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이 영문학을 전공한 건 법대나 경영대에 가길 원했던 조부모를 향한 반항기 어린 낭만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트루먼 카포티나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자신의 문학적인 취향과 별개로 그는 타고난 비즈니스맨이었다. 그가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나 『인 콜드 불러드』 같은 작품을 몇 번씩 반복해 읽는다고 해서, 그의 영업 전략이 은유적이거나 문학적으로 바뀌는 일 따윈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문학에 대한 열정이 그에게 일찍이 삶의 어두운 이면과 짙은 그림자가 있음을 알려준 건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세 번씩 읽은 아이가 그것을 전혀 읽지 않은 아이와 똑같을 리 없었다. 

 만약 장사를 시작했다면 그는 분명 전자 제품이나 휴대전화 대신 꽃이나 책을 팔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동네 꽃집이나 서점이 망해가는 현실과 달리, 그가 열었을 꽃집이나 서점은 발상을 뒤집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어 꽤 많은 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현정은 지훈의 비범함과 상상력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가장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지훈 자신뿐이었다.  
 그러나 회사에 소속되면서부터 지훈은 자신이 생각과 다르게 매우 잔인하거나, 더할 나위 없이 비열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사기꾼들의 언어이며 ‘내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전형적인 의미에서 이지훈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는 C 전자를 비롯해서 G 마트, L 생명보험, H 화학, L 항공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은행이나 증권예탁원 같은 곳에서도 다양한 강의를 맡아 사원들을 교육하는 현장에 파견됐다.
 지훈은 ‘강사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중앙 고위 공무원들을 위한 ‘다양성 매니지먼트’ 강의에도 투입되었고, 강성 노조로 유명한 한 제철 회사의 다문화 가족을 위한 인문학 강좌에도 참석했다. 다양성이 중요시되는 시기였다. 정부에서도, 기업 소속의 전문 기관에서도 다문화 가정과 지방의 인구분포도에 대한 연구가 심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양성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을 때, 최 부장이 갑작스레 관리팀으로 발령 났다.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인사였다. 최 부장이 커다란 계산기를 두들기며 사원들의 비품 관리나 회계장부를 들여다본다는 건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인사팀에서 그의 컴퓨터 기록, SNS를 체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가 회사 정보를 이직하기로 한 다른 회사에 빼돌렸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기 시작할 무렵 조금 더 수상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일명 ‘최 부장 스캔들’은 마흔이 훌쩍 넘은 배 나온 대머리 남자가 사내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장 쇼킹한 섹스 스캔들이었다.
 최 부장은 유부남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회사 안에서 벌어진 사소한 연애 사건이었다. 그것이 여타의 연애 사건과 달랐던 건 상대가 여자가 아니었다는 점뿐이었다. 평소 젖통이니 유방이니 소젖이니 하는 음담패설에 불편함을 느꼈던 여직원들은 그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숨기고 위장하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고 수군댔다.   
 연애 스캔들이 섹스 스캔들로 발화되는 과정은 사람들의 흥미를 폭발시켰다. 사람들은 음탕한 섹스 체위를 동원해 게이들의 혼음 파티의 한 장면을 상상했고, 회사가 강조했던 다양성을 중시하는 글로벌한 사내 문화 따윈 즉시 망각되었다. 뉴욕에서 온 디자인 팀장 마이클, 필라델피아 법인의 컨설팅 본부장인 앨런 역시 ‘커밍아웃한 게이’라는 사실 역시 그의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걸 조심하라고 경고한 건 부장님이었어요. 회사가 비열하고 치사하다는 건 말줄임표였고.”
 지훈은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은 안전하다는 안도감에서 시작된 불순한 감정이라는 걸 금세 깨달았다.      
 “멍청해지는 지름길이 뭔 줄 알아? 사랑에 빠지는 거야.”
 최 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퍽이나 낭만적이시네요.” 
 “그런 얼굴로 비꼬지 마!”
 “비꼬는 게 제 매력이라고 한 건 부장님이에요!”
 “그래서 널 보면 때때로 가슴이 두근거렸어!”
 “지금 농담이 나오세요?”
 “가장 기분 더러운 게 뭔지 알아? 해고당하지 않는 이상 나 역시 이 회사를 나갈 수 없다는 거야. 네가 치사하고 비열하다고 말하는 이 회사가 대한민국에선 가장 자유분방한 곳 중 하나야. 별명이 문어대가리인 중년의 게이를 받아줄 회사 같은 건 대한민국에 없어.”
 최 부장이 사표를 내고 회사에서 나가던 날, 지훈은 사라진 그의 책상을 떠올렸다. 단지 책상에서 한 사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한때 최 부장이 점거하고 있던 공간 자체가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빈 공간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은 딱 한 시간뿐이었다.
 그날 오후, 사라진 그 공간에 커다란 벤자민 화분이 들어섰다. 십일 년 근속자의 사표가 처리되는 방식은 너무 즉각적이라 모두가 당혹스러워할 정도였다.
 그의 자리에 놓인 화분을 바라보던 어느 날, 지훈은 충동적으로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했다. 꽉 막힌 실내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기계 트랙을 반복적으로 달리는 일만큼 멍청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책상에 앉아 있다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의도적으로 근육을 키운다는 건 힘을 키운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사 년 동안 키워온 영문학에 대한 열정들, 가령 존 어빙이나 존 치버,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을 읽으며 이 세계의 부조리를 파악하고 분석해내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정신적인 단련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보스의 책상을 바라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퇴출, 해고, 구조조정이나 계약 종료 같은 구체적인 지옥의 언어들과 음모, 배신, 물 타기 같은 추상적인 지옥의 언어들은 늘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모 없이 외로운 소년기를 보내며 ‘소년소녀 문학전집’을 읽고 지냈던 소년에게 이 세계는 불친절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어른이 되기 위한 쓸모 있는 몇 가지 지혜를 전수했다. 얻어맞아 입술이 터지고 콧등이 내려앉아야 얼마나 아픈지 알게 되고, 비로소 자신의 심약한 육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훈은 피트니스 센터의 바벨 무게를 늘려나갔다.
 근육이 찢어지고 상처받으며 조금씩 두꺼워지고 부풀어갈 때마다 그는 가학적인 위로를 받았다. 수컷들이 과시적으로 만드는 근육들이 스스로의 근육을 파괴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아이러니를 그는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권투 선수의 가장 큰 미덕은 상대방을 잘 때리는 것이 아니다. 물론 상대를 잘 가격하는 건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잘 얻어맞는 것이다. 권투 선수가 죽도록 두들겨 맞고도 죽지 않는 건, 강펀치와 정확한 타격에 대비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총알이 쏟아지는 전시 상태에 몰아넣는 것.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맷집을 키우는 건 백 퍼센트 이기기 위한 전략이 아니다. 살다 보면 이기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해 살 때가 더 많다. 맞아도 덜 아프기 위한 최선에 대해 몸서리치면서.
 외할아버지가 말했었다.
 사람은 역사와 경험에서 삶을 배운다고.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반대파들에게 독살 당할 것을 무척 두려워했다. 그것은 생에 대한 본능을 강렬히 자극했다. 삶을 체험하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일견 독창적인 것이었다. 일부 귀족들은 매일 미량의 독을 섭취하며 여러 가지 독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 그리고 그 비결을 은밀히 자식들에게 전수했다. 지훈은 조용히 바벨을 내려놓았다.
 피트니스 센터의 처음과 마지막 손님은 늘 자신이었다. 그는 무거운 금속 덩어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차가운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했고, 밤이 되면 자신의 손때가 묻은 그 바벨을 다시 잡고 한 시간 동안 운동한 후, 어두운 복도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선 현정에게 습관적으로 안부 전화를 걸었다. 어떤 날은 그녀의 전화기가 꺼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현정의 전화기는 꽤 긴 시간 동안 꺼져 있었다. 문자를 보내면 ‘미안. 자느라 전화 소리를 못 들었어’라는 답장이 왔다. 딱히 걱정이 되거나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그런 일은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을 것이었다.

 

*

 

 이지훈은 둔감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가 이별을 ‘전혀’ 예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남자들이 쉽게 내뱉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지훈의 삶을 채우고 있던 많은 것들,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갖게 되는 자신만의 ‘조사’와 ‘접속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가 이별을 받아들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지훈의 삶에 ‘하지만’이나 ‘그러나’ 같은 접속사는 없었다.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일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열심히 하는 척하거나, 애인이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건 지훈의 삶과 거리가 멀었다.
 지훈은 자기 인생에 ‘사랑하지만 떠난다’ 같은 말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사랑하지 않아서 떠나는 것이고, 사랑이 여기까지이기 때문에 헤어지고 갈라서는 것이다. 솔직할 용기가 없어서 내뱉는 애매모호한 말들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줄 뿐이다.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네가 미워서도 싫어서도 아니고,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헤어지겠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훈은 현정을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훈은 현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훈의 일상은 온통 ‘그러나’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접속사들의 무덤이 되었다. 차라리 이것이 자신의 비밀 연애를 알아챈 회사의 음모라고 믿는 쪽이 나았다. 한국 여자와 연애 금지. 어느 날, 뜬금없이 인도의 뭄바이로 발령이 나고, 힌두어를 배우라는 지시가 떨어지는 쪽이 현실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동차에 뜬 유류 경고등을 지켜보며 지훈이 생각한 건 그러나 역시 현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 채 이렇게 있는 것은 더 힘들었다. 지겨울 정도로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 질문의 연속들이었다.

 

 그러나……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14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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