 도중 장렬한 소리와 함께 펑크 났다. 한 시간에 겨우 차 몇 대만 다니는 시골 바닥에 어째서 이런 날카로운 나사못이 뒹굴어 다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수 킬로미터를 걸어서 마을까지 내려가야 했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포도나무, 간혹 차를 멈추게 하며 소 떼가 지나가고, 낮은 하늘 위에 구름이 덮인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상상했던 그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들이 마주친 남부 프랑스의 풍광은 축축한 비와 번개로 뭉개지며 질척거렸다.
 그날따라 마을 초입에 있던 오층짜리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고장 나 있었다. 이들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관절염 환자의 무릎처럼 무너질 듯 삐걱대는 계단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것은 파리 지하철의 낡아빠진 에스컬레이터에서 나던 무시무시한 소리와 정말 비슷했다.
 “예전에 정형외과 다니는 친구가 어긋난 무릎뼈 맞추는 걸 본 적 있거든. 그때 뼈에서 나는 소리랑도 비슷해!”
 공짜라고 해도 묵고 싶지 않은 으스스한 호텔에서 지훈과 현정은 이틀을 보냈다. 히치콕 영화에서처럼 옆방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고 생각될 만한 음침한 방이었다. 욕실에선 필라멘트가 끊어지기 직전에 나는 아슬아슬한 소리가 들렸고, 온수가 찔끔거리며 나왔다 끊기길 반복했다.
 찬물로 머리를 감은 현정은 감기에 걸렸다.
 비상약을 먹었지만 상태가 쉽게 호전되진 않았다. 햇볕이 쨍쨍한 프랑스 남부의 목가적인 풍경은 창문 밖으로만 상영되었다. 밖에 나갈 수 없었던 이들은 침대에 누워 노트북에 받아 온 영화를 봤다. 지훈은 현정 곁에서 읽다 만 여행 잡지를 읽었다. 영화를 보며 현정은 종종 감기약에 취한 듯 중얼거렸다.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멍청아! 변하지 않으면 그게 어떻게 사랑이야?”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이냐고, 변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결국 사랑일 수는 없는 거냐고 묻고 싶어지던 날 밤, 지훈 역시 감기에 걸렸다. 파리로 여행을 다녀온 후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비상약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지훈은 코가 통째로 흘러나올 정도로 재채기를 해대고도 약국을 찾지 못해, 그날 밤 내내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지훈은 그때 감기약에 취한 듯 내뱉던 현정의 말이 이별의 전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랬던 거였어,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사랑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깨달음은 항상 늦다.

 

 

(15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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