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로 영화제를 알렸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제안한 것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실연의 기념품’을 처리할 공간을 대신 마련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편의상 그것을 ‘실연의 기념품 가게’라고 불렀다. 사강은 레스토랑 입구에 놓여 있는 커다란 상자를 바라봤다. 바로 저 상자에 사람들이 가져온 실연의 흔적들이 버려질 것이었다.  
세상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있을까.
한낮의 눈부신 태양 속에도 그림자가 숨겨져 있다.
연애가 끝나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흔적을 남긴다. 서로를 기념해주었던 반지와 이니셜이 박힌 목걸이, 길거리 가판대에서 구입한 싸구려 액세서리들, 여행 중 면세점에서 충동적으로 사들인 고가의 실크 스카프와 가방, 책, 음반…… 그는 좋아하지만 그녀는 좋아하지 않았던 뮤지션의 공연 티켓과 그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입지 않았을 시폰 프릴이 달린 스커트, 진분홍색 메리제인 슈즈, 브래지어 끈이 살짝 비치는 시스루 블라우스 같은 옷들, 혹은…… 원하지 않는 아기, ‘러브 차일드’라 부르는 아이들이 남겨지기도 한다. 그렇게 연애가 끝나고 사랑이 죽고 나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물건들이 범죄 현장의 유류품처럼 남는다. 
실연 후 남게 되는 이런 물건들의 공통점은 버리기도 힘들고, 가지고 있기는 더더욱 힘들다는 것이다. 실연이 남긴 이런 얼룩을 클리닝하는 세탁소가 환영받는 건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만약 그런 세탁소가 존재한다면 지우기 힘든 얼룩이 가득한 세탁물을 든 손님들로 가득찰 것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누군가에게서 받은 상처의 기념품들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있는 기념품 가게가 있다고 치자. 처리하기 힘든 이런 기념품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교환의 방식은 실용주의자들의 발상이다. ‘실연의 기념품 가게’는 일 주년 기념 반지를 종로의 금은방에 팔아치우는 것보다 한결 품위 있었다.  
집단적인 상처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풍경 안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누군가의 상처가 자신에게 돌아오고, 자신의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되돌아가며 상처의 모서리는 무뎌지고 치유되어 가는 것이다. 누구보다 이들은 실연의 기념품에 묻은 슬픔이나 분노, 기쁨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치유는 이곳에서 가장 큰 희망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영화제의 이름조차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영화제’가 아닌가.
사강은 그저 웃고 싶어서 보는 예능프로그램에서조차 치유를 이유로 고해성사하며 우는 연예인들을 보는 게 불편했다.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 가수도, 염색을 하지 않으면 온통 백발인 한물간 액션 배우도,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전성기 때와 완전히 얼굴이 달라진 여배우도,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와 유명세를 치르며 겪었던 고통을 얘기했다. 눈물로 가득한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볼 때마다 그 한결같은 메시지가 주는 압박감에 사강은 피로감을 느꼈다. 저렇게 눈시울을 붉히는 대가로 얼마를 받고 있을까. 우는 사람보다 그것을 보는 사람 쪽이 훨씬 더 힘들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실연 이후, 그녀는 자신이 필요 이상 시니컬해진다는 것도 잘 알았다.  
사강은 자신의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만졌다.
사강은 자신이 왜 이곳에 나와 있는지를 상기하려고 애썼다. 혼자 맞는 아침이 두려워서도, 영화를 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더구나 사람들이 말하는 위로나 치유의 문제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치유받는다는 게 대체 가능한 일일까. 치유도, 용서도, 결국 자신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강은 제일 먼저 가방 속의 이 물건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가방 속에 든 이 지긋지긋한 물건과 헤어지는 행위만이 그녀에게 중요했다.

                                         

                                                                    *

 

레스토랑의 좌석 배치가 이루어졌다.
영화제 주최 측에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앉아야 할 자리를 배정해주었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배정된 자리로 이동했다. 평온하던 공기가 일순간 변하며 어수선해졌다. 레스토랑 안에는 이제 비발디의 <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봄에 봄의 음악을 틀어놓는 것만큼 따분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선 어쩐지 따뜻한 환대의 음악처럼 느껴졌다. 사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수록 그녀는 점점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녀는 우두커니 서서 사람들 쪽을 바라보았다. 사강은 곧 다른 곳에선 결코 볼 수 없었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사강이 앉은 자리 맞은편에는 빈 의자가 놓여 있었다.
모두 스물한 개의 의자가 그녀의 맞은편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사강과 사람들이 일렬로 나란히 앉았다.
누군가와 마주보고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놓았는지 사강의 목덜미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맞은편에 놓인 스물한 개의 빈 의자가 의미하는 건 너무 자명해서, 이곳에 있는 누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커플이 아니었으므로 사람이 앉아 있지 않은 의자는 실연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때때로 차가운 손을 잡아주고 웃으며 함께 밥을 먹던 애인은 사라졌다. 맞은편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빈 의자는 “이제부터 넌 혼자 밥 먹는 연습을 해야만 해!”라고 열창하는 중이었다. “혼자 먹는 밥도 괜찮아! 맛있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검정색 스웨터를 입은 안내자들은 만찬이 시작될 좌석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의자에 이름표가 붙어 있진 않았지만 그들은 의자에 누가 앉아야 할지 잘 아는 사람들 같았다. 안내자들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규정을 지키듯 약속된 동선 위를 조용히 움직였다. 대신 미소 지은 얼굴들은 이곳에 온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듯 온화했다. 그러나 그런 상냥함 때문에 방석이 놓인 폭신하고 따뜻한 의자에 앉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더 절실하게 인식했다.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몇 달 동안 소화 장애에 시달렸고, 수면제로는 해결되지 않는 불면증 때문에 심한 수면 부족 상태였다. 눈동자가 충혈되더니 귓불과 목덜미까지 붉게 상기되는 사람도 있었다. 맞은편의 텅 빈 의자를 바라보다가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훌쩍거리는 여자도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긴 나무 테이블 위에는 진열장에서 막 꺼낸 듯 보이는 흰 도자기 그릇과 손수건 스물한 개가 놓여 있었다. 그것이 아침 식사를 위한 것인지,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손수건 위에 행운을 의미하는 네잎클로버가 수놓아져 있다는 것으로 의미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9회에 계속)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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