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사강이 소리를 내며 첫 번째 문장과 문단을 반복해 읽고 있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은 정신적인 수해로 망가진 열일곱 살의 봄을 기억했다. 그것은 소설 속 주인공 ‘세실’처럼 부재하는 한쪽 부모와의 시간이었고, 아빠와 함께했던 짧고도 강렬했던 열일곱 봄방학을 의미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모든 딸들이, 우리가 아는 부모와 딸처럼 살 수는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세상이 그토록 많은 이혼과 불륜의 아이들이 존재할 리 없다. 두 명의 엄마가 있고, 두 명의 아빠가 있는 아이가 있고, 자신처럼 한 명의 아빠와 두 명의 엄마가 있는 아이도 있다. 지훈처럼 부모 없이 오직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키워진 아이는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른 죽음을 겪는 탓에 쉽게 조숙해진다.

세상에 수많은 다른 언어가 존재하고, 수많은 사랑과 이별의 말이 있듯 우리는 누군가 나 아닌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기약 없는 사랑에 빠지고, 출구 없는 사랑에 넘어지고, 후회하고, 절망하고, 다시 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인간이란 너무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빠 역할에 지독하게 미숙한 남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딸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아이가 있었듯 그렇게.

한 번이라도 『슬픔이여, 안녕』을 제대로 읽었다면, 책을 보낸 사람이 누구였는지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강은 아빠가 보내온 책을 펼쳐보았다. 스페인어가 적힌 책 맨 앞장에는 ‘나의 뮤즈에게’라고 쓴 그의 친필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당분간 이 책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도착할 것이란 걸 깨달았다.

집으로 하얀색 택배 상자가 날아온 건 사강의 생일 아침이었다.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다.

사강은 1년 전, 그때처럼 문 앞에 놓인 상자를 힘껏 들어 올렸다. 예상대로 상자 속에는 책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문고본 사이즈 정도의 얇은 책일 것이다. 만약 그가 리스본에 있었다면 포르투칼어로 된 책을 보냈을 것이다. 북경이나 청도에 있었다면 중국어로 된 책을 보냈을 것이고, 치앙마이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면 태국어판 『슬픔이여, 안녕』을 보냈을 것이다.

사강은 택배 상자의 투명 테이프를 뜯어내며 여러 도시를 떠돌고 있을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가 골목의 오래된 서점에 들어가 책을 고르고, 그 나라의 지폐와 동전으로 책값을 치르는 모습을 그렸다. 사강은 그가 바람을 가르며 러시아어로 번역된 『슬픔이여, 안녕』을 들고 천천히 걷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상자를 열자마자 사강은 크게 웃었다.

상자 안에는 『슬픔이여, 안녕』 한국어판이 들어 있었다. 꽤 오래된 책이었지만 놀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깨끗해 보였다. 상자 안에는 카드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사강에게’라고 적힌 생일카드였다.

-내가 네게 얼마나 서툴렀는지 이제는 뼛속까지 느끼지만 그걸 알아주길 바란다면 그것 또한 내 욕심일 테지. 언제나 이 책의 마지막을 네게 큰 소리로 읽어주고 싶었다. ‘안녕’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는 걸 네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건 내가 알아낸 생의 가장 큰 비밀이었거든. 그래서 슬픔을 떠나보내지 않고, 슬픔에게 손짓할 수 있다면 네가 좀더 선명히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얘길 하고 싶었어. 내가 후회하는 건 이런 거야. 네게 세상의 파도를 어떻게 헤치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못한 것. 망가진 그물을 고치는 법, 연봉 계약서를 쓰는 법, 특히 낚싯밥 던지는 멍청한 놈팽이들에게 제대로 퇴짜 놓는 법. 빌어먹을! 조금 더 큰 카드를 살걸! 써야 할 말이 아직 많은데 칸이 별로 남지 않았다. 난 언제나 이런 식이었지. 터무니없는 멍청이처럼.

이름을 부르거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 생일카드는 ‘사랑한다’거나 ‘축하한다’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멍청이처럼’이란 문장으로 끝나 있었다. 무엇 하나 ‘축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카드였다. 사강은 그 카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사랑하는 내 딸 사강에게’로 시작하는 편지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아마도 파리에 있을 그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얘기한다면, 그 역시 몹시 당황할 것이다.

사강은 답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슬픔이여, 안녕』을 꺼냈다. 그녀는 처음부터 다시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지훈이 가지고 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된 책이었고 판본도, 문장도, 모두 다 달랐다.

사강은 느린 속도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비가 오던 어느 날은 ‘울었다’란 동사에서 책 읽기를 멈추었고, 햇볕이 좋던 어떤 날은 ‘매우’란 부사에서 독서를 중단했다. 비행을 쉬는 날이면 사강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을 잊은 채 책 속에 빠져들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교차로 어딘가에 멈춰 설 때마다 그녀는 책 속의 문장 하나를 읽었다. 정류장이 바뀌고, 길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그녀는 문장을 채집하듯 그 모든 것들을 가슴에 담았다. 생의 어느 순간, 도저히 멈춰지지 않는 것이 있다. 지금 사강에게 그것은 『슬픔이여, 안녕』을 읽는 것이었다.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은 “행복한 가정이란 모두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불행하다”이다.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은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인데, 이 책을 읽은 열네 살 즈음의 사강은 이 문장이 적힌 책의 첫 번째 페이지를 주저 없이 찢어버렸다. 그녀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첫 번째 페이지는 1년 후 여름방학에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첫 문장이었다. “정말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소설 「무진기행」은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로 끝난다.

『거미여인의 키스』의 마지막 문장은 “사랑하는 발렌틴,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이 꿈은 짧지만 행복하니까요”라고 끝나며, 사강이 읽었던 에밀 아자르의 마지막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법이다. 사랑해야 한다”로 끝난다.

『슬픔이여, 안녕』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사강은 눈을 감았다.

다만 내가 침대 속에 누워 있을 때면, 파리에 자동차 소리만이 들리는 새벽녘이면 내 기억이 나를 배신한다. 여름이 다시 온다. 그리고 그 모든 여름의 추억. 안느, 안느! 나는 이 여름을 아주 낮은 소리로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자꾸만 불러본다. 그때 내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그것을 그녀의 이름으로 해서 맞아들인다. 눈을 감은 채……. 슬픔이여 안녕.

Posted by 자음과모음 jam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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